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 반올림 노숙농성 1주년

“사회자님, 우리 이어말하기에 이재용 씨 한번 초대해 보면 어떨까요? 꼭 한번 해보고 싶은데.”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의 어머니, 김시녀 씨)

“저도 꼭 초대해 보고 싶어요. 공문 한 번 보내보겠습니다. 이재용 씨 오시면 우리 모두 갤럭시노트7 들고 만납시다. (웃음)”

‘이제 삼성이 답하라’라고 적힌 큰 플랑을 뒤로 한 무대에서 사람들은 이재용 씨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우뚝 선 삼성 사옥 앞에서 꼬박 1년 동안 그들이 외친 것은 다만 그것, ‘삼성 이재용과 대화하자’였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365일을 넘겼다. 2016년 9월 기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직업병 피해 노동자의 수는 총 224명, 사망자는 76명에 달했다. 이들이 걸린 질병도 백혈병을 비롯해 뇌종양, 다발성경화증 등 다양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책에 대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인 보상기준을 발표하고 사건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이에 반올림은 7일 저녁, 강남역 8번 출구에 다시 모여 연대단체들과 농성 1주년 맞이해 문화제를 열고, 다시금 삼성의 성실한 대화와 협상을 요구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반올림 농성 1주년을 맞아 '이제 삼성이 답하라'라는 주제로 문화제가 열렸다.
반올림 농성 1주년을 맞아 '이제 삼성이 답하라'라는 주제로 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는 ‘방진복 퍼포먼스’가 첫 문을 열었다. 방진복(防塵服), 즉 먼지를 차단하기 위한 옷이다. 삼성에서 일하다 직업병 피해를 입고, 또 사망에까지 이르렀던 많은 이들은 모두 이 옷을 입고 일을 했다. 먼지는 반도체에 닿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먼지들로부터 제품을 지켜줬던 방진복은 그러나, 공장 내의 온갖 유해물질들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했다. 방진복 속 노동자의 몸 또한 먼지와 같이 차단되었다. 퍼포먼스는 그렇게 방진복 속에서 스러져간 노동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부동자세로 침묵 속에 진행되었다.

“우리가 입고 있는 방진복 등판에는 사망자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모두 76명입니다. 그 분들의 이름을 출력해보니 두께가 엄청 나더군요.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이름의 숫자가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방진복 퍼포먼스'

반올림의 농성장은 작았고, 삼성 경비들의 방해 속에서 항상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지만, 1년 동안 전혀 외롭지 않았다. 총 340명의 손님이 방문해 ‘이어말하기’로 1년의 시간을 채워갔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이들과 나눈 이야기 중 일부를 추려 <이제, 삼성이 답하라>라는 책자에 담았다. 책자의 두께는 상당했지만, 가격은 고작 5천 원.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는 “가격의 장벽 때문에 많은 분들이 삼성의 문제를 알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저렴한 가격에 준비했다”면서 “그러나 여기에 담긴 내용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 삼성이 1년 간 이어진 이어말하기에 이제는 답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권 활동가는 책에 담긴 이야기 중 한 구절을 낭독했다. 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직원 김은숙 씨가 오열하며 전한 말이었다.

“삼성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삼성은 우리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 즉 직접 협상을 해야 합니다. 왜 우리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쓸데없이 다른 곳과 협상을 합니까? 삼성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삼성을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는지. 삼성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그 가족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이 우리 딸이 일하던 곳입니다. 기흥공장이 가장 깨끗하고 무재해 기간이 길었다고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곳이 기흥공장이었습니다. 삼성이 얼마나 철저하게 은폐하면 이렇게 기네스북에 올라갔을까요. 우리가 하루 밥 세끼 먹으면 삼성은 거짓말을 여섯끼, 일곱끼는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만적인 삼성이 정말 제대로 사과하고 한명도 배제되지 않는 보상을 하도록 이어말하기 계속 해가면서 싸우겠습니다.”

7일 저녁, 강남역 8번 출구에서는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노숙농성 1주년을 맞이해 문화제가 열렸다.
7일 저녁, 강남역 8번 출구에서는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노숙농성 1주년을 맞이해 문화제가 열렸다.

한편, 반올림은 7일 오전 11시 강남역 8번출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7일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에서 등기 임원으로 선출될 예정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해 반올림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성실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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