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유성원
‘외로움이 뭘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219쪽)
코로나19 이태원 확진자가 증가할 당시 언론들은 게이 클럽과 찜방(을 위시한 수면방과 사우나 문화)을 지목하며 게이들의 만남 자체에 관심을 갖고 비난했다. 하지만 클럽과 찜방의 무게는 달랐다. 흉흉한 이야기들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더욱 경직시켰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우려와 비난도 적지 않았다. 당시 이태원 확진자 증가상황에 대응했던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음지의 이야기들이 강제적으로 노출되는데 위축되지 말자고, 그동안 하지 못했고 일부러 피했던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메시지를 올렸다. 그렇게 운을 뗐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는 막막했다. 지목을 당한 업소는 사건 직후 폐쇄했다. 외부의 공격에 금세 사라지기 쉬운 공간은 그만큼 언어가 만들어지고 기록될 환경도 마련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찜방이 오랫동안 말해온 퀴어 프라이드의 이면, 의도치 않게 또는 의식적으로 숨겨오고 선 그어온 치부는 아닌지를 되묻게 한다. 내밀하게 점착되어온 게이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커뮤니티의 빈틈을 다시 읽는 작업이 필요했다. 단순 묘사와 르포 너머 누가 이러한 장소를 찾는지, 관계가 만들어지는 동안 어떤 역학들이 작동하는지, 일련의 찜방의 생태가 돌아가는 데에는 어떤 정념이 밑거름되며 저변에는 어떤 사회적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버섯’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유성원 작가는 SNS에서 ‘섯버체’를 구사하는 이로 알려져 있다. 문체를 일부러 망가뜨리며 섹스와 섹스의 실패를 말하고 고양이와 패스트푸드와 ‘소중이’를 수다하게 흩뿌리는 그의 언어는 퀴어를 체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성소수자의 시민권과 제도적 인정의 관점 이면에 부대끼는 몸들과 외로움의 정동을 전달하는데 비틀거리고 미끄러지는 문장들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는 중에도 작가는 성소수자인권운동, HIV/AIDS운동에 참여하며 정보를 얻고 자신의 경험을 운동의 언어로 확장해간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유성원, 난다, 2020)은 그간의 궤적을 묶어낸 결과물이다.

‘누구와도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고, 성욕을 해소할 수 있으며, 좋아하고 싶었고 잘해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실감을 구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목소리와 성기와 몸을 가진 아무나와 오천 원에서 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공간.’ (39쪽)
그가 섹스하는 공간은 낮보다는 밤에 어울린다. 프로필을 나누고 통성명도 필요 없는 공간은 얼핏 자존감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평등을 말하고 벌거벗은 연대의 정치적 가능성을 말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게이들의 섹스를 이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에 포획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평등해 보이는 이 공간이 어떤 위계 위에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태원 사태 당시 회자되었던 수면방의 규정 중에는 ‘불법 촬영과 폭력행위를 금지하며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 퇴실 조치를 당한다’는 항목이 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시민사회는 다분히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섹스가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규정에는 나이 제한이 있고, ‘뚱뚱한 사람, 끼 부리는 사람, 전염병 감염인은 출입할 수 없다’고 정해놓기도 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나이와 체형은 취향과 미용의 문제로 줄곧 소비되지만, 그것은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해방의 경험 속에서도 공적 섹스의 현장은 눈빛과 가벼운 수신호와 스킨십 등 상호 의사를 확인하는 복잡한 과정을 수반한다. 여기에 누군가는 쾌락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배제될 것이다. 이러한 배제의 자리, 어두운 공적 섹스의 장소에서마저 밀려나는 이들은 누군가의 신호를 판단하거나 거절할 수 없고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관계에 임하며, 종국에는 관계에 대한 의지의 끈을 쉽게 놓을 것이다. 그것이 오랜 시간 체화될 때, 나는 무엇이 차별이고 위력인지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협상의 항목들을 포기하기 쉽다. 찜방과 같은 공적 섹스의 공간은 익명성 속에 자기 결핍을 숨길 수 있지만,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위계의 작동을 강화한다.
- 불행을 이야기하기
책은 자존감의 결핍으로 무엇보다 높아진 방어벽과 그로 인한 외로움을 토로하고 귀에 박히도록 자살을 적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의 문장은 연쇄적으로 순환하는 정념의 인프라를 사방에 쏟아 놓는다. 불안정 노동을 지속하며 낮아진 경제력은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인권과 노동운동이 주장하는 차별과 착취의 모세혈관 속에 혼자 패스트푸드를 먹고 불안정 노동을 하며 남들과의 지속적 관계를 선택하기 어려운 고립과 외로움의 잔상을 남긴다. 그것은 나의 결핍과 고립을 구성하는 것이 단지 몸을 구성하는 살의 질량 문제나 미적 기준에 한참 누락된 이목구비의 문제만은 아님을, 내가 그저 특정 정체성의 개념으로만 구성되지 않음을, 성적 권리를 행사하고 관계를 맺거나 맺을 수 없었던 역사에 계급과 계층, 인종과 국적, 장애 여부 등의 복합적인 층위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이 남성의 ‘매력 자원’이 결핍되어 있거나 아프고 손상된 몸을 가지고 있는 이는 자존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협상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기며 심지어는 협상 자체를 거부한 채 벽을 치고 자신을 감금한다.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안 궁금한 사람이 없다’ 같은 말을 들을 때 반박하고 싶은 충동. ‘전 안 그러는데요.’ ‘저는 어떤 사람은 반드시 평범하고 보통이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데요.’ (172쪽)
소설인지 자전적 에세이인지 장르를 흐리는 글은 자신의 이야기에 침잠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척박함은 무엇인가. 질문은 관계의 폐허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SNS에 꾸준히 올린 글을 단행본으로 엮는 시도는 누군가에게 공적으로 말을 거는 시도로서 홀로 품어온 불행을 함께 이야기하자는 제안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불행을 이해하기 위해 찾았을 인권운동에서 그는 자신을 ‘예비감염인’이라고 부르면서도 질병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잘못된 지식과 혐오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근력을 키워나갔다. HIV/AIDS인권운동은 예방약이 보급되고,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감염되었더라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 전파할 수 없다는 연구들을 바탕으로 혐오 논리에 대응해왔다. 그렇게 과학적인 언어로 중무장했지만 그것 자체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않는다. 치료는 강박이 될 수 있고, 예방은 감염인의 삶을 잠식할 수 있다.
결국 그가 책의 말미에 이야기하는 것은 늙어감에 따라 자신이 성적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우려, 나아가 손상과 비건강, 가난의 영속으로부터 어떻게 ‘함께’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은 HIV 감염인을 애당초 낙인찍고 성적 권리를 박탈하며 범죄화한다는 점에 문제적이다. 그가 책의 말미에 19조 폐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자신감이 없어서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주는 편이에요. 그런 걸 거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요.’ 그때부터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33쪽)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이의 불행을 찾아야 했고, 그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단체를 찾고 정보를 찾아 자신의 언어를 만드는 것은 불행의 맥락을 찾고 그 지층을 구축하는 노력이다. 함께 힘을 내자고 직접적으로 독려하기에 앞서 어째서 힘을 내자는 독려조차 어려운지, 어째서 함께 힘을 내고 싸워야 할 이들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가를 살피는 것이기도 하다. 하여 게이 섹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은 게이 섹스를 넘어 취약한 성적 환경에 둘러싸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섹스를 향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의 벽장에 문을 두드린다.
불행을 타개하는 노력 속에서도 끊임없이 불행을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관계와 자원들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들었던 질문이다. 문란한 생활이라고 지탄하고 자신을 문란하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이 문란함을 어떻게 내가 조율할 수 있을지,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과 장치들을 어떻게 확보하는지이다. 불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안정을 찾고 손상과 아픔이 낙인과 범죄로 치부되지 않도록 사회가 제도를 도입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제 속을 게워내며 독자들에게 고립과 외로움을 조장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제도가 변화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데에서 나아가 손상과 가난, 나이 듦을 견딜 수 있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적어도 고민 나눌 관계를 만들고 그러한 환경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덧) 하지만 마음을 울린 부분은 가난과 나이 듦을 생각하게 되면서도 안정된 삶을 위해 무언가를 배제해야 하는 것까지도 고백하는 문장이었다. 책은 지속적 삶을 그린다는 바람을 말하지만, 삶의 지속과 안정 속에서 타인의 손상과 가난을 관계로부터 배제하거나 피하게 된다는 마음까지도 기술한다.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모순과 구멍까지 고백하는 무서운 투명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이들은 없다.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당신과 만나 공존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의 독야청청한 장밋빛 서사는 부서지고 다시 구축되기를 반복한다. 사회에 성적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세속적인 매력 자원을 결핍한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이상한 쾌락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서사의 빈자리에 채워질 이야기들은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필자 소개 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활동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