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활동가, 청각장애인용 교안 개발...청각장애인과 소통 방식 논의해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교안 보고회 및 토론회가 24일 서울 성북구 노동사목회관에서 열렸다.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교안 보고회 및 토론회가 24일 서울 성북구 노동사목회관에서 열렸다.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교육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 장애인 당사자가 인권교육 강사로 나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인권교육 활동가들은 여전히 장애 당사자의 유형에 맞는 교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시각 언어로 소통하면서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낸 청각장애인의 경우 기존 음성과 문자 위주의 인권교육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교육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에게 맞는 인권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진행돼야 할까? 이음과 메움 사업단은 청각장애인 당사자, 인권교육 강사 등과 함께 인권교육 교안을 개발해온 과정을 보고하고 이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를 24일 서울 성북구 노동사목회관에서 열었다.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활동가가 함께 만든 교안, ‘언어와 문화 다른 청각장애인 특성 반영’
 

인권교육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인권교육의 방식과 내용을 개선하고자 활동하는 이음과 메움 사업단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12주간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교안 개발 모임을 진행했다. 모임은 인권교육 활동가 6명, 청각장애인 당사자 3명, 수화통역사 1명, 수화통역사 겸 인권교육 활동가 1명 등 총 11명이 참여했다.
 

교안은 청각장애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청각장애인 내에서도 수화 사용자, 구화 사용자, 난청인, 인공와우 착용자 등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고자 했다. 또한 수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자신의 언어와 생활 양식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일부 청각장애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인권 침해에 대응하는 정보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교안은 최소 4회기, 수화 통역을 고려해 회기당 80분 기준으로 진행된다. 먼저 1차시는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다른 장애특성을 지닌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중적인 언어와 문화 차이를 다뤘다. 또한 청각장애인이어서 불편하거나 강점이 된 경험을 공유하면서 청각장애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고자 했다. 2차시는 공공기관 등을 이용하면서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인권 침해 경험을 나누고, 교육 참가자들이 이러한 공간에서 원하는 것들을 직접 디자인해본다.
 

3차시는 장애로 인해 겪은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안내한다. 여기에 소통의 어려움으로 정보 습득이 쉽지 않은 청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한국수화언어법’ 등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함께 풀어낸다. 마지막 4차시는 사회로 나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립생활을 위해 어떤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토의한다.
 

교안 작업에 참여했던 배미영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대표는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교안을 만드는데, 이들의 고유한 문화에 대해 인권교육 활동가들이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았다. 교안을 만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당사자의 경험을 듣고 농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할애했다.”라며 “교안 자체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것을 기준으로 인권교육을 해보고자 한다. 수정하고 보완할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라고 밝혔다.
 

배미영 너른마당 대표.
배미영 너른마당 대표.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
 

이어 이날 토론자로 나선 청각장애인 당사자, 인권교육 활동가, 수화통역사 등은 이러한 인권교육 교안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교육 중 청각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들을 제시했다.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함효숙 장애인정보문화누리(아래 장애누리) 활동가는 “수화통역사의 인권감수성과 기본 지식에 따라 전달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라며 “인권교육 활동가가 수화통역사와 미리 시간을 갖고 인권교육에서 전달하려는 내용을 최대한 정확히 알려주거나, 인권감수성이 있고 인권에 관심 있는 수화통역사와 함께 교육을 가는 것도 좋다”라고 제안했다. 다만 시설 내 수화통역사는 참가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기 어려우므로 가능하면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윤남 수화통역사도 “인권교육 활동가 중에서는 청각장애인의 문화와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분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그저 강의 내용을 빨리 끝내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당사자 분들은 수화통역사의 기계적인 통역에 불만을 갖고 계시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농문화나 세밀한 것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시간에 쫓겨서 하는 강의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면 강사들보다 농문화에 밝은 수화통역사들이 충분히 피드백을 줄 수 있다.”라며 인권교육 활동가와 수화통역사의 활발한 협의를 강조했다.
 

당사자 석민선 씨는 “농학교 재학 중에 인권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내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모든 인권교육이 시간 낭비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감하지 못할 내용과 지루한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될 바엔 차라리 농인 선배와의 만남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게 낫다”라고 인권교육 과정에서 농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석 씨는 “청각장애인의 특성상 정보를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용어는 풀어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권교육활동가는 전문용어를 그대로 쓴다”라며 “전문용어에 대한 부가설명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수화통역사 겸 인권교육 활동가인 박미애 장애누리 활동가는 “개인적으로 청인 문화에 익숙하다보니 농문화도 고작 흉내만 낼 뿐이고, 청각장애인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 외에 인권교육 방법이 마땅치 않다”라며 “만약 청각장애인 인권교육 활동가가 있다면 보다 깊숙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듯하다”라며 청각장애인 당사자를 인권교육 활동가로 양성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청각장애인 당사자 석민선 씨가 인권교육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개선 지점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청각장애인 당사자 석민선 씨가 인권교육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개선 지점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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