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에서 진행하는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방식’ 확대 도입 촉구
“빈곤의 형벌화 멈춰라” 개발구역에 묶인 모든 쪽방촌 퇴거 중단 요구도

17일 오후 3시 서울SH본사에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서울시 내 25개 자치구 정비사업 담당자를 대상으로 ‘공공재개발 정책설명회’를 열었다. 이에 2020홈리스주거팀(아래 홈리스주거팀) 활동가 20여 명이 설명회 30분 전에 서울SH본사 앞에 모여 “퇴거 위기에 놓인 양동(남대문로5가동)과 동자동에도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방식(아래 순환형 개발)을 도입하라”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순환형 개발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영등포구가 영등포 쪽방촌 2/3에 해당하는 곳을 영등포구·LH공사·SH공사와 함께 공공주택사업으로 개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 1월 20일 국토부와 서울, 영등포구가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및 도시 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재개발로 쪽방 주민을 내쫓지 않고 다시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20 국토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대전 한 곳에만 확대 적용하고, 서울 다른 지역에 대한 계획은 없다.
현재 양동과 동자동을 비롯한 쪽방지역은 개발구역으로 지정돼 퇴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양동 쪽방은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에 포함돼 개발 계획을 결정·고시한 상태다. 이에 홈리스주거팀은 “건물폐쇄와 주민퇴거 등 재개발 예비조치로 주민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동자동은 최근 특별계획구역 지정이 해제돼 지구단위계획으로 환원됐다”라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개발이 예정돼 있어 언제 쫓겨날지 모를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동현 홈리스 상임활동가는 오늘 SH본사에서 설명회를 하는 공공재개발 사업이나 현재 진행 중인 영등포와 대전 쪽방지역 공공주택사업은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공공이 주도해 주민이 안정적인 재정착을 하도록 전환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모두 같은 쪽방이다. 하지만 양동과 동자동 쪽방 주민은 재개발 앞에 아무런 대책과 보장도 없이 막연하게 거리로 쫓겨나게 생겼다”라면서 “이들은 쫓겨나지 않고 이웃과 함께 계속 지내기를 바란다. 양동과 동자동도 공공주택사업으로 지정해서 내쫓기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 높은 임대료 내고도 개발 앞에 대책 없이 쫓겨나야 하는 현실
그동안 양동·동자동 쪽방 주민은 최저주거기준 면적에 미달하는 2평(6.6㎡) 이하의 방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내며 살았다. 월평균 23만 3,000원이라는 서울 강남주택보다 높은 단위 임대료를 내고도 전용 화장실도 부엌도, 온수와 냉·난방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
이에 홈리스주거팀은 “쪽방 주민들은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면서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개발이 시작될 때마다 대책 없이 쫓겨나야 했다”라면서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 발표는 이제 그런 폭력적인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니 국토부와 서울시는 현재 개발구역으로 묶여 있는 모든 쪽방지역 퇴거를 당장 중단하고, 순환형 개발을 확대 도입하라”라고 외쳤다.
- 공공주도 개발계획 수립에 앞서 쫓겨나는 사람 목소리 귀 기울여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야기하는 때다.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예방조치를 보더라도 각자 집에서 자가격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라면서 “집은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공간으로서 최소 단위다. 그런데 현재 양동에서는 불법으로 주민을 내쫓는 퇴거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 사무국장은 “공공주도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전면화하려면 현재 쫓겨나는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면서 “그동안 도시 재개발은 가난한 사람이 도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형벌 조치로 이루어져 왔다”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도시에 머무는 비용을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하는 것 △고급주택만 가득 만들어 가난한 사람이 살 곳 없게 만드는 것 △내 일자리와 가까운 곳에 더는 둥지를 틀 수 없게 막는 것 △지원시설뿐 아니라 평생 함께한 이웃과 모여 지낼 수 없게 만드는 것 등이 바로 2011년 유엔(UN)이 발간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서’에서 꼬집은 ‘빈곤의 형벌화’라고 설명했다.
쪽방 주민 권영태 씨는 “나는 1953년도에 양동에서 지내기 시작해 오늘까지 살아왔다. 청년 때 들어오기 시작해 어느덧 초로의 노인이 되었다”라면서 “그동안 이웃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막노동을 찾아 일하기도 하고 중국집에 가서 요리하기도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함께 고생하며 동고동락한 이웃과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다. 양동 쪽방 주민과 함께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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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