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열려
"피해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수사 및 재판이 이루어져야"

반복되는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가 곽정숙·박은수 의원실 주최로 21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가 2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김정혜 객원연구원은 '장애인 성폭력 판결의 흐름과 쟁점'을 주제로 최근 13여 년간의 판결문을 분석해 판례의 흐름과 변화를 살펴보고 절차상의 쟁점들을 검토했다. 특히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적용되는 주요 조항으로 장애인준강간죄·준강제추행의 구성요건인 '항거불능'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분석해 '항거불능'이 여전히 과거의 엄격한 해석을 유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김 객원연구원은 장애인 성폭력 판결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문제로 ▲장애등급 및 지적 능력을 기준으로 한 판단의 문제 ▲다양한 항거불능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 등을 들었다. 김 객원연구원은 "이런 입장들은 장애의 특성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 객원연구원은 성폭력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판례를 짚어보며 "성폭력 사건은 목격자나 피해자가 비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받기 어려운데, 하물며 피해자가 장애인인 때에는 성폭력 자체에 대한 불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불신과 장애인의 언어에 대한 불신이 합쳐져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기 쉽다"라면서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장애인인 성폭력피해자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해 피해자의 진술을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이 아무개는 피해 당시 만 15세, 지적 2급 장애가 있는 청소녀로 중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로부터 자퇴 압력을 받고 있었다. 지적능력 아동 나이 6~7세 수준인 피해자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관심과 돌봄, 지속적인 특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가족과 학교, 사회 지원체계는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고 심심했던 피해자는 자기 말을 들어주고 같이 있어 줄 사람을 찾아 가출해서 주로 전철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피해자 부모는 피해자의 가출을 막기 위해 혼자 집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적도 수차례였고, 경찰이 피해자를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00년 0월, 가해자 김 아무개는 00역 근처에서 노숙자들과 어울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몇 살이냐,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접근했고, '15살'이라고 대답한 피해자의 말을 무시하고 피해자의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싫다'는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차려놓고 나간 아침 밥상 위에 '오빠 사랑해요 최00'이라는 편지를 써 놓고 가해자 집을 나왔다. 경찰에서 피해자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는 부모가 피해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도중 피해자가 하는 말을 듣고 성폭력 피해로 인지해 00경찰서에 고소했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은 범죄 전과가 있는 50대 중반남성이 지적장애 2급의 15세 청소녀 이 아무개를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통해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민 소장은 "재판부의 판결문 어느 부분에도 지적장애의 특성이 고려되거나 지적장애로 인해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 대처 능력과 방법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없다"라면서 "피해자의 '싫다'라는 거부 행동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어리고 미성숙한 지적장애 청소녀 피해자의 성을 짓밟은 가해자의 성폭력 행동은 정당한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지적했다.

민 소장은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는 가해자의 범행 의도와 강간 목적 달성을 위해 취한 행동과 말, 유인책 등에 수사와 재판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성폭력 피해 당시 피해자의 대처 행동과 태도, 저항 여부, 비장애인 수준의 일관된 자기주장, 정확한 피해 정확 진술 내용을 판결의 주 요소로 봄으로써 가해자의 범행의도와 범행은 축소되거나 왜곡, 정당화되기도 한다"라면서"장애인 성범죄 특성을 반영한 수사 및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김정혜 객원연구원,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지성 소장.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지성 소장은 "성폭력피해 지적장애여성들은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관계적 친밀성의 부재를 경험한다"라면서 "관계 맺기에 대해 판단하고 저항할 자원과 힘이 부족한 지적장애여성들은 성폭행을 타인이 자신을 받아들여 준 경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황 소장은 "지적장애여성들의 삶과 성의 복합적인 맥락들은 비장애인들이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 내릴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단편적인 성지식과 성교육 경험이 있다고 해서 항거불능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기존에 성경험이 있다고 해서 화간을 의심해 버리는 비장애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수사와 재판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성폭력특례법 제6조의 입법 취지는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의해 결정권을 행사하고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한 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자는 것에 있다"라며 "입법취지와는 달리, 이 조항을 가지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 자체가 '사력을 다해도 저항할 수 없는 정도의 불능상태'인지 아닌지 정도를 판단하기에 급급하다면, 소수의 고도 장애를 제외하고는 본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는 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별로 없게 된다는 모순적 결론에 이른다"라고 지적했다.

성폭력특례법 제6조는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에 의해 처벌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소장은 "항거불능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심신미약간음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한 판례가 많은데, 형량도 낮고 위계 또는 위력이 없는 경우 처벌 상의 공백이 발생하는 심신미약간음죄로 장애인 성폭력을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면서 "성폭력특례법 제6조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리고자 한다면,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예시가 필요하며, 이는 마땅히 장애로 인한 저항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서울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7월부터 진행한 '장애인 성폭력 판결 분석 및 쟁점 정리',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 지원 사례 검토 및 분석',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절차상 쟁점' 등 4차에 걸친 연속워크숍을 정리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으며, 장애인 성폭력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반복되는 문제 해결방안의 모색을 위해 법실무가, 상담원, 연구자 등이 모여 3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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