기획연재 ‘읽히는 라디오 – 여기는 승강장입니다’를 시작하며

‘읽히는 라디오 - 여기는 승강장입니다’ 기획연재 기사의 대표 이미지. 권리스티커가 빼곡히 붙은 승강장에 “장애인권리예산”이라 적혀 있다. 라디오 생방송 부스의 온에어 싸인과 기자의 마이크 그림이 있다. 악보와 지하철 그림도 있다. “읽히는 라디오, 여기는 승강장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미지 제작 하민지
‘읽히는 라디오 - 여기는 승강장입니다’ 기획연재 기사의 대표 이미지. 권리스티커가 빼곡히 붙은 승강장에 “장애인권리예산”이라 적혀 있다. 라디오 생방송 부스의 온에어 싸인과 기자의 마이크 그림이 있다. 악보와 지하철 그림도 있다. “읽히는 라디오, 여기는 승강장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미지 제작 하민지

- 1조 3천억 장애인권리예산, 우주관광보다 싸다!

지난해 추석 연휴 직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화가 난 한 30대 남성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장애인 1명당 우주선 1대씩 줘야 지하철 시위 관둘 건가요?”

에구, 화가 많이 나셨군요. 일단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우주선이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요, 우주는 둘째 치고, 전국에 있는 우주체험관에 나들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게 장애인의 소망입니다.

우주선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KBS의 작년 4월 뉴스를 보니까 우주관광 비용은 하룻밤 40억 원이라고 하네요. 1명이 1년간 매일 우주관광을 다녀오면 1조 4600억 원이 필요합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1년 치 장애인권리예산 1조 3044억 1백만 원과 얼추 비슷합니다.

그러나 전장연이 요구하는 예산안은 1명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합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요. 전장연 요구는 아주, 아주 기본적인 보통의 삶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게 보장되면 누구나 작년보다 조금은 편해질 거예요. 1조 3044억 1백만 원으로 5천 만 국민이 전보다 편리해질 수 있다니, 우주관광에 비해 확실히 저렴합니다.

전장연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이 김순석 열사 38주기인 지난해 9월 19일, 37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이 김순석 열사 38주기인 지난해 9월 19일, 37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출근길 지하철 47번 탔지만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처음으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했습니다. 그때 전장연에서 오래 일한 활동가가 제게 그랬어요. “기자님, 출근길 투쟁은 처음인데 너무 떨리네요.” 당시에도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했는데요, 그때는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요구했습니다. 결과는 뭐, 잘 안됐죠.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도 장애인권리예산 약속해 달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했을 때도 약속해 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추경호 후보자를 콕 찍었을 때도 약속해 달라, 추경호 장관이 임기를 시작했을 때도 약속해 달라,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사방팔방으로 쫓아다니고,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투쟁하면서 작년 한 해를 보냈습니다. 장애인권리예산 1조 3044억 1백만 원 보장을 위해서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장애인복지지출 평균은 2.02%인데 한국은 0.6%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지 제작 하민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장애인복지지출 평균은 2.02%인데 한국은 0.6%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지 제작 하민지

- 1조 3천억 다 보장해도, 장애인복지지출로는 너무 적네요

1조 원이 넘는 돈이라니, 얼핏 보면 많아 보이네요. 그런데 추경호 장관이 이 금액을 다 보장해도 GDP(국내총생산)의 1%가 안 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장애인복지지출 평균은 2.02%인데요, 이 수치의 절반도 안 됩니다. 숫자 얘기가 나와 조금 머리 아프실 수 있는데요, 자세히 살펴볼게요. 정확히 비교해 볼 수 있는 수치는 2017년 것이 최신이라, 이 연도를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국가통계포털에 접속하시면 연도별 GDP를 볼 수 있습니다. 2017년의 명목GDP는 약 1835조 7천억 원입니다. 당시 한국의 장애인복지예산은 11조 191억 원으로, 명목GDP의 약 0.6%입니다. OECD에서도 2017년 한국의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을 0.6%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 KOSIS 국가통계포털)

외국은 우리나라보다 3.3배 많은 돈을 장애인복지에 쓰고 있습니다. 같은 2017년 기준, OECD 가입 국가의 장애인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평균 2.02%입니다.

이 통계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난해 9월 30일에 발표한 자료, ‘2022년 장애통계연보’에도 나와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주무기관은 보건복지부예요. 그러니까 이는 공신력 있는 ‘국가 오피셜’ 통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이 통계를 그래프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관련 자료: 한국장애인개발원, ‘2022 장애통계연보’)

“한국의 장애인복지지출은 유럽 주요국은 물론 일본의 장애인복지지출 1.08%(2017년)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음.”

‘국가 오피셜’ 통계에서 이렇게 설명하니 거참 창피하네요. 추경호 장관이 장애인권리예산을 다 보장해도 한국은 OECD 가입국 장애인복지지출 평균의 절반도 못 따라가는 현실입니다. OECD 가입국과 비슷해지려면 장애인복지예산을 적어도 3배는 늘려야 합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11조 원에서 33조 원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추 장관은 지난해 7월에 전장연을 만나서 ‘장애인권리예산을 다 반영하면 나라 망한다’고 했대요. 장애인복지예산을 30조 원까지 늘려도 OECD 가입국 평균을 못 따라가는데, 장애인권리예산 1조 3천억 원 늘린다고 나라가 망하려나요. 게다가 한국 GDP 순위는 세계 10위(2021, 국제통화기금(IMF))라고 해요.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인데 장애인복지지출은 하위권입니다.

올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복지예산을 자연증가분 정도만 증액하고 ‘땡’ 쳤어요. 자연증가분은 물가 상승이나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매년 당연하게 늘어나는 액수를 뜻하는데요, 이 자연증가분 빼고,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가지고 증액한 예산은 약 106억 원뿐입니다.

지난 2월 2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혜화역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열린 지하철 문 안으로 승강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지난 2월 2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혜화역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열린 지하철 문 안으로 승강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주파수 고정! 여기는 승강장입니다

오늘도 바쁘게 출근하시는 서울 시민 여러분, 그중에서도 전장연이 미워죽겠는 시민 여러분, 혹시 아침 8시~9시쯤 출근길에 전장연 활동가들이 승강장에 있는 걸 보신 적 있나요?

활동가들은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시위는 7월 19일까지 하지 않기로 했대요. 그때까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약속을 기다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비마이너 기획연재 ‘승강장일기’)

장애인권리예산을 다 반영해도 OECD 가입국 장애인복지지출의 절반도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저희 기자들이 1조 3044억 1백만 원의 실체를 자세히 뜯어보니 정말 별것 없더라고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19일부터 1조 3044억 1백만 원의 내용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동권, 탈시설 권리, 자립생활 권리, 노동권, 교육권, 장애인권리보장법으로 나눠서 각 분야의 ‘투쟁 전문가’를 모시고 자세히 여쭤봤습니다. 투쟁 전문가와의 대담을 라디오 녹취록처럼 풀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시민으로서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한국 사회를 장애인과 함께 소망하면 좋겠습니다.

자, 이제 매일 스마트폰과 노트북에서 주파수를 맞춰주세요. 주파수는 www.beminor.com 입니다. 읽히는 라디오 ‘여기는 승강장입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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