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이론은 ‘사회적 장애이론’밖에 없나?"라는 질문에 답함
프리스틀리의 네 가지 장애이론과 장애의 정의
![]() ▲장애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영국의 장애학자 프리스틀리는 장애이론을 4가지로 유형화시켰다. 사진은 2009년 7월, 탈시설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권 확립을 위해 서울시청앞에 모인 모습. 당시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으들여지지 않았다. |
그런데 장애학이 ‘사회적 장애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글 내용에 대해 한 독자가 "장애이론은 ‘사회적 장애이론’밖에 없나?"라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아, 기자의 맘을 이렇게 예리하게 후벼파는 질문이라니. 장애해방학교에서 장애이론을 공부할 때 다들 그 부분이 어려워서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바, 어떻게 이 부분을 언급 안 하고 잘 넘어갈까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딱 들켜버렸다. 오늘은 이 얘기부터 하자.
장애의 개념적 모델은 크게 개별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개별적 모델은 말 그대로 장애를 개인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델의 최종 목적은 개인이 그 장애를 치료하고 소위 ‘정상화’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 모델은 앞선 시간에 설명했듯이 장애를 그 사회의 억압문제로 보는 것이다. 최종 목적은 사회 구조를 바꿔내는 데 있다.
그런데 영국의 사회학자 프리스틀리(Mark Priestley)는 이러한 단일한 구분법을 지양하고 장애이론에 대한 4중의 유형학을 만들어 낸다. 아 이 부분을 이야기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읽은 여러분도 지끈거릴 듯 하니 여기서 심호흡 한번 하시라.
자, 지난 글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을 잠깐 언급했다. 무조건 쉽게 도식화 하는 게 장땡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쉽게 도식화해보자. 유물론은 물질이 의식보다 근본적이라고 생각하고 관념론은 의식이 물질보다 근본적이라고 본다.(여기서 '물질'이 철학적 물질개념으로 제도,사회적 관계, 자연, 신체를 의미한다는 얘기는 저번 주에 했었다.) 자 여기에 다시 개별적이냐 사회적이냐로 나눈 게 프리스틀리의 장애이론의 4중의 유형학인데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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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사스는 사회가 일탈을 구성해 낸다고 보고 정신의학을 사이비 과학이라 주장했다. 사진은 히틀러. |
그런데 이런 개별적 관념론들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1961년 사스(Thomas Szasz)라는 사람이 「정신질환의 신화」라는 책에서 정신의학은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가 정신질환이나 사회적 일탈 등을 구성해 낸다고 본 것이다. 지금이야 전쟁광이고 사이코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당시에는 영웅으로 추대받았던 히틀러를 떠올려보면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걸쳐 장애라는 영역에 사회학 관련 저작들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 후 핀켈스타인 같은 사람이 1980년대에 「태도와 장애인」이란 책을 냈고 사회적 장애이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올리버 라는 학자가 「장애화의 정치」라는 책을 내면서 사회적 장애이론을 정식화하게 된다. 세계 최초 장애학 교수인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는 「장애화의 정치」를 통해 '사회모형(social model)'을 정식화하고 있다.
사회모형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나 의료의 문제로 보던 기존의 의료모형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 장애 대중은 장애 문제를 정치화하고 조직화하여 장애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핀켈스타인, 올리버 이런 학자들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또 하게 될테니 이름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아무튼 장애를 개인의 육체와 의식에만 고착시키는 개별적인 모형에 반발해 사회적 모형이 나오게 되는데 표 아래쪽 왼쪽 부분에 나오는 ‘사회적 생성주의 모형’이 기자가 지난 번 첫 글에서 얘기한 그 이론인 것이다.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억압문제인데 여기서 ‘사회적’이란 ‘사회-경제에 의한 물질적 산물로 인한 장벽과 권력관계’ 를 말한다. 지난 번에 얘기한 걸 다시 예로 들자면 지금 우리는 핸드폰과 인터넷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기자의 고민은 기자가 컴맹이라는 데에 있다. 트위터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왔는데 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지? 하면서 버벅대고 있다. 맑스의 역사유물론 관점에서는 이러한 제도나 물질의 변화가 개인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적 장벽과 권력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사회적 생성주의 모형 옆에 ‘사회적 구성주의 모형’은 장애를 사회의 문제로 보긴 하되 특정한 문화적 맥락 내에서 본다는 것이다. 유교적 관념이 지배했던 조선사회 같은 경우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은 그 시대 죄인으로 취급돼 집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다. 사회적 생성주의 모형과 달리 물질을 토대로 의식이 바뀐다고 보는 게 아니라 의식을 토대로 물질이 바뀐다고 본다.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사회적 장애이론’은 표 아래 부분 왼쪽에 있는 ‘사회적 생성주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사회적 장애이론’이라고만은 해서는 안 되고 ‘사회적 생성주의 모형에 기초한 사회적 장애이론’이라고 해야한다. 하지만 일단 우리끼리의 약속으로 ‘사회적 장애이론’이라고 명명하고 가기로 하자.
그리고 나는 표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하시는 분들은 크게 장애를 개인의 육체손상 문제라고 보는 개별적 ·의료적 접근과, 장애를 사회의 억압이라고 보는 사회적 접근으로 생각하셔도 되겠다. 왜냐하면 앞으로 연재에 계속 이 설명이 반복될 테니까 나중에 다시 이해하자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생각하시면 좋겠다. (기자에게 돌을 던지고 싶으신 분들은 영국의 장애학자 프리스틀리에게로 돌을 던져주시길)
![]() ▲존 맥나이트라는 사회학자는 "문제로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각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고 그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진은 2009년 7월 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 확대요구 기자회견에서 장애차별을 풍자하는 퍼포먼스 |
일단 본격적인 장애인의 정의 얘기를 하기 전,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장애인복지법 제 2조에 보면 장애인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와 있다.
①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②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인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장애인중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장애를 가진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신체적 장애라 함은 주요 외부신체기능의 장애, 내부기관의 장애 등을 말한다.
2. 정신적 장애라 함은 정신지체 또는 정신적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
이와 비교해 사회적 장애이론이 채택하고 있는 장애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손상:사지의 일부나 전부가 부재한 것, 또는 사지, 기관, 몸의 작동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
-장애: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거의 또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주류적 참여로부터 배제시키는 당대의 사회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한.
자, 이 둘이 각각 어떤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보는지 명확히 비교될 것이다.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반면 사회적 장애이론에서는 ‘손상’과 ‘장애’를 구분하여 장애는 사회조직에 의해 받는 불이익으로 명명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장애에 대한 정의를 조금 더 논의하면서 손상이 어떻게 장애가 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