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 48세, 사회적으로 “죽임” 당하는 홈리스...기본적인 삶과 죽음의 권리 요구

올해 12월 21일 동짓날 서울에는 눈 대신 비가 내렸다. 한겨울 치고는 따뜻한 날씨 탓이었다. 그러나 홈리스의 삶은 1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거리로 쫓겨나 죽어간 홈리스가 300여 명이 넘지만,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정책은 부실하기 때문이다.
2016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은 이렇듯 국가의 외면 속에서 쓸쓸히 죽어간 홈리스들을 추모하고자 이날 오후 6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를 열었다. 홈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100여 명의 사람들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지난 1월 16일 거리에서 죽어간 故 윤양호 씨(62)는 매년 홈리스 추모제에 참여해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던 사람였다. 그러나 올해 추모제에서는 오히려 그가 추모를 받게 됐다. 중화요리점 요리사였던 윤 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2004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자활 사업에 참여하고 2010년에는 창업도 시도해봤지만 열악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2015년 11월 토지개발 사업으로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났다.
추도사를 읽어나가던 림보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지만 형이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생각도 못했다”라며 “10년을 넘게 함께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현수막을 걸기 위한) 아시바를 쌓고 담배를 함께 피우던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한탄했다.
살 집과 입을 옷이 있고 따뜻하게 불을 땔 수 있다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춥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윤 씨 같은 이들은 추위를 버티지 못해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홈리스들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죽음이었다. 이날 추모제에는 무명녀와 무명남의 위패, 그리고 42개의 영정사진이 마련됐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홈리스 예산을 올해보다 2.5%밖에 증액하지 않았고, 서울시는 내년 예산을 실질적으로 4억 원을 깎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결정이 난 이후 동절기 취약계층의 삶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남겼으나, 365일을 동절기처럼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박 대통령과 정부였다.
남대문 쪽방 부근에서 홈리스들을 진료해왔던 이현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사업국장은 “홈리스들의 평균 수명은 48세로 보통 사람들이 평균 70세, 80세 사는 것에 크게 못 미친다. 홈리스들이 사회적으로 죽음, 혹은 죽임당하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라며 “홈리스에게 의료의 문턱은 높고, 이들에 대한 의료적인 접근도 미흡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윤 씨의 경우 세상을 떠나는 길에 함께 추모해줄 동료들이라도 있었다지만, 많은 이들은 무연고 시신으로 별다른 장례 절차도 없이 사망 처리된다. 그들을 추모하는 공영장례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기획단과 홈리스 추모제 참가자들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요구했다. 선정기준이 까다로운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확대, 홈리스도 이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 쪽방에서조차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안정적인 주거 대책, 1년 365일 안정적이고 적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 무연고 사망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공영장례지원제도 마련 등이 그것이다.
차재설 동자동사랑방 이사는 “우리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지 말라. 그 질문은 네가 잘못 살아서 거리 잠을 자게 된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이자,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이 빠져 있다.”라며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와 치료받을 권리다.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차 이사는 “우리 홈리스도 제일 약한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보자. 우리한테 방을 주라고, 일자리를 주라고, 병원가게 해달라고 요구하자.”라며 “더 이상은 얼어죽을 수 없다. 죽어서도 무연고 시체 처리 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참가자들은 홈리스들을 강제로 쫓아낸 서울역 역사, 홈리스들이 서울역에서 쫓겨나 사망했던 서울역 주차장 등을 행진하며, 홈리스의 죽음을 방치하는 사회에 항의하는 것으로 추모제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