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의 집'과 '캠프힐'에서 자유로운 공동체의 가능성 입증
각 지역공동체에 장애인 자립주택 마련 등 새로운 공동체 실험했으면…
노들장애인야학의 소개로 지난해 8월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긴급출동SOS’에 나오는 끔찍한 시설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선지 생각보다는 의식주 환경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컨테이너 건물 안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유통기한 지난 라면과 때에 찌든 이불이 먼지구덩이 속에 나뒹구는 숙소도 있었고 ‘푸드뱅크’랍시고 학교급식 잔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거리, 잠자리, 입성에만 눈이 가 있는 동안 정작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외출과 외박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7년 동안 서른 평 남짓한 4층 건물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다는 생활인의 말에 머리가 띵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장애인시설은 이동의 자유가 없는 수용소였습니다. 식사시간 외에는 밥을 먹을 수 없거나 프라이버시 공간이 없는 점(심지어 화장실조차 2명이 함께 사용하거나 안에서 잠글 수 없게 한 곳도 많다), 남자 여자 혹은 장애별 공간 분할이 안 되어 있는 점, 밖에서 방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점 등 일상생활에서의 기본권 문제도 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왔습니다. ‘그게 뭐 대수냐, 수녀원이나 고시원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설관리자와 시설거주인 사이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고려하지 못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모든 ‘사소한’ 공간배치는 자신이 독립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사육동물이나 수용죄수로 취급받고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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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를 하면서 놀란 점은 미신고시설 거주인의 태반이 지적·정신 장애인이라는 것입니다. 간혹 지체장애나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90% 이상이 자폐증, 다운증후군, 지능발달지체로 인한 지적장애나 분열 편집증, 알코올중독, 만성우울증 등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 있는 장애인생활시설 중 정신지체장애인시설이 가장 많고(131개소, 9,325명), 특히 미신고시설 생활인 중 절대다수가 지적·정신 장애인이라고 합니다.(2007년 12월 말 기준, 전체 314개소 21,709명)
지체 | 뇌병변 | 시각 | 청각 | 언어 | 지적 | 정신 | 안면 | 간질 | 전체 |
134 | 49 | 44 | 7 | 1 | 197 | 12 | 1 | 1 | 446 |
인구의 12.9%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지적·정신 장애인이 원체 많은 이유도 있지만, 그들의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낙인찍는 경향이 지체장애인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시설에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조차 “아무것도 모르는 애, 저능아, 1+1도 모르는 사람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요.
복합시설에서 지체장애인이 지적·정신 장애인을 노예 부리듯 하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신체의 장애보다 정신의 장애가 더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 의사로 말할 수도 없고, 대화도 안 되고, 혼자 두면 위험한 그들을 인간 ‘주체’로 대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적·정신 장애인에게는 시설에 수용되어 사육과 착취와 보호 ‘대상’으로서의 생존만 허락됩니다. 지적·정신 장애인은 탈시설로 인도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일단, ‘본인의 의사에 따른다’는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시설운영자나 보호자의 판단에 맡겨 버리고, 인권 활동가들도 그들의 “싫어요. 여기가 좋아요”라는 말을 얼마만큼 존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공동체
지적·정신 장애인들의 경우 자기 결정권에 대한 설문(시설에 들어오겠다는 결정은 본인이 했느냐? 본인 스스로 퇴소 결정을 할 수 있느냐? 본인 의사에 따라 참정권을 행사했느냐? 등)은 별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것의 필요성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활하고 싶지 않으냐? 왜 못하느냐?”라는 질문(사실, 이 질문을 하면서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이 그들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에 그들은 “공동체니까”라는 대답을 많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설생활은 사적소유도 없고, 개인의 자기결정권도 없이, 공동체적 이념(대부분 기독교)과 선물 경제(외부의 기부와 내부의 활동보조), 그리고 집단적 규율로 이뤄진 공동체입니다.
시설 공동체는 시설운영자의 생계나 영리를 위해 상품화된 공동체이며, 개성과 다양성, 평등과 호혜가 없는 닫힌 공동체입니다. 이 나쁜 공동체의 경험 때문에 탈시설 장애인들은 공동체적 대안을 회피합니다. 인간은 방종할 자유, 타락할 자유, 고독할 자유, 빈곤의 자유 속에서 헤매더라도 일단은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타인은 지옥’입니다. 어쩌면 시설이 장애인에게 빼앗은 것은 ‘개인적 자유’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동체’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동체와 자유
탈시설의 방향이 꼭 시민적 자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적 시민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유의 자유, 경쟁의 자유, 타락의 자유, 빈곤의 자유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또한 그곳은 가족, 학교, 군대, 회사, 국가의 파시즘적 공동체가 개성을 말살하는 사회입니다. 배부른 소리라고, 그래도 시설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최악’이 ‘차악’의 위로가 되거나 차악이 진보의 기준이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나쁜 것에서는 나쁜 것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시설 안의 나쁜 공동체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장애인들과 시설 바깥의 나쁜 공동체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좋은 공동체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개인이냐 공동체냐라는 이분법으로부터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만 풍요로운 개성을 꽃피울 수 있다는 철학자들의 지혜를 증명하는 사람들. 시설조사 기간에 <베델의 집>과 <캠프힐>에 관한 서적과 자료들(주1)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 자유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베델의 집은 일본 홋카이도의 우라카와에 있는 정신장애인 공동체이고, 캠프힐은 1940년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에 처음 설립되어 지금은 20여 개국 100여 개로 확산한 지적, 정신 장애인 공동체입니다. 직접 안 가봐서 실상은 어떨지 몰라도, 이들 장애인공동체는 확실히 제가 조사한 한국의 장애인시설과는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그곳에 ‘장애’는 있지만 ‘장애인’은 없습니다. 합리적 사고가 불편한 사람, 하나의 자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문제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있지만, 일방적으로 관리되고 사육당하고 수용되는 장애인은 없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관리받는 게 아니라 각자의 불편함과 필요를 드러내고 나누면서 공동체의 힘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베델의 집과 캠프힐은 장애를 능력의 결핍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대신 장애를 비장애인도 함께 살고 싶은 공동체적 삶의 구성 능력으로 바꿉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제거)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다만 원만한 관계를 맺을 동반자(그들은 환청을 친근하게 ‘환청씨’라고 부른다)로 여깁니다.
그들은 매년 ‘환각 및 망상 대회’를 열어 서로의 환각과 망상을 자랑하며, 각자의 ‘약함’과 ‘문제’를 해소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 때문에 호혜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힘으로 여깁니다. 베델의 집 일원이 된 정신과의사조차 정신장애를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경쟁과 스트레스를 인내하고 살기를 강요하는 시민사회야말로 비정상이라고 말합니다.
캠프힐은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나누는’ 코뮌주의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co-worker: 함께 일하는 자)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일을 능력에 따라 수행하고, 장애인(이 공동체에는 장애인을 People with special needs : 특별한 필요를 가진 사람으로 부른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자원봉사자는 거기서 공동체적 삶의 기쁨을 얻고 장애인은 그와 더불어 특별한 필요를 충족시킵니다. 공동체의 생산물은 구성원들이 필요에 따라 가져가 쓰고, 심지어 돈도 공동으로 보관하고 필요한 사람이 자유롭게 가져다 씁니다. 장애 때문에, 독립된 개인으로 사는 데 장애가 없다고 여기는 ‘정상인’들이라면 꿈도 꾸지 않을 코뮌을 만든 것입니다.
공동체의 생명력은 소통 능력에 있습니다. 베델의 집과 캠프힐은 ‘나쁜’ 공동체처럼 소통의 척도를 단일화하지 않습니다. 캠프힐의 역사는 1940년 칼 쾨니히가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Anthroposophie)(주2)에 영향을 받아 만든 캠프힐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Camphill Rudolf Steiner School)에서 시작되는데, 캠프힐의 근간이 되는 캠프힐 학교공동체는 3살에서부터 18살까지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합니다.
캠프힐 교육의 특징은 ‘언어의 확장’에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음악, 미술, 춤 등 비개념적 언어를 통해 영혼의 다채로운 발전을 추구합니다. 슈타이너가 창시한 오이리트미(Eurythmie)라는 예술과목은 ‘보여주는 시’, ‘보여주는 음악’, ‘보여주는 미술’이라는 독특한 동작예술인데, ‘보여주는 시’란 동작을 통해서 소리의 특성과 몸짓으로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보여주는 음악’이란 음악의 각 톤과 화음까지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법이 지적, 정신 장애인을 ‘소통할 수 없는 자’가 아니라 ‘특이한 소통능력을 갖춘 자’로 재규정하게 하고 소통 불가능한 자들 간의 소통 가능성을 입증하게 합니다.
베델의 집은 소통이란 독립된 개인들 간의 소통 이전에 개인 내부의 소통임을 드러냅니다. 다양한 편집-분열증을 가진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들의 자아는 하나가 아니라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분열증이 있는 오자키 씨는 721명의 ‘환청씨’, 즉 721개의 자아와 더불어 삽니다. 그가 베델의 집을 대표하여 외부강연을 하기 위해 1박 2일로 여행을 갔을 때 여행에 지친 몇 명의 ‘환청씨’가 먼저 돌아가 버렸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온 ‘오자키 무리’는 먼저 돌아온 환청씨들 말고 몇 명 더 모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며칠 후 실종된 환청씨들이 돌아왔는데 자기네들끼리 관광하고 히치하이크를 해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환청씨’는 내 안의 분열된 자아들입니다. 주위 환경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는 환청씨가 “죽어 버려”, “바보, 멍청이”, “도망가!” “때려!”라고 말하지만 관계가 좋으면 친절한 말을 합니다. 후루미 씨는 항상 가슴에 있는 환청씨와 대화를 합니다. “오늘도 일하느라 수고했어요.” “응, 고마워” 환청씨와의 소통은 타인과의 소통을 도와줍니다. 혼자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후루미 씨는 환청씨와 “맛있어?” “응, 맛있어”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던 후루미 씨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어, 그래, 고마워”라고 대답했습니다.
히로코라는 여성은 중학 시절부터 ‘다카하시’라는 이름의 환청씨와 동거 중입니다. 스타일이 좋은 ‘다카하시’는 뚱뚱한 히로코에게 “밥 먹지 마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랜 연인입니다. 그녀가 베델의 집 멤버로서 제약회사 연수회에 초빙되었을 때 “제약회사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돈도 없고 우라카와는 특별히 놀 만한 데도 없어서, 어쨌든 한가합니다. 그런 때는 환청 씨가 내 놀이 친구고, 얘기 상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약을 만들어주는 건 좋지만, 제 환청 씨를 없애는 약만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자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공동체는 우선 내 안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여럿의 자아와 언어들이 소통능력을 키울 때 바깥에 있는 타인들과도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공동체 안에 있는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자기 안의 소통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기술훈련(Social Skills Training)(주3)이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데, 정신장애인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도와주는 협력자, 즉 의사나 간호사, 자원봉사자들도 함께합니다. 그들 역시 인간관계의 곤란과 불안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델의 집에서는 의사와 정신장애인, 관리자와 관리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소통의 ‘장’ 전체입니다. 캠프힐은 협력자(co-worker)를 ‘봉사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깁니다. 그 속에서 비장애인 협력자는 ‘도덕적 만족감’(주4)을 얻고 마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면서 변화된 삶을 삽니다. 캠프힐 가족공동체의 가상부모는 보통 10년 이상 캠프힐에서 일해온 장기협력자들인데 실제 부부가 많고 자녀 역시 장애인들과 함께 성장합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라는 모토는 장애인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사회복귀를 지향하는 게 아닐 겁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전체, 국가권력 자체가 바뀌어야 하며 그 변화의 진폭은 ‘시민사회의 민주화’ 수준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변화는 단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변혁의 시발점에서 도달점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권익투쟁과 비자본주의적 공동체 운동은 처음부터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싸우지 않는 (장애인)공동체는 ‘가능한 자’들의 자족적 만족에 빠질 수 있고, 공동체 없는 권익투쟁은 조합주의의 수렁에 갇힐 수 있습니다. 권리의 확장은 삶을 구성하는 능력의 확장과 함께 이뤄질 때만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투쟁과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운동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의 조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고 싶은 장애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려 봅니다. 주방을 만들고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비)장애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문화공간을 만들면 어떨까요? 지역공동체(가까이는 성미산 마을 공동체나 수유리의 아름다운 마을, 멀리는 변산공동체)를 탐방하고 장차 장애인 자립주택을 그 마을에 마련해 비장애인이 중심인 그 지역공동체가 장애인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공동체 실험을 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홈리스행동’ 사람들이나 ‘지역공부방’ 청소년들, 수유너머의 가난한 젊은이들을 활동보조인으로 참여시키거나, 활동보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강좌를 여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가진 자원과 역량을 모아 시민사회의 독립된 개인으로는 살기 힘든(싫은) 사람들의 생존기술로써 장애공동체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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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베델의 집에 대해서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사이토 미치오, 송태욱 역, 삼인, 2006), <베델의 집 사람들>(베델의 집 사람들 저, 송태욱 역, 궁리, 2008),
주2) 루돌프 슈타이너는 철학, 자연과학, 교육, 의학, 예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사상가로 젊은 시절 괴테의 철학에 심취하여 신지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이후 인지학이란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인지학Anthroposophie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혜를 뜻하는 말로 인간 영혼에 지혜를 부여하는 실천적 학문을 추구한다. 슈타이너의 중세 이신론과도 맥이 닿아 있는 인지학은 종교와 과학의 공생을 제안하며, 의학, 농업, 예술, 과학 등의 세부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교육분야에 큰 영향을 줘서 발도르프 학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발도르프 학교는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처음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는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공정터 중 일부를 활용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자녀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신념하에 인간의 본질을 일깨우기 위한 전인적 교육의 실천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발도르프 사범대학이 독일 전역에 일곱 개가 있고 장애인 아동의 교육방법에서 출발한 발도르프 유치원은 전 세계에 1,500개가 넘으며, 발도르프 학교는 특수학교를 포함해 900개 이상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주3) 생활기능 훈련 : 증상 때문에 겪는 일상생활의 어려움(가령, ‘인사를 잘 못한다’, ‘수시로 찾아오는 ‘환각씨’ 때문에 마트에서 물건을 사기가 어렵다)을 생활과제 형태로 제시하고 실제로 그 역할 놀이를 하며 긍정적 피드백으로 용기를 낸 다음 실제생활에 적용하는 프로그램.
주4) 그놈의 ‘도덕적 만족감’ 때문에, 신고시설로 전환하면서 생활환경을 개선한 시설은 후원금을 상당 부분 끊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