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인, 노동을 묻다 ③
복지 대상자로서의 ‘장애인’을 넘어, 노동자로서의 ‘장애인’

[편집자 주] 비장애인 중심의 생산성, 효율성을 강조하며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박탈했던 기존의 노동담론을 넘어서고자 2019년에 ‘장애인 노동권 담론 모임’이 꾸려졌다. 세미나와 연구를 진행했던 내용 중 최근 장애인 노동권 관련 현안을 중심으로 연재를 이어감으로써 장애인 노동권 담론의 폭을 더 확장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와 권리중심형 일자리 △고 김재순 사망사건을 통해 본 장애인노동 △장애인복지법 중심의 장애인 관련 법·제도가 놓친 ‘장애인 노동자’ △고 설요한의 죽음에서 드러난 공공일자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을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비장애인 노동자는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는 ‘장애인’?

지난 6월 말 홍준표 의원(무소속)은 최저임금법의 일부개정 법률안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주장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의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ILO(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애인 노동자들이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최저임금법 제7조)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은 장애인 노동자에 한해, 사용자는 그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징역 혹은 벌금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작업능력평가’ 결과에 따라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니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최저임금법 제1조)’으로 한다.

그렇다면 작업능력평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평가받고 이에 대한 결과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은 과연 본 법의 취지에 맞는가. 이는 여전히, 노동하는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바라보면서 비장애인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 아닐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는 130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상황 및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 최저임금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풍선에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는 130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상황 및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 최저임금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풍선에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지워진 두 노동자, 현장실습생과 직업재활시설 이용 장애인

지난 3월 30일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 경북지회(준)는 코로나 시대의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에 대하여 고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정부가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고자 직업재활시설 등에 휴관을 권고했지만, 이로 인한 장애인 노동자의 생계보장과 휴업수당 대책은 없었다.

여기서 직업재활시설이란 “일반 작업환경에서는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환경에서 직업훈련을 받거나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가리킨다. 직업재활시설에서의 노동은 노동으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평균 임금은 최저임금의 36.6%에 그친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저임금과 일반고용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이루어지는 짧은 고용 계약 기간, 사회보장 사각지대 등 비장애인이라면 경험할 수 없는 최악의 불안정 노동에 처해있다.

직업훈련이기에, 혹은 일반작업장이 아니기에 이들이 하는 노동은 그저 ‘학습’이나 장애인의 ‘재활’로 봐야 할까. 최근 현장실습제도와 관련된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자.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노동하는 학생 노동자의 현장실습은 학습 혹은 훈련 과정으로 이해되어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심지어 산업안전 조치 등의 노동자 안전을 위한 법·제도에서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현장실습 중이던 학생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이 잇따랐다. 그제야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점차 커졌고 올해 3월 고용노동부는 관련 법을 제·개정하여 현장실습하는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배제와 차별을 줄여가고자 하는 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훈련과 실습시간을 정하는 결정권이 사용자에게 있어 사실상 무료 노동이 가능하고, 실습 과정의 교육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배제되는 권리가 개인을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에 주목하고 법 밖의 노동자를 포용하는 방향에 동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직업재활시설의 장애인 노동자 또한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노동을 하고, 현재의 직업 훈련은 더 나은 노동 경험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현장실습생처럼 ‘지워진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장애인 노동과 장애인 노동의 담론이 분리되어 있는 듯하나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현재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 문제는 개인의 장애나 취약성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 노동 문제가 사업장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해소해나가고 있는 것에 비추어볼 때, ‘장애인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차별적 태도가 아닐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자이기 위한 복지적 시선

지난 7월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개정안에서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의 문제를 지적하며 최저임금 수준 내에서 임금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조항(제21조 3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장애인 노동자들은 비장애인과 구분되고 최저임금이 장애인 노동자의 최고 임금이 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장애인 노동자가 경험하는 소득 감소 문제는 장애인을 ‘장애인’으로만 묶는 법과 사회구조의 문제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권과 복지는 상충하는 관계일까. 사회복지 혹은 복지국가의 지향은 시민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있고,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의 생활 안정과 복지 향상, 사회활동 참여 증진을 비롯해 장애인의 직업 참여 또한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장벽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노동자’처럼 사회에서 규정한 ‘장애인다움’에서 벗어난 장애인의 권리는 오히려 제한하거나 이들을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는 문제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오늘날 장애인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직업재활시설 이용 장애인이 어떠한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직업재활 훈련을 ‘재활’로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을 재활로 보는 관점은 구조의 문제를 삭제하고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노동자’라는 단어가 ‘장애인 노동자’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장애인’이란 단어가 ‘장애인 노동자’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을 때까지, 장애인 노동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 주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함께 변화해가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중이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지와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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