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이후 또다시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
확진자는 거리 방치, 고시원·쪽방에 코호트 격리
서울시, “임시생활시설, 대체 숙소 제공”하라는 인권위 권고 무시
추모제기획단, 조인동 행정부시장 면담 요구
서울역 광장에서 거주하는 홈리스 ㄱ 씨는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러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광장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경찰은 ㄱ 씨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ㄱ 씨 주변을 둘러싸 감시하며 ㄱ 씨의 행동을 통제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홈리스는 ‘확진 받으면 사형선고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저렇게 광장에 사람을 세워놓고 감시하면서 ‘이 사람이 확진자’라고 광고하는데 나도 확진자가 될까 봐 무섭다’며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용산구 소재 고시원에 사는 ㄴ 씨는 고시원 방을 놔두고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했다.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ㄴ 씨 또한 병상이 부족해 병원에 가지 못한 채 고시원에 격리돼 있다. 고시원은 화장실과 주방을 수십 명이 함께 써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집단감염에 더욱 취약하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서울시는 고시원을 사실상 완전 봉쇄(코호트 격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 주민 ㄷ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지 열흘이 지나서야 병원에 이송됐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아래 인의협) 공동대표는 “코로나19 특성상 증상 발생 2~3일 전부터 전파력이 있고 증상 발생 이후부터는 전파력이 최대다. 돈의동 쪽방 주민은 전파력이 제일 높을 때 쪽방에 격리돼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2021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은 “일부 쪽방 임대인은 주민이 열나고 기침만 해도 강제퇴거시키거나 방을 폐쇄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이후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가 다시 시작된 가운데 서울시와 방역당국은 안일한 대처로 일관 중이다. 추모제기획단은 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확진자 및 밀접접촉 홈리스에게 임시생활시설, 생활치료센터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 1월 집단감염 이후 인권위 권고도 받았지만… 홈리스 확진자 방치 그대로
올해 1월 서울역 노숙인 시설 집단감염으로 100여 명의 홈리스가 확진되고 250여 명의 밀접접촉자가 발생한 이후 또다시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시 코로나19 발생동향에 따르면 영등포노숙인시설과 동대문노숙인시설, 영등포고시원 확진자는 총 125명이다. 추모제기획단 활동가들이 서울역 인근과 종로구 쪽방촌을 자체 조사한 결과 확진자는 50명이다. 두 통계를 합하면 총 175명으로, 지난 1월 확진자 수 100여 명보다 많은 수치다.
추모제기획단은 “감염 거점이 여러 지역에 걸쳐 있고 주거형태도 노숙인일시보호시설, 노숙인생활시설, 쪽방, 고시원 등 다원적이고 동시다발적이어서 추가 감염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하지만 서울시와 정부 대응은 미흡하기만 하다.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확진자가 고시원 등 필수 공간(화장실, 주방 등) 분리가 어려운 곳에 거주하는 경우 생활치료센터에 우선 입소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지난달 29일에도 “재택치료가 원칙이지만 감염에 취약한 주거환경인 경우 입원치료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사례처럼 홈리스 확진자를 거리에 방치하고, 고시원과 쪽방을 완전 봉쇄해 내부 집단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전담병동에서 확진자를 치료하는 내과의사, 이보라 인의협 공동대표는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 코로나19에게는 아주 좋은 대지가 된다. 홈리스가 확진자, 밀접접촉자가 되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신속하게 치료받고 격리돼야 한다. 그런데 홈리스 확진자가 광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방치돼 있단 얘길 듣고 경악했다. 고시원과 쪽방은 내부를 너무 작게 나눠놔서 환기도 안 되고 창문도 없는데, 그곳에 확진자가 격리돼 있다면 코로나19가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라며 “서울시는 모든 시민이 제대로 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방역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 때도 미흡한 대응으로 규탄받은 바 있다. 당시 밀접접촉 홈리스 수십 명을 내무반 형태의 일시보호시설에 몰아넣었다. 화장실이 없거나 고장 난 컨테이너에 수용하기도 했다. 또한 확진자 병원 이송이 늦어져 치료가 지연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 5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격리돼 생활할 수 있는 시설 추가 확보 △임시주거지원사업 확대 △대체 숙소 제공 등 홈리스를 코로나19로부터 보호는 정책과 주거대책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같은 권고를 이행한 바 없다.
이에 추모제기획단은 지난달 29일, 복지정책실과 시민건강국을 총괄하는 조인동 서울시 행정1부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면담을 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