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결산 ⑥] ‘강제입원’ 헌법불합치, 강남역 사건 등으로 보는 정신장애인 인권의 좌표

2016년은 정신장애인에게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한 해였다.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자’라는 호칭으로 범죄와 연루되어 언론에 오르내린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여론은 ‘여성혐오 범죄’라고 인식했지만 경찰은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근거로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후 언론엔 흉악범죄를 정신질환과 연결 짓는 기사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 범죄’라는 용어엔 이 사건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인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인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이는 범죄 동기에 해당하는 부분이기에 중요하나 수사기관도, 언론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범죄자’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언론의 보도방식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시킨다. 

SBS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14화 예고편 화면 갈무리. 극중 정신분열증 환자로 등장하는 장재열(조인성 분)이 강제입원을 당하면서 격리, 강박 조치를 당하고 있다.
SBS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14화 예고편 화면 갈무리. 극중 정신분열증 환자로 등장하는 장재열(조인성 분)이 강제입원을 당하면서 격리, 강박 조치를 당하고 있다.
 

‘정신보건법’ 전부개정과 ‘강제입원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현재 정신장애인은 정신보건법 적용을 받는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상의 15개 장애 유형 중 하나이나, 장애인복지법 15조는 정신장애인의 보건과 복지를 정신보건법으로 이관하여 다룬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신보건법에선 정신장애인을 정신질환자로 칭한다. 
이 정신보건법은 올해 5월 29일 전부개정되어, 법 이름부터 정신질환자 규정까지 전부 바뀌었다. 개정안은 내년 5월 30일 시행된다. 개정으로 법 이름은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법적 정의는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 즉 중증 중심으로 제한됐다.
 

일명 강제입원 조항이라고 불리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입원 대상이 ‘정신질환이 있거나(or) 자·타해 위험이 있는 사람’에서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입원 요건도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진단으로 바뀌었다. 입원 시 2주간의 진단입원 기간을 두는 내용이 추가됐고, 최초입원 기간은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됐다.
 
신설된 조항도 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 당사자 동의를 받는 ‘동의입원’ 조항이 새로 생겼다. 또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두어 비자의입원 시 별도의 입원 적합성을 심사하게 했다. 임의조항이긴 하나 복지지원이 명시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변화는 첫째, 법 이름과 내용에 ‘복지’를 명시한 것과 둘째, 강제입원이 과거보다는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책이 지역사회 복지가 부재한 채 병원 입원 중심이라는 오랜 비판을 정부가 수용한 결과다.
 

전부개정안은 정신장애인 인권을 둘러싼 일종의 지각변동을 예견한 듯하다. 올해 ‘강제입원 조항’이라 불리는 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도 이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4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 변론 모습
지난 4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 변론 모습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과 2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신질환자를 신속·적정하게 치료하고 정신질환자와 사회 안전을 도모한다는 공익성은 인정했으나, 제도 악용이나 남용 가능성이 있기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헌적인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라는 게 헌재의 결정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 전에 이미 정신보건법이 전부개정되지 않았는가. 개정안은 과연 헌재 판결에 부합하는가. 헌재 결정 후, 정신장애계와 전문가 사이에선 “개정안은 여전히 헌법불합치 지적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개정안이 국회 통과할 당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번 개정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며 비판이 제기됐다. 강제입원 요건이 강화되었다고 하나, 겨우 ‘의사 1명’ 진단에서 ‘2명’으로 늘어난 것에 불과하며, 강제입원요건을 심사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역시 심사 대상이 한 해 17만 5000건임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복지지원도 명시는 했으나 ‘할 수 있다’로 되어 있을 뿐,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게다가 경찰관도 정신병원 입원 신청을 할 수 있다는 행정입원 조항 개정은 정신장애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 강제입원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기사 - 개정된 정신보건법, ‘헌법불합치 지적 충분히 수용 못한다’ 비판 쏟아져 _ 10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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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헌법불합치’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제도 개선 방향 제시 _ 10월11일
- 당사자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_ 09월29일
-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조항, ‘헌법 위배다 vs 아니다’? 공개 변론 열려 _ 04월14일 
△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 관련 기사
- “정신보건법 개정, 지금 놓치면 다시 기회 없을수도” _ 05월16일  - ‘정신보건법 개정안’ 둘러싸고 ‘전문가-사회복지사-당사자’ 충돌 _ 05월20일
- 국회 앞 모인 정신장애인들 “정신보건법 개정안 졸속 추진, 막아야 한다” _ 05월11일 
- 지금 ‘정신보건법 개악’이 눈앞에 닥쳤다 _ 05월10일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라는 경찰, 비판하는 여론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표면적으로라도 요지부동이었던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정부 정책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분명 고무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와 크게 맞물려있다. 이는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이 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로 규정하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경찰에 대해 쏟아진 비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건 직후, 경찰은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조현병)을 공개하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대책 역시 ‘사회 안전을 위해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5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는 체크리스트 제작, 경찰 요청으로 인한 정신병원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 시행, 당사자가 퇴원을 원해도 병원이 이를 거부하는 조치까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론의 방향은 달랐다. 여론은 “여자들이 날 무시했다”라는 피의자 말에 근거해 ‘여성혐오 범죄’라며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 혐오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나섰다. 사건 발생지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일어난 추모 포스트잇 사건은 그 목소리가 구체적인 사회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언론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 새로운 먹잇감은 정신장애인가”(미디어오늘), “'묻지마 살인'에 '조현병' 탓만 하는 강신명 경찰청장”(노컷뉴스),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조치, 인권침해 우려 있다”(경향신문), “정신질환자는 '악마'가 아니다”(오마이뉴스) 등 경찰 발표를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경찰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장애인 범죄’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지난 5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반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경찰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장애인 범죄’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지난 5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반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경찰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행정입원은 위헌적인 인권침해이며, 범죄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신장애인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병마와 싸우는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정신장애인들에게 국가가 제공해야 할 것은 감시와 수용이 아니라 충분한 공공의료”라면서, 필리버스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언급하며 했던 “국가의 의심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꺼내어 경찰 대책 발표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장애계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경찰 조치에 항의하며 경찰청 앞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같은 달 31일, 성명을 통해 “이들(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 관련 기사 - ‘정신질환자 범죄’는 왜 뉴스가 되는가 _ 12월07일
- 법무부, ‘강남역 살인사건=정신질환자 범죄’ …정신질환자 ‘보호관찰’ 추진 _ 08월29일 
- 언론은 어떻게 ‘정신질환자 범죄’를 만들어냈는가? _ 06월03일 
- 묻지마 범죄는 없다, 공권력의 ‘가난에 대한 처벌’이 있을 뿐! _ 06월02일 
-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 나섰다 “강신명 경찰청장, 사과하라!” _ 05월31일 
- 인권위, “약자 향한 혐오표현, 혐오범죄 더 이상 안 돼” _ 05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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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이 ‘정신질환자 범죄’라고? 장애인은 화났다 _ 05월27일 
- 강신명 경찰청장, 강남역 사건으로 형제복지원 부활 꿈꾸는가? _ 05월24일 
- 강남역 살인사건, 경찰은 여성혐오를 가리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_ 05월20일 
국가 통제의 시선과 변화한 여론이 경합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을 예비 범죄자로 모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일반 사람보다 낮은 정신질환자 범죄율을 근거로 반박하며 정신장애인 인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잇따른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정신장애인을 예비 범죄자로 모는 것에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고, 대책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특정 대상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시선과 변화한 여론이 경합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원에 갇힌 정신병자’였고, ‘예비범죄자’였으며,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신장애인이 있을 곳으로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물적 기반과 법적 근거는 정신장애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여전히 턱없이 열악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마이너스 상태였던 상황이 한순간에 좋아질 순 없다. 그럼에도 올해 그 씨앗이 뿌려졌으니, 그것은 정신보건법 전부개정과 강제입원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그 힘은 변화한 여론이었다.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자. 오늘의 부족분을 채워나가는 새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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