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면 어리다고, 늙으면 늙었다고 또 다른 차별
사회·제도적 배려가 더 현실적으로 이행되길
몇 년 전 미국에서 펼쳐진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교훈을 남긴 바 있다. 바로 흑인과 여성 간의 경쟁 속에서 여전히 세상은 남성을 우선해 택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말에는 많은 허점이 있어 쉽게 공격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인종 간의 차별보다도 인류에게 더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차별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사회 속에서 장애인은 지속적으로 차별의 대상이자, 멸시 혹은 회피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장애자’는 물론,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휘로 장애인들을 차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미국 대통령 선거 사례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내에서 좀 더 중요한 차별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장애인에 대한 부분이다. 외국을 논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물론 여성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을 통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더욱이 어린 여성장애인의 경우는 어리다는 이유로, 노인 여성장애인의 경우는 늙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동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순간도 여성장애인의 성폭력 문제는 사회적 관심을 야기하는 수준에서 끝날 뿐, 해결책 강구를 위해 당국은 물론, 사회 구성원들조차 적극적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장애’를 일반인과 비교해 불쌍한 사람이나 불편한,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로 인식하곤 하지만, ‘장애’는 일반인에 비해 약간 더 불편함을 느낄 뿐 그 이상 혹은 그 이하의 차이도 없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 불편함조차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구조물에 의한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 속에서 여성은 남성들의 욕구충족 대상이나 혹은 종족 번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어왔으며, 이러한 인식 속에서 여성장애인은 더욱 큰 차별과 박해를 받아 왔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은 여성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의식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주장하는 한편, 여성장애인에 대한 사회 혹은 제도적 배려가 더 현실적으로 이행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이 글은 남도발전연구원 김세현 주임연구원이 보내왔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비마이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발언대 〕는 독자 여러분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기고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