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평 이하 건물, 장애인 편의시설 면제’ 90% 이상 점포가 해당
장애인등편의법 개정해서 모든 시설 ‘의무 설치’해야

휠체어를 이용하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뿅망치로 턱을 내리치는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를 이용하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뿅망치로 턱을 내리치는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현재 식당, 편의점, 커피숍, 호텔 등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어렵다. 출입구에 턱이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건축물에 경사로, 점자 표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로 설치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외가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제3조 별표 1에 따르면, 1998411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바닥 면적 300(90) 이하인 건물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체 생활편의시설 중 약 90%90평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대부분의 식당, 편의점, 커피전문점에 들어갈 수 없다. 물론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그런 곳은 드물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장애인은 건물주 선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장애계는 이런 현실을 지적하며 장애인등편의법에서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예외 기준을 삭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생활편의시설 장애인 접근 및 이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생활편의시설 공대위)11,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층이 있는 삶이라는 이름의 플래시몹을 펼쳤다.

생활편의시설 공대위가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생활편의시설 공대위가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계단으로 인해 가게에 들어갈 수 없는 장애인 접근권의 현실을 표현한 작은 모형 작품. 높은 계단이 설치된 곳 위에 패스트푸드, 은행, 카페 등의 모형이 있다. 그 계단 아래에는 휠체어 한 대가 놓여 있다. 사진 하민지
계단으로 인해 가게에 들어갈 수 없는 장애인 접근권의 현실을 표현한 작은 모형 작품. 높은 계단이 설치된 곳 위에 패스트푸드, 은행, 카페 등의 모형이 있다. 그 계단 아래에는 휠체어 한 대가 놓여 있다. 사진 하민지

이재근 법무법인 한남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투썸플레이스에 경사로가 없으면 스타벅스에 가면 된다. 스타벅스에 계단이 있으면 제가 잘 아는 다른 카페에 가면 된다. 그런 식으로 다 포기하고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가 본 곳에만 가게 된다. 누군가는 몸도 불편하신 분이 그냥 집에서 커피 내려 드시면 되지라고 한다. 이건 정당하지 않다. 가 본 곳 말고 가 보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어야 한다. 1층에 가고 싶다는 기본적 권리를 도외시한 법은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영철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또한 장애인등편의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소장은 장애인에게 계단과 턱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문제다. 법이 있어도 차별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다. 참 억울하다. ‘1층이 있는 삶이란 말에 감동했다. 턱 때문에 1층에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등편의법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정부가 2006년에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국내법과 같은 자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안 지키나. 협약 3조에는 국가가 장애인의 교통, 보건, 교육, 거주 등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명시해 놨다. 장애인의 권리가 쓰레기인가? 쓰레기가 아니란 걸 오늘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턱이 있는 점포 앞을 지나가고 있다. 턱에는 '계단 조심하세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턱이 있는 점포 앞을 지나가고 있다. 턱에는 '계단 조심하세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생활편의시설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광화문광장 근처 커피전문점 세 곳과 소매점 한 곳에 들렀다. ‘1층이 있는 삶플래시몹을 하기 위해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뿅망치를 들고 엔제리너스,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올리브영 앞으로 갔다. 출입구 앞에는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뿅망치로 턱을 내리치는 플래시몹을 펼치며 턱 없애 주세요”, “우리도 들어가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모 커피전문점 직원은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이건 업무방해라고 말했고 생활편의시설 공대위는 휠체어 진입을 막는 턱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플래시몹이 끝나고 진행된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김용혁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 1조에는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왜 이 법이 90평 미만의 면적의 시설주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법의 문제점을 20년간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오늘 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투쟁을 시작한다. 법이 바뀌는 날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배제의 경험을 토로하며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박김 대표는 뿅망치가 아니라 도끼로 계단을 부수고 싶었다. 비장애인은 두 발로 쉽게 계단을 올라갈 때 휠체어 바퀴는 올라갈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멍하니, 망연히 (계단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경험을 20년 넘게 해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 당당하게 소비하고 싶다. 우리 동네와 골목에서 권리를 찾아가자라고 말했다.

한편, 20대 국회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예외 기준과 관련하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축 시기 기준을,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닥 면적 기준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국회 만료로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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