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전기레인지 조작이 터치 방식이라 스티커로 각 버튼 위치를 표시했다. ⓒ김헌용
전기레인지 조작이 터치 방식이라 스티커로 각 버튼 위치를 표시했다. ⓒ김헌용

가려진 접근성 문제들

2019년 가을, 이사를 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 집에 들어서는 순간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아본 집 중 내부 인테리어가 가장 깔끔했다. 냉장고, 세탁기, 전기 레인지, 에어컨이 모두 붙박이고 현관문에는 자동 잠금장치도 장착되어 있었다. 더할 수 없이 매끈했다. 아뿔싸! 그런데 매끈해도 너무 심하게 매끈했다. 전기 레인지에도, 세탁기에도, 잠금장치에도 손으로 만지고 조작할 수 있는 물리 버튼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매끈함이 곧 모던의 상징이라는 듯, 인덕션과 도어록을 포함해 빌트인 가구의 모든 조작 패널은 터치스크린이었다. 잠깐! 방금 문장에 사용된 외래어들을 주목하라. 오늘날 시각장애인이 새집에 산다는 것은 이렇게 한국어로 쓰였지만, 외래어가 여섯 개나 섞인 문장을 읽는 것처럼 이질적이다. 단순히 이질적일 뿐 아니라 차별적이다. 이전에는 적어도 혼자서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조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칫 카드 열쇠를 깜빡 잊고 나오면 집에 들어갈 수도 없다. 21세기에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가장 익숙한 자신의 집으로부터 소외됨’

현관문 잠금장치가 터치 방식이어서 번호 옆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김헌용 
현관문 잠금장치가 터치 방식이어서 번호 옆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김헌용 

2020년, 코로나는 학교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원격 수업으로의 대전환. 모든 교사가 패닉에 빠졌지만, 장애인 교사만 했을까? 장애인 교사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은 1시간이 멀다 하고 메시지가 소복이 쌓여갔다. 원격 수업 플랫폼으로 채택된 대다수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은 시각장애 교사에게 접근이 불가능했다. 다른 장애를 가진 교사라고 상황이 더 낫지는 않았다. 청각장애 또는 뇌병변장애 교사에게는 영상 수업에 목소리로 설명을 입히는 일이 최대 난관이었다. 지체장애 교사에게는 오랜 시간 컴퓨터를 세부적으로 조작해야 하는 피로가 더해졌다. 요컨대, 시각장애 교사들은 원격 수업 플랫폼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고, 청각 및 다른 장애 교사들은 수업 실행 과정에서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가까스로 해결해나갈 즈음, 전국의 장애인 교사들로 구성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 교육부와 교육청 앞으로 절박한 공문을 발송했다. 장애인 교사 등 학교 내 정보 약자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교육청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답변이 없었다. 그 한 교육청은 유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알려왔다.

“저희가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위 두 에피소드는 지난 1년 사이 내가 접근성(accessibility)과 관련하여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접근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상버스와 경사로, 엘리베이터를 떠올리면 접근성이 장애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대 이후 장애인 이동권에 있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접근성 이슈에는 이렇게 눈에 잘 띄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장애인을 구원하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이다. 기존에 장애인이 소외된 사회에서는 기술 발전이 차별을 한층 심화시킨다. 적어도 2019년과 2020년 내가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그렇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인가? 그 사실이 장애인은 슬프다. 시각장애인은 키오스크가 들어선 음식점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집 현관문과 세탁기 앞에서도 소외된다. 청각장애인은 일상의 대화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비대면 화상 회의 스크린 뒤에서도 소외된다. 휠체어 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지하철역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책상 앞에서도 소외된다.

교실 안에서 김헌용 교사가 등교한 학생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끼고 수업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점자정보단말기가 들려 있다. ⓒ김헌용
교실 안에서 김헌용 교사가 등교한 학생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끼고 수업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점자정보단말기가 들려 있다. ⓒ김헌용

희망은 ‘보편적 디자인’

그러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던가? 다행히 해결의 방향은 나와 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하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이 칼럼을 읽는 독자가 이 문제를 두고 몇몇 전문가 또는 엔지니어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해결의 방향은 의심의 여지 없이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다만, 저상버스와 경사로, 엘리베이터를 넘어선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사실 절실하다. 그래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추운 겨울날, 나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 수술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 시력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고 한 처음이자 마지막 눈 수술이었다. 부분마취를 한 덕에 의사가 내 눈을 고쳐보려 애쓰는 순간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는 ‘효과 없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십수 년을 안 보이는 채로 살아왔으니 더 힘들어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 머문 며칠이 전혀 의미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장만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힐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아이폰은 이미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화면에 사람이 몇 명 있는지 알려줄 정도로 강력한 보이스오버 기능(화면을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 손으로 부모님 얼굴 사진을 직접 찍어드릴 수 있었다. 요컨대, 의학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입원했는데 기술을 통해 새로운 빛을 얻은 셈이었다.

이제 아이폰에서 시작된 접근성 기능은 거의 모든 스마트폰으로 확대되었다. 시중에 있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기본 설정 메뉴에서 접근성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단말기는 물론 애플리케이션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제 나는 8년 전보다도 더욱 강력해진 접근성 기능으로 카카오톡에서 채팅과 선물을 주고받고, 줌 화상회의에 참여하며, 쿠팡에서 물건을 배송시킬 수 있다. 장애를 경감해주는 ‘착한’ 기술인 셈이다. 단,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사의 6대 가치 중 첫 번째 가치가 다름 아닌 ‘접근성’이라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착한 기술이 돈이 아닌 철학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애플의 팀 쿡 CEO가 여러 자리에서 접근성에 관해 했던 말은 전 세계 장애인에게 울림을 준다.

“애플은 접근 가능성이 인간의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린더 카니, 『팀 쿡』, 다산북스, 2019, 9쪽.)

두 번째 사례는 2014년, 영국에서 경험한 일이다. 나는 좋은 기회로 영국으로 장애인 청년 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 연수 프로그램에서 좋았던 것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현지 시각장애인들을 만난 점이다. 그중 한 명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내 또래인 그는 영국 시각장애인의 삶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든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왔다.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 우리 일행은 뷔페식당 앞에서 그 영국인을 만났다. 나는 늘 그랬듯이 동행자에게 음식을 떠달라고 부탁하면서 홀로 온 그 시각장애인 영국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호텔 직원이 그에게 다가와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익숙하게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이야기했고, 직원은 그를 자리로 안내한 후 내가 지금까지 본 어느 호텔 직원보다 친절한 태도로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테이블로 와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했고 그때마다 몸에 밴 익숙한 친절이 묻어나왔다. 그러한 서비스가 그 호텔의 고객 응대 매뉴얼에 따로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러한 서비스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후로 한국에 돌아온 나는 몇 차례 고가의 뷔페식당에서 영국에서 보았던 서비스를 요청한 적이 있다. 물론 어느 식당에서도 그러한 서비스를 먼저 제안한 적은 없었고, 대부분 내게 동행자가 없는지를 먼저 물었다. 한번은 ‘장애인 고객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지원할 여력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중간관리자와 지난한 논쟁을 벌여야 했고, 그 바람에 모처럼의 식사 자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제아무리 키오스크에 여러 번 외면당해본 사람이라지만, 고가의 식당에서까지 외면당하니 더욱더 서러웠다.

우리나라도 2018년 5월부터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 모든 사업체로 의무화되었다. 이제는 장애인을 대하는 식당들의 인식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보편적 디자인은 원래 건축과 물리적 환경에 주로 쓰이던 개념이지만, 근래에 와서는 안내문이나 서비스와 같은 무형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사실 보편적 디자인은 별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성별이나, 장애, 연령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쉽고 편하도록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 디자인이다.

김헌용 교사가 원격수업 촬영을 위하여 구룡중학교 영어 교과실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노트북과 함께 점자정보단말기가 놓여 있다.  ⓒ김헌용
김헌용 교사가 원격수업 촬영을 위하여 구룡중학교 영어 교과실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노트북과 함께 점자정보단말기가 놓여 있다. ⓒ김헌용

인식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디자인을 위하여

보편적 디자인은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기본권 보장의 조건이지만, 소위 선진 기업이나 국가에서 좋은 선례가 더 흔히 발견된다. 기본권은 정의상 경제적 상태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권리인데도 말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건물 설계, 웹 디자인, 서비스 교육 등 초기 단계부터 접근성이 치밀하게 고려되어 더 많은 인적 자원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듭 강조컨대 그 비용은 장애인만을 위한 비용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용이다.

한 가지 주지할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보편적 디자인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2008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보접근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며 이를 악의적으로 어기는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국가정보화 기본법」에서도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보장’ 의무를 규정하여 장애인 등 정보 약자가 웹 및 모바일 환경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탄탄히 하고 있다. 이 법령들에 따라 웹 및 모바일 접근성 지침이 제정되어 각 공공기관이나 민간업체에 대한 접근성 인증 제도가 운용되고 있으며, 지침이 잘 준수되는지 테스트하는 단체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접근성을 보장하는 조약과 표준이 다양하게 제정되어 있다.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W3C:World Wide Web Consortium)’은 1999년 처음으로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을 수립하여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고, 국제표준화기구(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는 2014년 접근성에 관한 지침을 제정하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은 일찍이 접근성을 장애인의 기본 권리로 천명했다. 이들 조약과 표준은 당연히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준수하는 국제규범들이다. 이렇게 국내법, 국제법, 국제표준들이 층층이 감싸고 있는 만큼 우리에게도 접근성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그 덕분인지 애플의 아이폰뿐 아니라, 삼성의 세탁기 광고에서도 이젠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언급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대중의 의식 속에서 접근성이란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고 어렵다.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이다. 아직 특정 물건, 서비스, 콘텐츠가 보편적 디자인을 잘 준수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아래와 같이 대상자를 구체화하여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환갑의 아버지가 이 사이트에서 물건을 혼자 구매하실 수 있을까?’

‘지적장애인 동생이 이 강의를 혼자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교통수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혼자 목적지에 찾아가실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이는 서비스 또는 콘텐츠의 접근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조금 더 쉬운 말, 조금 더 직관적인 안내 표시, 한 가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두는 것 등은 보편적 디자인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그럴 때 접근성은 높이고 장벽은 낮출 수 있다.

배려는 필요하나 이는 배려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법령을 정비하여 공공기관 및 민간업체에 접근성 준수 의무를 더욱 강력하게 부과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의 이해가 더욱 깊어지길 희망한다. 만약 당신이 물건, 서비스 또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보편적 디자인’이라는 말을 늘 염두에 두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보편적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자,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누군가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술이므로 당신 또한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행복해질 것이다.

필자 소개

김헌용. 구룡중학교 영어 교사. 장애, 외국어, 음악을 평생의 주제로 삼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세에 실명했고, 2010년에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2019년부터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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