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등편의법 시행 20년…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간 보장하라”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정부 대상으로 차별구제 소송 제기

휠체어 탄 장애인이 1층 편의점에 들어가려고 하나 턱 때문에 갈 수 없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1층 편의점에 들어가려고 하나 턱 때문에 갈 수 없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명시한 각종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계단과 턱 때문에 건물 1층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을 상대로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11일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각각 20년, 10년 된 날이다. 이 법들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이 편의점, 카페 등 공중이용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주, 국가 등에 대책을 마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턱과 계단 때문에 법은 무용지물이다. 설령 시설에 들어갈 수 있어도 내부 구조가 휠체어 탄 장애인 등이 이동하기 힘들거나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이 없고, 화장실조차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가령, 커피 전문점인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작년에 가장 많은 매장을 냈지만 서울 중구, 종로구 일대의 매장 중 단차가 있거나 계단이 두 개 이상 있어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의 접근이 어려운 매장은 45%에 이른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직영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의 GS25 역시 편의점 출입문에 있는 턱, 비좁은 내부 등으로 인해 접근이 어렵다. 서울과 제주의 신라호텔은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전체 객실의 3% 이상을 장애인 등이 이용 가능한 객실로 갖추어야 하지만 그 수가 부족하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호텔신라와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 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1일 투썸플레이스 명동역점과 GS25 남산제일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턱과 계단이 없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공간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김명학 씨(지체장애인)는 이번 소송의 원고로 참여했다. 김 씨는 “턱과 계단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가고 싶은 식당에 가지 못한다”면서 “이번 소송 제기는 장애인에게 시혜와 동정을 베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계단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것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소송으로 더 나은,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고인 김활용 씨는 휠체어는 이용하지 않으나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씨는 “재작년에 고관절 수술을 해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아주 힘들다"면서 ”제 삶에 너무나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보행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이나 음식을 자유로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인의 경우 편의점이나 카페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가게 앞에 덩그러이 놓여있는 계단을 볼 때마다 노인이 됐다는 사실에 착잡함을 느끼고 사소한 일에도 자꾸 겁이 난다“면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노인이 된다.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시설이 자꾸만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참여를 단절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고 발언했다.

해당 소송의 변호인을 맡은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헌법,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 따라 보장되는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 소송을 제기했다”고 소송 취지를 밝히며 “만일 이번 소송이 승소해 1층에 위치한 공중이용시설에 경사로가 설치되거나 높이 차이가 제거되면 휠체어 사용 장애인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유모차 사용자, 화물 운반자 등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물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호텔신라와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 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호텔신라와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 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원고로 참여한 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구제 청구와 손해배상청구를 동시에 제기한다. 장애인들은 피고 투썸플레이스와 GS리테일을 대상으로는 △통행 가능한 접근로 △단차 없는 출입구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요구하며, 가맹점 사업자에게 편의시설 설치 기준 제시, 점포환경 개선 요구와 비용 일부를 부담하라고 청구했다. 피고 호텔신라엔 장애인용 객실 제공을, 대한민국엔 손해배상 500만 원을 청구했다.

원고로 참여한 노인과 영유아동반자는 피고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대한민국이 헌법과 장애인등편의법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500만 원을 청구했다. 

과거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지역 주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는 시설은 전체의 83.3%로 나타났으며 설치하지 않은 경우도 67%나 되었다. 또한, 경사로를 설치하였더라도 법적 기준을 충족한 경우는 39.4%에 불과했다. 주차장을 갖춘 곳 중 47.3%에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설치되어 있었고 설치한 경우에도 법적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장추련은 “이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서 “적어도 1층에 있는 공중이용시설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들은 앞으로 현행 제도에서 문제가 되는 ‘공중이용시설의 바닥면적이 300㎡ 미만인 경우는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 등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입법 운동, 1층 접근권 개선 프로젝트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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