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상연' 아닌 관객의 직접 참여로 시각 변화 유도
시설 모니터링과 연극 접목한 새로운 시도
25일 저녁, 아리랑시네센터에 '장애극장'이 열렸다. 장애극장은 두 가지 뜻으로 읽힌다. 장애물이 많은 극장, 그리고 장애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극장. 이날, '장애극장'은 어떤 곳이었을까.
장애극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극장 시설 모니터링' 의뢰를 받았다. 중증장애여성이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정은주 씨가 의뢰한 모니터링은, 은주 씨가 이용하기에 극장 시설이 얼마나 편리한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의뢰지는 총 세 종류로, 각각 다른 상황이 담겨있다. 극장은 은주 씨가 혼자 영화를 보러 왔을 때, 친구와 함께 왔을 때, 강연을 하러 왔을 때. 각 상황에 따라 은주 씨가 사용해야 하는 극장 시설은 다르고, 은주 씨가 느낄 불편함도 다르다. 참석자들은 줄자를 가지고 두셋씩 짝을 지어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극장 모니터링을 위해 출입구를 줄자로 재고 있는 사람들
극장 전체를 돌며 경사로, 화장실, 주차장, 엘리베이터, 매표소 매대 높이 등을 눈으로 보고, 수치를 잰 사람들은 극장 안으로 다시 모였다. 장애인 당사자 문영민 씨가 직접 쓰고 연기하는 일인극 '독립사건'을 보기 전, 사람들은 '장애극장 에티켓'을 듣는다.
장애극장의 에티켓은 보통의 극장 에티켓과는 사뭇 다르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좌석이 툭툭 건드려질 수도 있습니다', '사진촬영을 하셔도 됩니다'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나 공연에 관한 대화를 열어두고, 휠체어가 움직이기에 협소한 좌석 배치를 감안하며,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공연의 감동을 공유하도록 독려하는 에티켓의 이유를 들으면서 그동안 통상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에티켓'에서 장애인의 자리가 없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에티켓에 이어 사람들은 비상시 대피요령도 듣게 된다. 이날, 장애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총 18명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 2명, 청각장애인 7명, 아동 2명, 그리고 비장애인 2명. 사람들은 장애인과 함께 대피하기 위한 대피 방법을 들었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휠체어를 탄 배우는 계단밖에 없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 계단을 기어올라야 했다. 휠체어는 진행요원들이 겨우 무대로 올렸다. 지체되는 시간과 누군가 계단을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 사이에 긴장감과 불편한 기운이 피어났다.
이윽고 '독립사건' 공연이 시작됐다. 자신의 장애와 무관한 이유, 즉 학문적 성취의 좌절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려는 교수의 독백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 담긴 일인극이다. 사람들은 극을 보며, 장애인의 '장애'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간접 체험했다.
'장애연극'에 참석한 사람들이 연극 '독립사건'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극이 끝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에 이어, 극장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했다. 사람들이 꼼꼼하게 수치를 재고, 관찰한 결과가 공유되었다. 같은 시설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다고 봤고, 어떤 사람은 사용이 어렵다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강단 계단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날카로운 지적도 많았다. '어린이가 밀기에도 너무 무거운 극장 문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이 혼자 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 와도, 청각장애인이나 언어장애인은 사용이 어려울 것 같다' 등, 사람들은 은주 씨의 의뢰를 받아 모니터링을 하면서 시설 곳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화재경보가 울렸다.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 역시 장애극장에서 마련한 장치이다. 처음에 안내받은 대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먼저 나가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극장 밖으로 대피해 나왔다.
사람들은 '장애극장'을 통해서 평소에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시설들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전에는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굳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제 아이조차 밀 수 없는 문과 높은 매대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대피할 때, 전기가 다 나가면 청각장애인은 깜깜한 극장 안에서 수화 통역을 볼 수도 없고, 문자통역을 볼 수도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를 것 같아요".
'장애극장'은 중의적으로 읽히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공연이었다. 사람들은 장애극장에 들어와,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극장의 장애물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했을 뿐 아니라, 장애인이 안고 있는 고민을 극을 통해 접했다. 관객들의 이러한 사고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이것까지 극의 일부일까'라고 생각할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한 '턱없는 극장 장애극장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연극을 보고난 후, 사람들이 모니터링 결과를 장애인 당사자의 시각에서 다시 점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