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빈곤철폐의 날, 장애인·홈리스·철거민·노점상·상인·노동자 모여 한 목소리
빈곤층 소득 감소, 주거비 체납·퇴거로…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 보장해야”

 1070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는 12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유령을 상징하는 하얀색 천을 덮어쓰고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1070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는 12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유령을 상징하는 하얀색 천을 덮어쓰고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여기 사람이 있다.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저항하는 철거민이, 무조건적 단속에 저항하는 노점상이, 시설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요구하며 싸우는 장애인이, 빈곤과 차별을 거부하는 홈리스가, 불평등한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 민중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문 중)

1017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는 12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코로나 시대에 쫓겨나는 사람들의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을 마치 ‘유령’처럼 취급하는 정부와 사회를 비판했다. 활동가들은 이룸센터 앞에 설치된 컨테이너 농성장에 층층이 올라가 하얀색 가운을 덮어쓴 채 “못 보는가, 안 보는가? 사람이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 한국 코로나19 대응 예산, 경제선진 10개국 중 ‘꼴찌’

코로나19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정부는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예산 편성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한국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2019년 기준 OECD 평균(20%)에 비해 크게 낮은 12.2%에 불과하며, 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다. 또한 2020년 말 기준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사용한 예산 비율은 GDP 대비 13.6%로, G20 경제선진 10개국 중 꼴찌다. 이 중 추후 자금을 상환하는 대출 등의 간접지원이 10.2%이고, 직접지원은 3.4%에 불과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코로나19 시기,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가진 자들은 더 갖는 세상이 되고 있다”라며 “정부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생계급여에 있어 ‘완화’된 수준이고, 의료급여는 폐지되지도 않았는데, 정부는 60년 만에 폐지되었다고 사기를 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정부에 속지 않겠다. 의료급여까지 완전히 폐지되는 날까지 투쟁을 결의하자”라고 외쳤다. 

한 참가자가 '든든한 사회보장이 방역의 기초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 참가자가 '든든한 사회보장이 방역의 기초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재난의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설 곳을 점점 잃고 있다. 쪽방이나 고시원에 사는 사람, 혹은 거리홈리스들이 쉴 수 있는 기차역·지하철 대합실 등 휴게 공간이 폐쇄되고 방역을 빌미로 홈리스를 강제퇴거 하는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개발정책에 의한 강제집행과 철거는 허가되면서, 철거민과 노동자의 집회신고는 반려되어 목소리도 낼 수 없다.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은 “LH·대장동 사태가 지금 한국의 주거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안전망을 위해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그 투기 현장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과 상실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라며 “개발지역에는 가난한 노동자와 노점상, 고시촌 및 쪽방촌 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서 건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러스는 누구나 공평하게 감염되지만, 고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무겁게 지워진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지난 1월 말, 서울역 노숙인시설을 이용하던 거리 홈리스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됐다. 이후 서울시는 홈리스에게 노숙인시설 이용 시 매주 코로나 검사를 요구했다”라며 “그 어느 사회복지시설도 이용자에게 매주 검사를 요구하는 곳은 없다. 홈리스들은 신분증이 없고 핸드폰이 없어 코로나 검사를 하기 번거로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거리 홈리스들은 하루 밥 3번 먹을 것을 1번 먹으며 버티고 있다”라고 서울시와 정부를 규탄했다. 

참가자들이 유령을 상징하는 하얀색 천을 덮어쓰고 피켓을 든 채 나란히 서있다. 사진 이가연

- 빈곤층 소득 감소, 주거비 체납·퇴거로…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 보장해야”

정부가 재난의 위기를 개인에게 전가한 결과, 빈부와 불평등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21년 2/4분기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상위 20%의 소득은 전년 대비 1.4% 증가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은 6.3% 감소했다. 

문제는 이러한 빈곤층의 소득 감소가 주거비 체납으로 인한 퇴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공공임대주택 임대료 체납으로 인한 ‘퇴거위기 정보’가 전년 대비 무려 74.2% 증가했다. 반면에 상위 자산가의 자산 점유율은 매년 증가해 2020년에는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43.7%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빈곤층의 주거비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가운데, 최근 SH가 장기전세주택 입주민들에게 보증금을 규정상 최대치인 5%로 인상하겠다는 통보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SH는 주변 시세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는 “장기전세주택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마련한 제도인데, 주변의 시세가 올랐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보증금을 인상했다. SH가 서민을 위한 제도를 돈벌이로 여기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SH가 임대료를 동결해도 입주민들이 ‘버틸까 말까’한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는데, 공공이 아닌 다른 민간의 영역에서는 얼마나 가혹할지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이들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 확대 △사람에 대한 직접 지원 확대 △퇴거·철거 금지 △일자리 대책 마련 △부동산이 아닌 주거권 보장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방역과 생존 등을 요구했다. 

여의도 컨테이너 농성장에 하얀색 천을 덮어 쓴 사람들이 각각 피켓을 들고 있고 가운데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맨 윗층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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