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과 인연을 맺은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큰 탈 없이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활동보조인을 연결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결받은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연결하는 과정이었지만요.
활동보조인을 선정하는 방식은 자신의 가족 혹은 지인 중에 지정하거나, 자력으로 찾을 수 없으면 홈케어 워커(homecare worker)의 목록을 관리하는 기관에 의뢰해 수요자의 스케줄과 요구사항에 맞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전달받습니다. 수요자가 직접 연락해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 후에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면, 다시 기관에 보고하고 전달받은 서류를 작성해 등록을 완료합니다.
어렵게 전화상으로 인터뷰 스케줄을 잡으면 당일 연락이 없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와 사람에 조금씩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 전동휠체어가 완전히 멈춰 움직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서둘러 활동보조인을 구했더라면 덜 막막했을 걸 후회했지만, 이미 일이 일어난 후였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 며칠간은 호의적인 모습에 마음이 많이 놓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신뢰가 갔고, 정식 등록 절차를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그 사람은 제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 휠체어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저는 밥을 해 먹을 수도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지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대한 이상의 것을 요구받았을 수 있고, 그래서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난생처음 겪어 본 무방비 상태와 그에 속수무책인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의 화살이 그 개인에게 돌아가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활동보조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보다 한살이 적은 아주머니시고, 그분 역시 제 나이 또래의 딸을 두고 계십니다. 약간은 공격적인 억양에 제가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다시 천천히 이야기해주시기보다는 답답한 내색을 보이시는 모습에 처음에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어 동전을 넣고 길가 주차를 해야 하고, 그마저도 공간을 찾지 못해 차를 이동해야 하는 과정 역시 그분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합의하기로 하고 이후 어려움들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낮 시간대, 주로 제가 집을 비운 사이 집으로 오셔서 청소와 빨래, 요리 등을 해주십니다. 가끔 저녁 시간대나 매 주말에 만나면 함께 장을 볼 목록을 정하기도 하고, 그분의 일지(time sheet)에 제가 서명하는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지역 범죄뉴스를 보시면 집에 잘 들어왔는지 밤에 확인전화를 해주시고, 술집에서 술을 테이블에 남겨둔 채 화장실에 가지 말라는 중요한 조언(!)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또 요리를 즐기시는 분을 만난 것도 참 행운입니다. 덕분에 패스트푸드가아닌 건강한 미국 음식을 많이 맛보게 됩니다. 제가 특별히 부탁 드리지 않아도, 매장 광고지들을 눈여겨 보시고 특정 품목을 할인하는 매장을 일일이 다니며 장을 봐 주십니다. 그 덕에 얼마 되지 않는 먹을거리에 영수증은 한가득 입니다. 그분 역시 무릎 관절이 좋지 않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데 말입니다.
제가 골절을 당할 경우에 신변처리를 부탁 드리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고, 그래서 걱정도 됩니다. 만약 부상이 심각하거나 수술을 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지금의 활동보조 지원은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다시 사후에 대처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치기보다는 미리 이런저런 대안을 알아보고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9년 만에 고향에 가고 싶지만, 공식 휴가가 없어 집에 남아 있는 제게 양해를 구하시면서 조그마하고 귀여운 트리를 사오셔서 직접 장식까지 해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뉴욕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내 노동자(domestic worker) 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운동이 있고, 그 결과 뉴욕 주에서는 최근에 법률이 발효되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다른 노동자들과 동등한 초과수당 지급,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환경, 5시간의 숙면, 유급 휴가와 병가 등의 권리를 법률 조항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 ▲반짝 반짝한 연말 되세요. ⓒ현아 |
현아의 기분 좋은 편지 한 통 장애인이며, 여성이며, 아시안으로, 다양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고 그렇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학 장애인권동아리 시절 장애인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글로써 꾸준히 소통하고 싶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