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D 6조 일반논평 중심으로 따져본 복합차별과 당사국 의무
장애 여성이 겪는 특수한 차별의 언어화, 여전한 과제
장애여성은 장애인이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경험한다. 장애소녀는 여기에 ‘미성년자’라는 차별적 요소까지 떠안고 있다. 장애인 권리 신장을 위한 국제 기준이 되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CRPD) 역시 이러한 점을 제6조에 반영, 장애여성과 장애소녀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CRPD 제정 10주년을 맞아 10월 18일부터 19일 이틀간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한 장애여성과 장애소녀의 인권증진’ 국제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장애여성 대표들이 모여 CRPD를 통해 장애여성/소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모색한다.

18일 진행된 워크샵 ‘UN CRPD에 의한 장애여성과 장애소녀’에서는 지난 2015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발표한 ‘UN CRPD 제6조에 관한 일반논평(아래 일반논평)’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일반논평’은 해당 조항을 유권해석하는 공식 문서로, 법률상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해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발제자인 테레시아 데게너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은 “CRPD 제6조는 유엔 인권 협약들 중 처음으로 ‘복합 차별(Multiple Discrimination)’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일반논평에서 복합 차별을 “여러 개의 사유를 근거로 차별을 경험하는 상황”으로 정의했다.
데게너 부위원장은 “여기서 말하는 ‘사유’에는 나이, 장애, 인종, 국적, 정치적 성향, 종교, 성별, 성적 지향 등 여러가지가 있다”라며 “장애와 여성, 혹은 나이라는 복합적 사유로 경험하게 되는 차별을 복합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CRPD 6조는 바로 이러한 복합 차별, 즉 장애 혹은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당사국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논평은 당사국의 의무를 ‘존중’, ‘보호’, ‘충족’ 세 가지로 설명했다. 당사국은 CRPD를 준수하여 공적영역 뿐 아니라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로부터 장애여성/소녀를 보호해야 한다. 나아가, 장애여성을 위한 역량강화 정책과 장애여성 주류화 정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6조에서 설명하고 있는 장애여성/소녀에 대한 차별은 어떤 분야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데게너 부위원장은 “6조는 크로스커팅(Cross-cutting) 조항으로, CRPD 전 조약에 걸쳐 준수되어야 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특히 폭력(제16조)과 성적 및 재생산 권리(제23, 25조), 기타 다른 영역에서의 차별(제 8, 9, 11조 등) 등을 중심으로 6조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논평이 실질적 규범성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국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 데게너 부위원장은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법적 위상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크게 다섯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기관을 비롯한 각종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에 활용 △정책 입안의 근거자료로 활용 △전략적 소송에서 활용 △’CRPD 이행 국가 보고서’에 대해 위원회가 내놓은 최종견해 해석에 활용 △국가 인권 기관(한국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견해를 발표할 때 활용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복합 차별의 대상과 내용을 구체화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CRPD 6조와 일반논평은 분명 장애여성/소녀의 권리 증진을 위한 진보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주윤정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복합 차별 사례를 모아 이를 분석하여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미비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주 연구원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장애인들이 당해온 인권침해 사례를 연구하다 보면, 동일한 고통을 겪었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의 경우 당시 상황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더 힘들어했다”라며 “(장애여성이)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인권침해 사례들을 연구하고 언어화하여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절차와 방법들이 굉장히 부족하니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주 연구원은 또한, “서구 국가들이 이미 수립한 규범과 사회적인 합의는 분명 다른 문화권 안에서의 젠더 규범이나 인식과 상이한 지점이 있다”라며 문화 특수성을 반영한 인권의 언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컨퍼런스에서는 유엔 인권 메커니즘에서 장애여성/소녀의 권리가 그려지는 양상과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의 ‘교차성’을 확인하는 작업 등이 진행되며, 각 국가별 CRPD 병행 보고서 작성 경험을 공유하는 워크샵도 실시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