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자르기’ 사과문으로 논란 더 키워
홈리스·성소수자도 지하철 밖으로 내몰았던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공사 사장과 서울시장이 책임져라!”

서울교통공사 전경. 사진 이슬하
서울교통공사 전경. 사진 이슬하

서울교통공사 내부 문건 사태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시위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언론공작을 펼친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0여 명은 18일 오전 10시, 서울시 성동구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 앞에 집결해 공사를 규탄했다. 현장에는 주요 언론사 취재진이 몰려 공사 문건의 파장을 실감케 했다.

논란이 커지자 공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는 장애인의 더 큰 분노를 불러왔다. 공사는 “직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선 긋기를 시도했다. 활동가들은 이를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하며, 김상범 공사 사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에서 작성한 문건. 제목은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이다.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에서 작성한 문건. 제목은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이다.

- 부정적 여론 만들어 시위 무력화 전략… 릴레이 규탄 발언 1시간 30분 이어져

논란의 문건은 지난 4일 공사 내부 직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후 지난 17일 새벽 YTN 보도를 통해 문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문건에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한 공사의 대응 지침이 담겨 있다. “(장애인) 차별 발언 등으로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전장연)이 무리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면서 (부정적 여론을 일으킬 만한 실수를) 디테일하게 찾아야 한다”, “법적 대응은 승리가 확실할 때 시행하고 상대방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를 펼치되 직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하자” 등 시민에게서 부정적 여론을 끌어내 장애인 시위를 무력화해야 한다는 문제적 내용이 논란이 됐다. 

문건의 대응 지침은 실제로 이행됐다. 지난달 22일 공사는 보도자료에서 “한 시민은 자신의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측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다며 현장에서 울면서 항의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직후 ‘할머니 임종 사건’에 관한 보도가 급증하고 해당 라이브 영상을 ‘악마의 편집’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문건에서는 ‘할머니 임종 사건’이 전장연의 “결정적 미스”였다며, 이를 통해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듯 평가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공사는 17일 오후 3시경, 사과문을 발표했다. 공사는 사과문에서 “직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여론전을 전개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수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공사 문건으로 만든 팻말을 들고 있다. 팻말에는 ‘앞으로의 대응은 어떻게? / 상대방도 실점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꼼꼼히 Catch / 전장연도 '사람'이 있는 조직: 선 넘는 미스는 충분히 한다 / - 과거와 달리 정보 노출할 수단이 풍부해진 현재는 사소한 미스가 여론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임 / - 이번 시위에서 공사가 Catch한 전장연 측 미스 → 바퀴를 열차-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넣기+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사진 확보 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증빙하는 것이 됨’이라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김영수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공사 문건으로 만든 팻말을 들고 있다. 팻말에는 ‘앞으로의 대응은 어떻게? / 상대방도 실점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꼼꼼히 Catch / 전장연도 '사람'이 있는 조직: 선 넘는 미스는 충분히 한다 / - 과거와 달리 정보 노출할 수단이 풍부해진 현재는 사소한 미스가 여론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임 / - 이번 시위에서 공사가 Catch한 전장연 측 미스 → 바퀴를 열차-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넣기+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사진 확보 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증빙하는 것이 됨’이라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크게 분노하며, 공사를 향한 릴레이 규탄 발언을 1시간 30분간 이어갔다.

“문건을 통해 공사가 장애인을 어떻게 조롱하고 있는지 드러났습니다. ‘이기는 전략’이라 썼지만 실은 ‘차별하는 전략’입니다. 공사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지, 권리보장을 위해 목소리 내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사는 ‘지피지기 백전불태(공사가 문건에 적은 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로 장애인과 싸우지만, 장애인은 모든 시민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활동가)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쳐왔습니다. 그런데 공기업인 공사의 문건을 보면서, 공사가 장애인을 혐오했다는 슬픈 사실에 직면했습니다. 사과문은 더 어이가 없습니다. (공사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공사에 있습니다. 김상범 사장과 오세훈 시장 모두 장애인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공사 홈페이지에 가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시민 누구나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입니다. 행복한 일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하철이라도 편리하게 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황인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공사가 (비장애인 시민의) 시선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 생각했다는 게 개탄스럽습니다. 시민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갈라치기만 했지, 공공기관으로서 그간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공사의 역할은 장애인 이동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책임감을 가지고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뒤로는 서울교통공사 건물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뒤로는 서울교통공사 건물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 홈리스·성소수자도 ‘적’으로 규정하는 공사

문건에 따르면 공사의 ‘적’은 장애인만이 아니었다. 공사는 “노숙인,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과의 “언더도그마(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생각하는 현상) 싸움”이 지속해서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최근 언론에 보도된 홈리스 관련 사건과 공사가 고 변희수 하사 지하철 광고를 불허한 것에 관한 언론 보도를 언급하고 있다.

지난 1월, 공사는 서울역 야간 화장실을 폐쇄하고선 “엘리베이터 내·외부에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을 부착했다. 공공역사를 운영하는 공사가 홈리스의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해결할 수 없게 한 모욕적인 처사였다. 그런데 문건에서 공사는 당시 이에 대해 ‘공사의 홈리스 차별’이라고 비판적 목소리를 낸 언론 보도를 “언더도그마에 기반한 언론과 시민단체의 공격”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공사는 위생시설에 접근할 수 없는 시민을 동료시민으로부터 분리하고, 동료시민에게 감시를 요청했다. 그래 놓고 언론을 향해서는 ‘노숙인의 불법행위가 많아서 그런 게시문을 붙였던 것 같다’는 식의 말만 늘어놨다”며 공사를 규탄했다.

성소수자 역시 공사의 주적이었다. 지난해 9월, 공사는 고 변희수 하사의 복직 소송 승소를 기원하는 시민단체 광고를 불허했다. 광고는 인권위 권고로 7개월만인 지난 2월에야 지하철 역사에 걸릴 수 있었다.

어쓰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공사가 문건에서 예시로 든 사회적 약자들, 장애인·홈리스·성소수자는 이해나 배려를 부탁한 적이 없다. 권리의 주체로서 권리보장을 요구한 것이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일,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이해나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권리의 문제다”라며 공사의 낮은 인권감수성을 비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비마이너, 공사에 ‘명예훼손’ 사과 촉구하며 ‘사실관계 조작’ 경고도

공사는 비판적 보도를 하는 진보 매체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에 대해서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들로 인해 여론전에서 공사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마이너를 향해서는 “완전한 당(전장연) 기관지”라고 폄하하며 언론으로서의 존재를 깎아내렸다. 이에 대해 본지는 문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17일 입장문을 내고 공사에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오랜 기간 취재해 온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가 발언자로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하 기자는 “비마이너는 ‘기자 없는 기자회견’의 유일한 기자로 참석하며, 사회가 작다고 치부하는 이들의 큰 목소리를 기록하고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왔다”면서 “그러나 공사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온 비마이너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규탄했다. 

하 기자는 공사가 보도자료에서 교묘히 사실을 왜곡하고 언론공작을 펴온 행태를 비판하며 “교통약자에 대한 이동편의를 제공하기는커녕 이들의 목소리를 악마화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또한, 잘못 작성된 보도자료를 사실 확인 없이 받아쓴 기자단을 향한 쓴소리도 덧붙였다. 하 기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역사를 운영할 책임이 있는 공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언론인의 역할”이라면서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현장 한번 와 보지도 않고 베껴 쓰는 언론 관행에 동참하지 말아 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공사의 언론공작은 성공했다? 전장연, 사과 촉구에도 공사 ‘꼬리 자르기’ 급급

이번 문건에선 공사의 언론공작이 일부 성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공사가 ‘전장연 실점’으로 언급하는 세 사건은 실제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작용해왔다. 세 가지 사건이란 △열차-승강장 틈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진 사진으로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라는 여론 형성 △‘할머니 임종 사건’ 영상 △시위 주제의 거대화(‘그걸 왜 지하철에서 주장해?’)다. 

특히 YTN이 1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공사는 열차-승강장 틈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진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내며 ‘공사가 보낸 것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할 만큼 여론조작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단차의 위험을 보여주기 위해 휠체어 바퀴를 움직이던 중 바퀴가 빠져버린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난 1월 28일에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단차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끼여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표는 이동을 위해 한성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던 중 경찰에게 ‘지하철 시위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탑승을 저지당했고, 이 과정에서 휠체어 바퀴가 단차에 끼면서 앞으로 고꾸라져 떨어졌다. 이로 인해 열차는 5분간 지연됐다. 척수장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박 대표가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동안 주변에선 ‘왜 안 일어나냐’, ‘연극하고 있다’며 온갖 조롱과 욕설이 쏟아졌다고 한다.  

기자회견장에서 박 대표는 혼자서는 휠체어에 오르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활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휠체어에서 내려와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발언했다. 장애로 허리에 힘을 주기 어려운 그는 상체를 앞으로 수그린 채 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상체를 지탱하며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 텅 빈 휠체어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 텅 빈 휠체어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박 대표는 2001년 오이도역 추락사고로부터 촉발된 21년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거듭 파기한 서울시의 무책임으로 인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명시된 이동할 권리를 기획재정부가 책임지고서 예산으로 편성해 줄 것을 이렇게 무릎 꿇고서라도 외치고 싶다”면서 “벽에 막혀있는 것 같은 이 막막함을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오늘 아침에도 지하철 시위를 하며 온갖 수모를 당하고 욕을 먹었다. 그러나 백 번 욕할 때 단 한 번이라도 이야기해달라. 서울시장과 대통령, 시민이 뽑지 않았나”라면서 “장애인들이 21년간 외쳤던 이 권리에 대해 이제 시민들도 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공사가 이번 사건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직원 개인에게 책임 돌려 피해 가지 마라. 그 직원도 피해자다. 공사 사장과 서울시장이 책임져야 한다”면서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21년의 외침이 또다시 21년을 싸워야 하는 시작이 되지 않도록 책임자들이 책임져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전장연은 공사 측과 면담을 했다. 전장연은 “이번 사건을 개인적 일탈로 취급하는 공사의 사과문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며, △공사 사장의 공개 사과와 사퇴 △손해배상소송 철회 △오이도역·발산역 등 리프트 추락참사공간에 추모비 설치 △2차례 이뤄진 서울시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 미이행 공개 사과 △서울시의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면담에서 공사는 “이번 일은 조직적 차원의 일이 아니며 공사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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