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시 노숙인 관련 예산 정체 또는 대폭 삭감
8일 서울시의회 예결위 앞두고 “노숙인의 생존 보장하라” 기자회견

"청년에게만 고기 주지 말고 노숙인에게도 고기 좀 주십시오!"
 
7일, 서울시의회 앞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외쳤다. 청년수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고기를 일단 줘야 한다'고 강조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을 차용한 외침이었다.
7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노숙인 예산 증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서울시의회 건물에 "민생현장 알뜰히 챙겨 시민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보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7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노숙인 예산 증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서울시의회 건물에 "민생현장 알뜰히 챙겨 시민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보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8일부터 서울시 예산결산위원회 회의 및 계수조정이 시작된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노숙인, 인권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2016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은 지난 11월 10일 공개된 서울시예산 중 노숙인 관련 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촉구했다.
 
기획단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서울시 노숙인 관련 예산은 2016년 예산보다 4억 원이 삭감되었다. 표면적으로 증액된 것으로 보이는 예산도 '숫자 놀음'에 따른 기만적 증가라는 것이 기획단의 지적이다.
 
노숙인 지원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주거안정 지원 예산을 살펴보면, 2017년 예산은 11억 1천만 원으로 2016년보다 1억 2천만 원 증가했다. 지원자도 2016년 450명에서 2017년 6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원 기간이다. 원래는 4개월 동안 지원되었으나 2017년부터는 그 기간이 3개월로 줄어들었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25만 원에 머무른 월세 지원 비용과 축소된 지원 기간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보면, 4억 5천만 원으로 2016년과 같은 수준이다. 다만, 지원 대상자 확대로 '생필품 비용'이 늘어 예산이 확대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노숙인의 안정적인 자립을 위해 필요한 일자리 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서울시가 노숙인 일자리 지원을 공공 일자리 위주에서 민간연계 일자리로 전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울시의 '일자리 갖기 사업' 예산은 5억 3천만 원이 줄어들었다. '특별자활근로' 예산은 4억 5천만 원이 늘긴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증가분으로, 실제 사업 대상자 수는 줄어들었다. 이러한 예산 삭감과 미증가분으로 인해 사업 대상자는 일자리 갖기 사업에서는 180명, 특별자활근로에서는 50명이 줄어 총 230명의 노숙인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노숙인 의료지원 역시 약 48억 3천만 원으로 2016년 예산보다 2억 4천만 원 증가했다. 그러나 노숙인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강조해온 '퇴원 이후 후속 지원'은 여전히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거리 노숙인 보호 예산 역시 실질적으로 1억 3천만 원가량 증가했지만, 거리 노숙인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위기대응콜 운영'과 '거리상담활동' 예산이 각각 6천만 원,2억 1천만 원씩 줄어들었다.
 
기획단은 서울시의 기만적인 노숙인 복지 예산 삭감을 규탄했다. 차재설 동자동 사랑방 회원은 줄어든 주거안정 지원 기간을 비판했다. 차 씨는 "길에서 생활하던 우리같은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7~8개월은 안정적인 주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4개월도 짧았는데 그걸 더 줄여 3개월로 하면, 자립을 지원하겠다는건지 말겠다는건지 모르겠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당사자들이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책상머리에서 계산기로 예산을 짜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권력 있는 사람들은 수백, 수천억 씩 눈 먼 돈을 쉽게 챙기는데, 우리같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몇 만원 더 지원 받으려 온갖 서류를 떼러 전전해야 한다. 이게 무슨 복지냐"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건희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자원활동가 역시 서울시 예산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최 활동가는 "거리상담 예산이 줄어든 것을 보고, 서울시가 얼마나 거리생활 노숙인에게 '무관심'한지 알 수 있었다"라며 "거리상담은 생필품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정보 접근이 어려운 노숙인에게 법률, 의료, 주거지원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첫번째 통로"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무엇보다, 거리상담은 노숙인과 상담가들의 '약속'이다. 노숙인의 1차적인 권익옹호 활동인 거리상담 예산을 책상에 앉아 엑셀로 대충 조정하고 끼워맞추는 것은 홈리스의 권리를 간과한 것"이라며 "사랑의 반대말은 혐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울시의 예산은 그야말로 노숙인에 대한 '무관심'한 예산"이라고 질타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숙인 역시 청년을 비롯한 많은 서울시민과 마찬가지로 이 제도의 주인"이라며 "그 누구보다 '고기', 즉 긴급 지원이 필요한 노숙인들을 위한 예산을 무참히 삭감한 서울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기획단은 서울시의회에 노숙인 관련 예산 증가를 촉구하며 "내일 있을 예결위에서 별다른 조정이 없다면 투쟁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포장만 거대한 2017년 노숙인 복지 예산'이라는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기자회견이 끝난 후, '포장만 거대한 2017년 노숙인 복지 예산'이라는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2016년 예산보다 더 줄어든 2017년 서울시 홈리스 복지 예산을 표현하는 상자가 놓여있는 모습.
2016년 예산보다 더 줄어든 2017년 서울시 홈리스 복지 예산을 표현하는 상자가 놓여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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