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플레이 권력 쥐고 장애인 시위 악마화한 공사
내부 문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공사의 민낯
공기업이 훼손시킨 사회적 신뢰, 회복하려면?
안녕하세요.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 내부 문건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에 “장애인 전용 언론”, “당 기관지”, “여론전 용도”로 언급된 비마이너의 하민지 기자입니다. 만드신 문건은 잘 봤습니다.
- 문건 놀랍지 않다… 장애인 시위에 언제나 적대적이었던 공사
문건은 지난 4일, 공사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문건에서 공사는 서울시 지하철에서 진행되는 장애인권리보장 시위를 게임이나 경기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론전 승부는 디테일이 가른다”(0쪽), “불리한 상황에서 빌미를 제공하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진다”(14쪽), “상대방도 언제든 실점할 수 있으니 꼼꼼히 잡아내자(Catch)”(17쪽) 등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공사는 시위 대응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비유하기까지 했습니다(13쪽). 이런 인식은 당황스럽지만, 장애인 시위 현장이 전쟁 같기는 합니다. “씨발년아” 같은 욕설, “병신들이 지랄하네” 같은 혐오, “죽여버린다” 같은 협박, “지들이 불쌍한 줄 알아” 같은 모욕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지하철 시위를 자주 취재했던 제가 볼 때, 공사 직원들은 현장에서 혐오와 모욕을 부추겼습니다.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를 활동가들 얼굴 코앞에 대고 촬영하며 대놓고 불법 채증을 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아닌 공사가 채증을 하는 이유는 손해배상 소송 용도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활동가들을 향해 “예, 대단한 일 하시네요. 정말 멋집니다” 같은 말을 하며 시위를 조롱했습니다.
어떤 날은 휠체어 이용자가 지하철 내에 탑승하려던 것뿐이었는데, 공사 직원이 비장애인 시민에게 다가가 “장애인들이 또 시위를 해서요. 한두 번도 아니고 저희도 너무 힘들어요. 죄송하지만 옆 칸으로 이동하셔야 편하실 거예요. 장애인들이 시끄럽게 할 거라서요”라고 말하며 시민을 갈라치기 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여론전”인지요?
공사는 시위 현장에서 장애인을 언제나 적대시하며 장애인과 싸워왔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문건이 만들어진 건 한편으론 당연한 듯합니다. 공사 내부에 장애인 시위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직원이 이 같은 문건을 만들 수 있었겠단 생각도 듭니다.
내부 게시판에 달린 댓글이 이를 짐작케 합니다. 비마이너가 입수한 문건이 올라온 내부 게시판 캡처 화면에는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정치적 강자인 것만은 확신한다”는 직원의 댓글이 있습니다.
- 사실 조작한 보도자료 배포해 언론플레이 해놓고 “안 했다”
이렇듯 문건은 장애인 시위에 적대적인 내부 분위기를 등에 업고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강자인 장애인의 약점을 잡아 언론플레이를 잘해서 약자인 공사가 여론전에서 승리하자.’
YTN의 17일 보도(관련 기사: 서울교통공사 “장애인 단체는 싸울 상대”...‘언론 플레이’ 정황까지) 이후 공사는 ‘직원의 개인적 의견이며 공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언론플레이 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문건 17~19쪽은 다른 얘길 합니다. 여기에 나온 언론 대응 방법대로, 공사는 이미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공사의 보도자료를 바로 받아볼 수 있는 출입처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즉, 문건에 나온 “상대방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를 펼치는”(22쪽) 언론플레이 계획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먼저 17쪽입니다. 문건을 작성한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 담당자는 공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실수(미스)를 꼼꼼히 잡아냈다고(Catch)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의 휠체어 바퀴가 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에 낀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 대표가 일부러 바퀴를 끼워 넣고 지하철 운행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상하게 ‘장애인 활동가가 일부러 휠체어 바퀴를 끼웠다’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당일 현장에 취재 갔던 제가 본 장면과 달랐습니다. 이규식 대표는 틈이 이렇게 넓다는 걸 보여주려고 지나가다가 실제로 바퀴가 껴버렸습니다. 일부러 바퀴를 끼웠다 하더라도 끼워지는 넓은 간격 자체가 문제인 건데, 언론들이 이상하게 보도하길래 좀 의아했습니다. 저라도 사실을 말해야겠다 싶어 그날 쓴 칼럼에 적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사: [기자칼럼] 출근길 5호선 장애인 시위, 다 기획재정부 탓입니다)
오보 사태의 원인은 공사가 뿌린 보도자료에 있었습니다. 지난 1월 16일에 방영된 KBS1 〈질문하는 기자들 Q〉에 따르면 뉴스1, KBS 등 언론사 기자들은 장애인 단체에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공사 보도자료를 베껴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8쪽에서 공사는 “시위 주제의 거대화”를 지적합니다. 지하철에 와서 이동권 시위를 하는 건 이해하는데, 다른 권리를 이야기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걸 왜 지하철에서 주장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이 내용 또한 공사가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지난 1월 28일 배포된 보도자료 〈연일 이어지는 장애인 단체 지하철 운행방해 불법시위… 서울교통공사 “시위 자제 호소… 시민 불편 최소화 노력 다할 것”〉 4쪽에는 “탈시설 등은 공사가 어쩔 도리 없어”, “공사는 탈시설과 교육권 등 지하철과 관련이 없는 기타 주장을 펼치는 것에 난감한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봅시다. 지하철에서는 왜 시위를 하면 안 될까요? ‘시민 불편 때문에’라는 말이 바로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시위라는 게 가능한 것일까요?
시위의 본래 목적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여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여론을 형성해야 권력자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현재 장애인에게 출근길 지하철 연착 투쟁만큼 좋은 시·공간은 없습니다. 현재 많은 언론이 이 시위를 앞다퉈 보도하고 시민의 관심이 쏠린 상황이 이를 증명합니다. 즉, 지하철이라는 장소는 문제될 게 없습니다. 단지 공사가 이를 문제적으로 만드는 전술을 짰고 그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19쪽은 많은 분이 보셨을 ‘할머니 임종’ 동영상 건입니다. 공사가 먼저 보도자료에 ‘할머니 임종’ 사건을 언급해 배포했고 이를 통해 장애인 시위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입니다.
지난달 22일 공사가 보도자료를 뿌린 이후, ‘할머니 임종’을 다룬 언론 보도가 22일과 23일에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조회 수 12만 회를 넘긴 문제의 유튜브 영상은 23일에 게시됐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나 또한 이동 수단이 없어 어머니 임종을 못 지켰다. 정말 죄송하다’고 울먹거리며 한 말은 삭제된 편집본만 돌아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사는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 시위를 악마화하며 시민의 부정적 여론을 끌어내는 등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부 문건과 실제 배포된 보도자료 내용의 짝을 맞춰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사는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듯한 이미지만 챙기기 위한 언론플레이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문건 16쪽에는 “교통약자 위한 서비스는 실효성이 있든 없든 언플용으로 좋은 소재”라 명시돼 있습니다. 교통약자에게 큰 효과가 없어도 “언플용(언론플레이 용도)”으로 괜찮은 서비스라 이야기하는 걸 보니, 공사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제공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언론플레이를 정말 하지 않았습니까?
공사는 문건에서 언더도그마(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인식) 때문에 여론전에서 불리하고, 장애인복지법 등 법적 근거와 서울시가 발표한 두 차례의 이동권 약속때문에도 불리하다며 공사를 “실질적 약자”라 표현합니다. 그러나 공사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책임이 있는 공공기관입니다.
그럼에도 공사는 단 한차례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리프트 추락 사고 피해자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 승강장과 열차 간 넓은 간격과 높은 단차로 인한 공익소송 등에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변호인을 선임해 적극 대응했습니다. 문건 9쪽에 나온 대로, 2018년 신길역 휠체어리프트로 한경덕 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도 공사는 책임을 회피하다 끝내 패소했습니다.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는 공공기관인 공사가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끈질기게 보도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 광고 게시 불허, 서울역 홈리스를 배제하는 행위 등도 성실히 보도했습니다. 공공공간인 지하철 안과 역사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누군지를 조명했습니다.
그런데 공사는 이런 비마이너 보도를 공사의 불리한 점으로 지목합니다. 비판을 비난으로 듣고, 유불리를 따지며, 극악무도한 약자와 힘 없는 강자의 싸움으로 프레임을 짜는 공사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잘못된 인식 속에서 보도자료가 작성됐고 출입처 기자단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썼다는 점입니다. 관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해당 출입처 기자단이 검증 없이 받아쓰는 행태는 한국 언론계의 오랜 병폐입니다.
이런 구조로 인해 관은 언론을 제 입맛에 맞게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을 지녔습니다. 실제 공사는 이런 권력을 활용했습니다. 공사의 입장이 담긴 수많은 기사가 매일 보도됐고, 이후 사람들은 공사가 기획한 방향대로 악플을 달았습니다. 바퀴를 왜 일부러 끼우냐, 왜 노동권·교육권까지 지하철에서 말하냐, 할머니 임종을 막다니 싸이코패스냐 등.
공사에 묻습니다. 언론플레이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한 것입니까, 공사가 한 것입니까? 공사는 정말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습니까?
-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지하철을 위해
이런 공공기관의 행태는 시민이 사회에 갖는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시킵니다. 따라서 이후 시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공사의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사가 무엇보다 공공공간 운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서울 지하철은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시민의 생활공간이 됐습니다. 화장실이 급할 때 사람들은 가까운 지하철역부터 찾습니다. 지하철역은 현금인출기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며, 역사 상가에서는 밥도 먹고 옷도 사고 여러 생필품도 살 수 있습니다. 지하철역 자체가 커다란 광장이자 도시공간인 셈입니다.
그러나 공사는 이 공간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켜 왔습니다. 지하철은 서울시 전역에 미세혈관처럼 뻗어 있지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반쪽짜리 도시에서 존재가 지워진 채 살아온 것입니다.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 “우리를 모욕하지 말라”는 외침은 생존하고 싶다는 절규입니다.
현재와 같은 ‘언플용’ 사과로는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시민사회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전에 없던 구체적인 사과와 예산 반영을 통해 지하철을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공사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런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날, 비마이너 또한 기쁘게 취재 갈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