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자립생활이 가능하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복지마인드가 문제다

 

주말마다 아이들이 모인다. (사)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서 진행하는 주말자립생활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다.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가늠해 보기 위한 실험적인 사업이다.

 

발달장애(지적,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위해 벌써 1년 가까이 주말합숙(?)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할까?

 

발달장애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장애 유, 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고, 표현이나 행동, 인지, 판단의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데 대략 2세에서 7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으며, 덩치가 커질수록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며, 몇몇 소수의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 대화나 인지 등 소통이 가능한 예도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말 그대로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이 보조인력의 도움이 없으면 상당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자립생활을 꿈꾼다. 세상의 가운데로 들어서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크고 작은 소통의 불화가 생겨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도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며, 어떻게 보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꿈꾸는 것은 장애 때문에 사람의 가치를 상실한 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이야기하면 장애 유형별 방식과 내용이 만들어지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세분된 지원 방식으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 장애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본다면 지체장애와 발달장애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 중증중복장애(4-5개 유형의 장애가 있는 경우로, 영역을 구분하자면 발달장애로 보고 이야기하자)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지체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해서는 풀어가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수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제도적으로 부딪치는 부분들이야 어느 분야든 존재하는 것이지만, 지원의 방식이나 내용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수월하다는 것이지 당장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에게 자립생활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바로 나오는 질문이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일까? 어떤 일이든 해봐야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으로 정리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들은 지천으로 널리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논의하고, 토론해야 마땅한 것인데 그렇게 접근하지 못하고 우선은 하기 싫다는 식의 표현들이 먼저 나오게 되니,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심정은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질문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가 여러 개 있겠으나 그중 하나를 예상해 본다면, 발달장애는 가족의 문제이니 개인이 풀어가라는 식으로 정부가 부모들의 등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활을 지도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말하는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평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우선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고, 밝아지고 있다는 것을 최고로 꼽는다.

 

아이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가?

 

"아이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쭈뼛거리는 모습에서 이제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아갈 정도가 됐다."(유소현, 김경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공동생활에 적응하고 있으며, 다양한 표현들이 생겨났다."(이은정, 유혜린)

 

외부활동을 할 때 주위 시선은 어떤가?

 

"아이들의 표현이나 행동이 눈에 띄다 보니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이나연, 윤효섭)

 

"대체로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유소현, 최유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나가기만 해도 쳐다보는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이해의 문제라고 보며 장애를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유혜린)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법이나 제도로 자립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장애이해, 특히 발달장애 영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사회통합의 이념을 일상훈련을 통해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두호영, 유혜린, 김경화)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역네트워크를 형성해 장애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최유나, 유소현)

 

"장애등급의 문제나 경제적 욕구(직업)해소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김경화, 최혜연)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자립생활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와 인력, 예산지원은 필수적이며, 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최혜연)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을 위한 훈련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김경화, 이은정, 이나연)

 

"장애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제공되어야 하고, 지역사회 내 이용시설들이 필요하다."(이은정, 유소현)

 

그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고 있다. 주말이면 정해진 공간에 모여 자신들이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찬을 만들어 식사를 한다. 미술 활동, 글 읽기, 글쓰기, 자기감정 표현하기, 운동과 영화보기, 식당 이용해보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훈련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

 

모든 아이가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일종의 성취감도 작게나마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새로운 경험에서 느끼는 희열을 찾아가는 것처럼, 아이들 중 몇몇은 생일파티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말 생활을 기다리며 부모들에게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때도 있다. 그런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아이들 스스로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지역사회는 발달장애라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을 보고, 느끼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함께할 수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생산해 낼 수 있다.

 

부모들도 아이를 맡겨 놓고 편한 마음은 아니라고 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이 마무리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끔 한 번 제공되는 이러한 사업이 자칫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고 한다.

 

1박2일 프로그램 이용 후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청소, 정리정돈, 설거지 등을 스스로 하려 하고,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 혹은 독립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려는 모습을 보면 교육과 훈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알게 해 준다. 편식을 고치거나, 성격이 밝아지는 것은 일종의 덤이라고 본다."

 

아이들이 자립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등급제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등급으로 복지지원을 하게 되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고, 그 고통은 부모나 가족의 몫이 되는데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장 크다."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내용도 조금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고, 의사소통 훈련 등 꾸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부모들의 고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업문제가 있고, 장기적인 돌봄지원, 전문보조인력의 지원, 경제관념을 세워주는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결혼이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 성인기 복지지원이 없다는 것(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는 거의 없다시피한 현실), 부모 사후의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 대학진학, 진로 등 매일매일 고민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소위 '바보'로 불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세상에서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충분히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제도적으로는 공간문제를 해결해주는 것(공동생활주택 제공), 다양한 인력지원(전체책임교사, 교육보조, 간병보조, 활동보조, 직업재활인력 등), 운영과 관련한 재정지원 등이 토대가 돼야 하고, 환경적인 문제는 지역의 공공시설들이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조건 없는 시설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며, 인식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 운영,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교육프로그램 제공 등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변화는 집에서 드러나고 있다.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옷 입기, 이불 개기, 청소하기, 설거지 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소통의 가능성을 열기 시작했고 해야 할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점 등 아주 작은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돕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고 하면 그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장애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돌발 행동에 대해서 꾸준히 지적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그런 행동의 발생 빈도를 줄여가기도 한다.

 

모든 아이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이 가당키나 하냐고 했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자신들이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인정하라는 듯 씩씩하게 모든 것들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한 아이들을 중심으로 선발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자립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고 본다. 문제는 '왜 해야 할까, 무엇을 할까, 어떻게 만들어 갈까'하고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릴 것이고, 함께하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모든 활동을 즐길 준비가 된 아이들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옮겨놓고 있다. 그 걸음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부모나, 형제나, 가족들이 아니라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던 대통령과 정부기관의 사람들과 장애라면 고개부터 돌리는 지역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힘을 실어 준다면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

 

복합장애를 가진 아이와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정신연령이 현저히 낮은 아비로 집안의 기둥을 모시고 살아가는 다소 불충한 머슴.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살아가면서 꿈을 꾼다. 소외받고, 홀대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한 가운데로 모이는 그런 꿈을 매일 꾼다. 현실에 발목 잡힌 이상(理想)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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