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외치며 기획재정부 상대로 농성 시작
생활고, 무연고사 등 잇따른 ‘사회적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사회

안녕하세요, 비마이너입니다. 2020년을 목전에 두고 인사드립니다.

장애계에서 2019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2019년 7월 1일,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애계는 예산 확대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 폐지’라며 ‘진짜 폐지’를 촉구하면서 바로 그날부터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으로 장소를 옮겨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10월 31일,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위한 예산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10월 31일,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위한 예산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2007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고 2010년 장애인연금이 시작되면서 장애인복지예산은 과거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과거에는 ‘장애인거주시설’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초는 마련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하반기에 대두된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문제’는 그중 하나입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힘들게 지역사회에 나왔지만, 만 65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활동지원이 중단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강제 전환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이들은 하루 2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했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되는 순간 하루 3~4시간의 서비스밖에 받지 못합니다. 이는 다시 시설로 돌아가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장애인들은 단식과 삭발 투쟁, 그리고 국회를 찾아가 호소하며 문제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과의 형평성을 근거로 당장의 해결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성과가 있다면, 내년도에 5억 원의 시범사업 예산을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 탈시설제도 초석 다진 10년, 이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탈시설과 관련하여 기쁜 소식도 있습니다. 올해는 ‘탈시설-자립생활제도’의 초석을 닦은 ‘마로니에 8인’ 투쟁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2009년, 김포 석암 베데스다요양원에서 살던 중증장애인 8명이 시설을 나와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인권침해가 일어난 사회복지법인 석암재단의 비리를 고발하고, 서울시에 탈시설-자립생활권리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기존 시설 비리 투쟁이 법인 정상화를 촉구했던 것을 넘어, 탈시설 투쟁으로 나아가는 첫발로 기록되는 사건입니다. 10주년이었던 올해, 서울시는 지원주택을 통해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구 석암 베데스다요양원)에 사는 장애인 32명의 탈시설을 지원했습니다. 지원주택은 공공에서 주거 제공과 함께 복지서비스를 지원하여 최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 거주할 수 있는 탈시설 주거모델로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구시립희망원에서도 반가운 탈시설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구시립희망원 내 시민마을(장애인거주시설)이 지난해 12월 31일 폐쇄된 후, 그곳에 살던 중증발달장애인들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80%가 발달장애인인데,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이 본격 시작된 것 같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우리사회는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요? 무거운 물음이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 탈시설 운동가의 죽음, 잇따른 생활고, 동료지원가의 죽음…

이러한 변화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용기 있게 먼저 갔던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탈시설-자립생활운동 1세대로 시설의 빗장을 열었던 고 박정혁(2019.6.23 사망) 님, ‘마로니에 8인’ 고 황정용(2019.7.13 사망) 님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길을 따라 지난 2017년 12월에 탈시설한 고 이창선 님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올해 5월 13일,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탈시설 운동가들의 잇따른 부고에 진보 장애운동계는 비탄에 빠졌습니다.

빈곤으로 인한 죽음도 올 한 해 유독 잦았던 것 같습니다. 관악구 탈북 모자 아사 사건, 관악구 장애여성의 고독사, 강서구 간병 살인, 성북 네모녀, 인천 일가족, 최근 대구 일가족의 죽음까지… 빈곤의 늪은 점점 깊고 넓어져만 가는데 출구는 더 좁아져만 갑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로 시민사회단체는 오래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약속을 뒤집고 내년에 수립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에서만 단계적 폐지를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또 어떤 죽음을 목도하게 될지,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이와 함께 연말을 앞두고서 우리는 벼락같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올해 고용노동부에서 시작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중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던 고 설요한 씨가 과도한 업무 압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초기부터 장애인의 업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실적 위주의 사업이라고 많은 지탄을 받았는데요, 결국 이러한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했던 고 설요한 씨는 과도한 업무와 실적 압박으로 지난 12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영정 앞에 국화가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했던 고 설요한 씨는 과도한 업무와 실적 압박으로 지난 12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영정 앞에 국화가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 ‘사회운동가의 지속가능성, 어떻게 가능할까?’ 던져진 화두

절망과 비탄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탄탄하게 다지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사회는 ‘활동가’라고 부릅니다.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올해 비마이너가 발굴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올해 7월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포럼의 주제는 ‘사회운동활동가들의 건강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활동가들의 번아웃, 빈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고 그 이야기를 비마이너는 충실히 전했습니다. 활동가들의 현실에 대해 곳곳에서 공감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비마이너의 현실 또한 그날 터져 나온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들었던 한해였습니다.

그 외에 올해 4월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과 혐오를 뚫고 10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제1회 매드프라이드를 열고 광장에 우뚝 섰습니다. 경이롭고 벅찬 날이었습니다. 또한, 정부와 국회는 기자회견 시에 수어 통역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농인계의 오랜 투쟁 덕분입니다.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비마이너는 올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마무리하고 가야 할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장애등급제 폐지(강혜민 기자)와 부양의무제 폐지(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투쟁 사안을 비롯하여, 발달장애인 탈시설 지원의 모범이 될 대구 사례(허현덕 기자)를 전합니다. 또한, 잇따른 ‘사회적 죽음’으로 어느 때보다 이슈가 된 무연고사와 관련해 조명받고 있는 서울시 공영장례를 점검하고 죽음 이후에 남은 과제들을 살펴봅니다(이가연 기자). 마지막으로 박승원 기자가 올 한해 이야기가 남은 현장을 독자분들에게 엽서를 띄우듯,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고된 한 해였습니다. 새해에는 보다 희망찬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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