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서 좀비처럼 살았던 10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남 광주, 올해 지원 예산 2억 원 확보했지만 내년 예산은 없어

지난 9월 25일 만 65세 생일을 맞아 활동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전계구 씨. 사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난 9월 25일 만 65세 생일을 맞아 활동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전계구 씨. 사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요양병원에서 좀비처럼 살았던 10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광주 남구에 사는 전계구 씨는 지난 9월 25일로 만 65세가 되었다. 11년 전 낙상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전 씨는 목과 양 손가락을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장애를 입은 직후 요양병원에 들어가 10년가량을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의 삶이 좀비와도 같았다고 기억한다.

“그곳에서는 10시만 되면 TV를 꺼야 합니다.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노라면 밤이 와도 잠을 쉽게 잘 수 없는데, TV마저 꺼버리면 미칠 것 같더군요. 똥 많이 싼다고 잔소리하고, 오줌 자주 싼다고 소리 지르는 것도 싫었습니다. 밥과 반찬도 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먹을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고 전까지 30년 이상을 식당에서 요리를 하며 살아온 저에게 먹을 것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기에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는 것과 밖에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매나 뇌졸중으로 대화가 어려웠던 어르신 5명과 함께 생활해야 했던 그 10년은 ‘관 속에 누운 자가 느끼는 고독과 침묵’보다 더한 절망이었고, 세상 밖과 단절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은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한 좀비와도 같았습니다.” (전 씨가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쓴 편지에서)

이후 전 씨는 광주시 장애인복지과에 적극적으로 퇴원 의사를 밝혔고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게 2018년 7월, 요양병원에서 나와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었다. 돈을 아끼고 아껴서 에어컨을 사고 티브이를 사고 김치냉장고도 샀다.

그런데 ‘활동지원 연령 제한’으로 11월 1일이 되면 활동지원이 중단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된다. 그는 현재 보건복지부와 광주시 추가 지원까지 합해 하루 16시간가량, 한 달에 421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장기요양으로 전환되면 이제 하루에 세 시간, 월 81시간밖에 받지 못한다. 그는 9월 28일 장기요양 등급심사에서 3등급을 받았다. 그는 편지에서 “이제야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요양시설로 들어가야 한다니,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저는 혼자서는 앉지도 설 수도 없습니다. 똥도, 오줌도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2~3일에 한 번씩 관장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똥을 쌀 수가 없으니 숨조차 쉬기 어렵습니다. 오줌도 내 힘으로는 밀어낼 수 없어서,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욕창이 6군데나 있습니다. 동전보다 훨씬 큰 욕창도 있습니다. 활동지원사가 잠시라도 체위변경을 도와주지 않으면, 욕창이 커지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욕창 치료에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요양병원(시설)이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이유는 10년 동안 병원에서 겪었던 ‘인간 이하의 삶’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요양병원(시설)이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적절한 보호도 해주겠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편지에서)

그래서 그는 65번째 생일날, 병원과 약국에 들러 수면제를 샀다. 그날로부터 차곡차곡 수면제를 모았다. 만약 정말 11월 1일, 활동지원이 중단된다면 차라리 한꺼번에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일 오전 11시 광주시청 앞에서 만 65세가 되어 활동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전계구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일 오전 11시 광주시청 앞에서 만 65세가 되어 활동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전계구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올해 하반기에 만 65세로 활동지원 중단된 장애인, 광주시에만 78명

이는 전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계는 몇 해 전부터 활동지원 연령 제한 문제를 정부와 국회에 알리며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그 결과, 21대 국회에도 ‘연령 제한 폐지’를 담은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만 5개가 발의된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도 2016년, 2019년에 보건복지부에 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복지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장애계의 지속된 요구에 인권위는 올해 3월에 복지부 장관에 또다시 정책권고를, 17개 광역자치단체장에게는 지자체 차원의 정책 마련을 권고했다. 그 결과,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올해 만 65세 도래자 304명 중 30명을 시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부산시 또한 149명 중 10명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광주장차연)는 20일 오전 11시 광주시청 앞에서 전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만 65세 도래자에 대한 시 차원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만65세 도래자들이 서비스 급여량의 급격한 삭감으로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제 대책 마련과 활동지원을 계속 이용하길 희망하는 사람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광주장차연이 광주시 내 5개 구에 정보공개청구하여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 만 65세가 되어 전 씨처럼 활동지원이 중단되는 장애인은 무려 78명에 달한다.

올해 하반기, 만 65세가 되어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된  전남 광주 5개 구 장애인 현황. (2020년 7월 1일~12월 31일)
올해 하반기, 만 65세가 되어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된 전남 광주 5개 구 장애인 현황. (2020년 7월 1일~12월 31일)

- 광주시, 만 65세 도래자에게 올해 지원 예산으로 2억 원 확보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광주장차연은 광주시 장애인복지과와 면담을 했다. 면담에서 광주시는 만 65세가 도래하여 활동지원이 중단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예산 2억 원가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78명을 다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중 기존 인정점수 400점 이상, 등급제 폐지 후 변경된 종합조사표에서 X1 360점 이상인 중증장애인들을 지원 대상으로 한다. 광주시가 대략적으로 파악한 사람은 9명가량이다. 여기엔 전 씨도 포함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원은 올해까지로 내년은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윤재 광주시 장애인복지과 주무관은 비마이너와의 통화해서 “내년에도 계속 지원하려고는 하나, 현재 본예산이 끝나버려서 확답 드리기엔 어렵다”고 답했다. 이렇게 될 경우, 설령 내년에 추경예산이 편성되더라도 지원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태조사에 대해서도 장 주무관은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다만 장 주무관은 “현재 이 문제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시 재원으로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에 복지부 차원에서 법령 개정이 되어야만 한다”며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 참석한 도연 광주장차연 활동가는 “전 씨의 421시간에 대해 광주시가 책임지겠다고 한 점은 의미가 있으나 여전히 명확하게 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는 내년에 광주시 추가 지원이 지속될지의 여부이며, 두 번째는 ‘지원 기준’에 따른 사각지대 발생 우려이다. 도연 활동가는 “인정점수표와 종합조사표가 애초에 신체기능 중심으로 되어 있어 이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정말 필요하지만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광주시는 수급자심의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장애계와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