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내가 삶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질병’이 아니라 ‘장애’였다. 사람들은 모두들 제 몸을 스스로 움직여 일어서고 걷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걷고 서는 모습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었다. 나는 왜 안 되는가? 라는 질문에 이어지는 답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였다.
30대가 되어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런저런 증세를 묻더니 근육병일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그때 ‘척수성 근위축증’이라는 생소한 질환명을 듣게 됐다. 내게는 선천적으로 걸을 수 없는 질병이 있었다. 내 노력과 의지 부족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걸을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질병’으로 인한 ‘장애’였음을 알게 됐다.
장애의 원인과 병의 예후를 알게 되니 난제를 해결한 것 같았다. 서서히 또는 갑자기 몸이 둔해지거나 움직여지지 않아도 ‘왜 이러지?’라는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게 됐다. ‘이젠 이 움직임이 안 되는 거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몸에서 일어나는 질병의 과정을 나이 듦의 과정으로 받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장애의 흐름으로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고.
나는 내 몸에 크게 감정을 담지 않는다. 상대방이 감정을 담아 내 몸을 보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 감정들 하나하나가 내 몸에 붙어 어지간히 나를 괴롭혔다. 진저리쳐지는 그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뎠다. 이제는 외면인지 무시인지 모르겠지만 무덤덤하다. 그래서 질병으로 만나든 장애로 만나든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 같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나는 노년을 보내는 중이다. 40대에 웬 노년? 하겠으나, 평생을 장애와 질병으로 살다 보니 힘들고 지쳐 이미 노년이 된 기분이다. 실제 몸의 제약도 질병으로 인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30대 후반부터 간소하게 일과 관계를 정리하고 평온한 시간을 갖던 중 다른몸들의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질병보다 장애를 가진 삶으로 정체화하고 살았던 나는, 정작 모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서는 걱정이 많았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까 등 여러모로 막막한 심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루 종일 누군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말을 걸어와도 고갯짓으로 대신하거나,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심각하리만큼 입을 닫고 산다고 어른들의 걱정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말을 안 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며 어르거나 야단을 들어도 내 말수는 늘지 않았다.
말이란 게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건데, 내게는 그 행위가 쉽지 않았다. 어릴 적 걷지 못했던 나는 타인의 거침없는 말을 들어왔다. 걸으려는 노력도 안 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부모와 형제를 육체적, 심정적, 경제적으로 힘들게 고생시키는 애물단지라고. 꾀가 말짱하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려 한다는 비난과 질책을 듣기 일쑤였다. 어린 난 그런 말들로 상처를 받아도 못 들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가진 장애로 위축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이 모임에서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살아온 이야기들을 주절주절하고 있다. 모임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질병 경험과 인생사를 숨김없이 나누는 진솔함이 좋았다. 다 부질없는 거라 치부했던 지나온 삶도 돌아보고 그때의 마음도 들여다보며 나도 인생을 독백하듯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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