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 94.4%가 2층 이상 건물… 63%는 엘리베이터 없어
물리적 접근성보다 공무원의 태도와 자세, 강압적 태도에 따른 ‘심리적 장벽’ 높아

2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접근성 실태를 짚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 사진 허현덕
2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접근성 실태를 짚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 사진 허현덕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할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편의 제공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복지센터는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누구나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특히 전국 투표소 3,512곳 중 행정복지센터가 63.8%(2,242곳)를 차지하고 있어 장애인 참정권 행사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행정복지센터의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서 행정복지센터는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등에 맞는 편의제공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행정복지센터의 접근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깝지 않다.

2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접근성 실태를 짚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가 주관한 토론회에서는 장애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가 발표돼 큰 관심을 모았다.

장추련은 지난 7월부터 8월 9일까지 전국 행정복지센터 3,499곳 중 1,794곳(51.3%)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했다. 전국에서 230명이 모니터링 요원으로 참여했고, 이 중 장애 당사자는 200여 명이었다. 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은 휠체어 이용자 95%, 감각장애인 5% 비율로 구성돼 있다. 모니터링 결과 발표는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가 맡았다.

- 기본 중의 기본, 장애인 주차구역 18.6%가 마련 안 해

모니터링이 이뤄진 행정복지센터 1,794곳 중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는 곳은 334곳(18.6%)에 달했다. 주차구역이 마련된 1,460곳(81.4%)은 평균 1.48개로 최소 1개 정도의 장애인 주차구역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차구역이 있더라도 다른 적재물이 쌓여 있거나 장애인차량이 아닌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왼쪽은 경남 문화동 행정복지센터, 오른쪽은 서울 난곡동 행정복지센터.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왼쪽은 경남 문화동 행정복지센터, 오른쪽은 서울 난곡동 행정복지센터.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장애인 주차구역은 비장애인 주차구역 2.3m보다 1m가 넓어야 하고, 평행주차구역에도 비장애인 주차구역 5m보다 1m 길게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해진 규격에 맞지 않은 곳도 218곳이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휠체어 그림 △안내판 △바닥 색깔 다름 등 3가지를 갖추도록 정하고 있다. 휠체어 그림(1,432곳, 98.1%), 안내판(1,283곳, 87.9%)은 비교적 지키고 있는 곳이 많았지만, 바닥 색깔을 달리한 곳은 780곳(53.5%)에 그쳤다.

- ‘물리적 접근부터 힘겨워’… 경사로 없는 곳 14.8%, 점자유도블록 없는 곳 13.8%

행정복지센터 1,794곳 중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은 265곳(14.8%)이다. 이 중에는 단차가 2cm 이하여서 경사로가 필요 없는 60여 곳을 제외하더라도 휠체어 접근 자체가 안 되는 곳이 200여 곳에 달했다.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1,529곳 중에는 폭이 좁아서 이용이 어렵거나 안전바가 설치되지 않고, 기울기가 심해 실질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경사로 폭을 0.9m로 정하고 있는데, 이보다 폭이 좁은 곳은 174곳(9.8%)이었다. 한쪽이 건물 벽으로 되어 있지 않는 한 양쪽으로 안전바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427곳(27.9%)은 안전바가 없었다.

경사로 기울기가 심해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기울기를 1/12로 정하고 있지만 474곳(31.0%)은 가팔라서 이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경사로가 있더라도 물건을 적재하는 경우도 있었고, 경사로에 바로 여닫이문을 설치해 이용에 불편이 초래되는 곳도 많았다.

경남 이동면 행정복지센터의 점자유도블록의 모습. 사각형 규격을 지키지 않았고, 선형블록과 점형블록이 혼재되어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경남 이동면 행정복지센터의 점자유도블록의 모습. 사각형 규격을 지키지 않았고, 선형블록과 점형블록이 혼재되어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주 출입구, 계단 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유도블록을 반드시 설치하게 되어 있으나 이를 준수하지 않는 곳이 248곳(13.8%)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된 1,546곳 중 355곳(23.0%)은 선형블록과 점형블록을 혼재해 설치하거나 이미 파손되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모니터링이 이뤄진 7월에는 장마가 있어 점자유도블록 위에 신발 물기를 제거하기 위한 카펫을 깔아놓은 곳이 많았다.

- 행정복지센터 94.4%가 2층 이상 건물… 63%는 엘리베이터 없어 ‘장애인 차별’

모니터링한 행정복지센터는 2층 이상인 곳이 1,693곳으로 94.4%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627곳(37.0%)에 그쳤다. 나머지 1,066곳(63.0%)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민원실이 1층인 곳이 87.6%(1,572곳)로 나타났지만, 2층 이상인 곳도 12.4%(222곳)에 달했다. 2층 이상인 곳에는 체력단련장, 주민자치회사무실, 작은도서관, 구내식당, 건강 상담센터 등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다수 마련돼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므로 장애인들은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 활동가는 “민원실이 1층에 마련이 돼 있다고 해도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누리고 있는 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행정복지센터가 장애인 편의시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엘리베이터에 △점자유도블록 △점멸등 △전면거울 △음성신호장치 △장애인용조작판 △손잡이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627곳 중 점자유도블록은 512곳(82.2%), 장애인조작판은 542곳(87.0%), 손잡이는 573곳(92.0%)에서 설치했다. 그러나 음성신호장치는 435곳(69.8%), 전면거울은 316곳(50.7%), 점멸등은 150곳(24.1%)에만 설치돼 있었다.

-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편의제공 무용지물인 경우 많아

민원실 접수대가 높게 설치돼 휠체어 이용자 접근이 어려운 곳은 395곳(22.0%)이었다. 높은 접수대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모니터링 요원 중 휠체어 이용자가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는데, 공무원 업무용 PC에서 연결된 ‘지문확인’, ‘자필전자서명’ 기계선이 짧아서 발급과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거나 억지로 팔을 당겨야 해서 발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100건이 넘었다.

이 밖에도 △점자로 된 안내책자 또는 서식 734곳(42.4%) △확대경(돋보기) 1,566곳(90.5%) △화상전화기 비치 또는 지역 수어통역센터 안내 등 수어통역 374곳(21.6%) △인력지원 1,128곳(65.2%) △수동휠체어·촉지도·전동휠체어 충전기 등 기타는 126곳(7.3%)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제공에 대해 공무원들이 왜 해야 하는지 이해도가 떨어지고, 편의제공에 대해 시혜적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상전화기는 의무적으로 비치되어야 하는데, 한 지자체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지를 내리기도 했다. 요금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화상전화기 유무를 물으면 연결이 안 되어 있고, 창고에서 꺼내오기도 했다. 모니터링 요원들이 점자안내서나 확대경 등의 유무를 물으면 ‘장애인들은 보조인과 함께 오기 때문에 비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서울 개봉1동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화장실은 반투명해서 안이 다 비치고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울 개봉1동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화장실은 반투명해서 안이 다 비치고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장애인화장실 있어도 55.6%가 사용 불가능해… 남녀공용, 반투명 화장실 여전해

장애인 화장실은 1,483곳(82.7%)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사용 가능한 장애인화장실은 659곳(44.4%)에 불과했다.

824곳(55.6%)은 실제 사용이 불가능했는데, 이유를 살펴보면 △화장실 좁음 478곳(58.0%) △남녀구분 안됨 351곳(42.6%) △청소도구 쌓임 248곳(30.1%) △기타, 지저분하거나 화장지 걸이대 등의 문제 219곳(26.6%) 등이 있었다. 특히 화장실 문이 반투명으로 되어 있는 곳도 여전히 존재했다.

이승헌 활동가는 “장애인 화장실의 남녀구분이 안 되거나 반투명으로 설치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장애인 인권수준을 여실이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물리적 접근성보다 공무원의 강압적 태도에 따른 ‘심리적 장벽’ 높아

“엘리베이터 편의 시설 조사 중 ‘뭐하고 있느냐? 잠깐 봅시다’라고 해서 체크리스트를 보여 줬고, 센터 명함을 건네며 ‘편의시설 조사 중’이라고 이야기하니 체크리스트를 빼앗고 응접실로 들어오라고 해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조사하면 어떡하냐는 겁니다. 우리가 명함을 달라고 했더니 주지 않았습니다.”

“부름의 벨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어서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공무원이 출입구로 나와서 하는 말이 ‘휠체어 이용자는 2층 민원실을 이용할 수 없다’며 모든 업무제공은 여기서 이뤄진다는 거예요. 너무 황당해서 직원 이름을 물어보니 당당히 장애인복지과 ○○○이라고 대답했어요.” 

“모니터링 관련해서 행정복지센터 계장에게 제가 질문했는데, 계장은 저는 보지 않고 제 옆에 있는 비장애인 조사원에게 무슨 조사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체크리스트를 들어보이며, ‘제가 조사하여 체크하는 거라고요’라며 재차 이야기해야 해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모니터링 요원들은 모니터링 시 무엇보다 일선 공무원들의 장애 당사자에 대한 태도때문에 힘들었다고 밝혔다. 모니터링 조사 항목은 모두 행정복지센터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하거나 제공해야 함에도 이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없더라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압적으로 대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승헌 활동가는 “장애인을 한 사람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고 귀찮은 민원인쯤으로 대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물리적 접근이 안 되더라도 공무원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 정도에 따라 장애인의 편리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 발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김용섭 회장, 마한얼 변호사, 우주형 교수, 이승헌 활동가, 조소연 공공서비스정책관, 신용호 과장이 토론자로 나선 모습. 사진 허현덕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 발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김용섭 회장, 마한얼 변호사, 우주형 교수, 이승헌 활동가, 조소연 공공서비스정책관, 신용호 과장이 토론자로 나선 모습. 사진 허현덕

- 법적 장치 마련 20년째… 장애인 ‘한 표 행사’ 여전히 요원해

장애인등편의법에서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규정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과태료 등 장애인차별금지법보다 강력한 제재 방안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행명령 기관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행정복지센터의 장애인 편의시설 이행명령은 지자체에서 맡고 있기에 지자체장의 의지가 없으면 변화를 찾기 어렵다”며 “이번 모니터링 조사를 바탕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지자체를 압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당연히 이행해야 할 편의시설 제공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 고령자, 아동, 여성 등이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사후관리 매뉴얼의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마 변호사는 “비장애인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소와 투표용지, 후보 정보 등을 편의제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투표권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듯이 이를 향유하기 위해 제공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접근되어야 하고, 휠체어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은 편의제공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여론을 통한 인식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소연 행정안전부 공공서비스정책관은 “‘국민 신문고’나 ‘광화문 1번지’ 등 공론의 장에 해당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하고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하고 이슈화해서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정책관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차관 행정협의회에서 이번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편의시설 접근 실태 자료를 만들어 17개 지자체 부시장에게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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