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스폰지

귀를 통해 모든 타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 '너'로부터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며 '나' 또한 '너'를 향해 입을 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한 대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우리는 그것과 관계 맺으며, 이야기는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바라보는 자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세계지만, 끊임없이 바다의 부름을 듣는 주인공 시게루에게는 더없이 격정적인 세계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게루는 어느 날 버려진 서프보드를 발견하게 되면서 생업도 잊은 채로 서핑에 빠져든다. 서핑을 시작한 그의 모습은 타인에게는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조롱의 대상으로 비칠 뿐이지만, 이제 막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시게루에게는 그것은 애초에 들리지 않는 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새로운 '귀'를 가진 상태가 되고 그의 '입'은 끊임없이 그 부름에 응답하게 된다. 시게루는 끊임없이 바다로 달려나가 서핑에 몰두한다. 여기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 주위의 권유로 대회에 나가지만, 첫 대회에서 그는 정작 그를 호명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 참가조차 하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여기에 아무런 감정도 더하지 않는다. 기타노 다케시는 애초 들리지 않음을 이용해 절망과 좌절로 얼룩진 비극을 만들 생각이 없다. 그저 묵묵히 대회가 끝난 후 시게루 홀로 서핑하는 모습만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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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게루를 비웃던 마을 청년들도 점점 그에게 동화되어 서핑에 빠져든다. 그들은 시게루를 통해 서핑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서핑의 재미를 맛본다. 그리고 이제 그 바다에 모인 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우스워 보이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추억을 채우는 존재가 된다. 영화는 그 여름 가장 따스하고, 행복한 어느 순간의 바다를 포착한 듯 아름다우며 고즈넉하다.

그리고 그 바다에는 서핑을 즐기는 시게루를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도 시게루와 같은 장애가 있지만, 둘은 수화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녀는 늘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를 타는 시게루를 바라본다. 이렇듯 두 사람이 위치한 세계는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지점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매일 시게루의 모습을 응시하면서 그가 향하는 세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어느 날 도착한 바닷가에서 시게루의 서프보드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때 그녀는 절규하지 않으며, 그의 죽음을 향해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바다로 완전히 사라진 존재 시게루에게 자신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드에 붙여 바다 멀리 띄워 보낸다. 그렇다. 그녀는 바다로 향한 시게루를 완전히 이해했고 그러므로 아주 덤덤히 보내준다. 그가 그 여름 내내 사랑했던 바다 아주 먼 곳을 향해….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고도의 절제된 언어로 어떤 감정의 과잉 없이 삶을 포착해낸다. 그 삶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허망하며, 더없이 열렬하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다층적인 감정들을 하나의 물줄기로 아우르며 작품 전체를 적셔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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