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선절차 개선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인권의 가치 하향 막아야
토론회 중 고엽제전우회 백여 명 점거농성장 진입 시도

▲활동지원공투단이 점거농성 중인 인권위 배움터에서 인권위 창립 9주년을 맞아 '뒷걸음질 하는 이명박 정부 하의 국가인권위, 평가와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권리보장을 위한 공동투쟁단(아래 활동지원공투단)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와 장애인활동지원법의 권리보장을 촉구하며 4일째 점거 중인 가운데, 인권위 11층 배움터에서 25일 늦은 2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주최로 '뒷걸음질하는 이명박 정부 하의 국가인권위, 평가와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인권위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데 인식을 함께하고 인권위원 인선절차 개선방안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인권의 가치 하향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현병철 위원장 사퇴운동에 대해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흔들기 정책기조에서 비롯되었기에 인권위 독립성 회복, 인선절차마련과 함께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한 무자격자 인권위원장의 사퇴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명숙 상임활동가는 "하지만 임명권이 정권에 주어진 이상, 정권의 성격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국가기구의 한계가 아닌가라는 고전적인 물음은 남는다"라면서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국가인권기구에는 인권의 기준과 가치를 생산하는 기능이 있기에 그 기능이 인권후퇴에 손을 들어주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조교수는 "현행 인권위원 임명 절차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 독립기구의 장이 아니라 행정부처의 장을 임명하는 과정과 유사하며 졸속 인권위원 추천, 임명과정을 통제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홍 조교수는 "따라서 법률 개정 없이 당장 실시 가능한 사전 공모절차 제도화를 정부, 의회, 대법원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인사청문회 도입을 기본으로 후보추천위원회 도입, 국회 선출 몫 확대 방안 등을 반영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토론을 경청하는 참가자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는 지난 10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인권위가 제기한 권한쟁의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단순한 결정이 아니며, 한 마디로 말하면 인권위에 대한 법적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권한쟁의를 하고자 하는 국가기관은 헌법에 의해 설치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이어야 하는데, 인권위는 단순히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이므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인권위의 위상과 독립성에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라고 지적하고 "하지만 이 결정은 인권위의 독립성은 헌법기관화해야 한다는 명확한 유권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기에 오히려 인권위를 헌법기관화하는 논리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인권위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재, 장애인계의 처절한 투쟁으로 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 기능을 상실할 위기감을 느낀다"라고 밝히고 "현재 상임위원 1명, 비상임위원 2명 등 3명이 장애인차별소위원으로 장애관련 차별문제를 심의하고 있는데 폭주하는 진정 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임위원 5명, 전원위원 3분의 1 정도는 장애인계로 구성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굳이 인권위가 권한쟁의 사건을 제기할 필요가 있었느냐?",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 등 제도적 개편으로 인권위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박찬운 교수는 "인권위가 권한쟁의 사건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준헌법기관의 지위를 유지했겠지만 각하 결정이 나온 지금은 준헌법기관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라면서 "권한쟁의 사건을 제기한 지난 1년4개월 동안 인권위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홍성수 조교수는 "물론 인선절차를 개선해도 이를 무력화하는 움직임은 계속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개선을 통해 무력화할 여지를 줄이고 무력화에 대항하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만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해달라"라고 답했다.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인권위 1층 로비에 들어온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

▲11층 진입을 시도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을 엘리베이터 앞에 선 장애인활동가들이 막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가 진행되던 늦은 4시께 활동지원공투단이 인권위 건물 외벽에 내건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하라'라는 현수막을 철거하고 점거농성 중인 장애인활동가들을 내쫓겠다며 군복을 입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 백여 명이 몰려와 인권위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 중 대여섯 명은 인권위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점거농성이 진행 중인 11층에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장애인활동가들이 입구를 막자 물러났다.

이들은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한 인권위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왜 인권위를 점거하고 있는 단체를 경찰이 보호해주고 있느냐"라면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다가 4시30분께 "우리가 경찰과 싸울 수는 없으므로 경찰 병력이 없을 때 기습적으로 다시 와 현수막을 철거하겠다"라고 말하고 해산했다.

▲해산에 앞서 구호를 외치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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