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도 부자(夫子)의 세상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은 오늘도 걷는다. 부산에서 시작한 걷기는 전국을 돌아 서울로 향하고 있다. 말이 걷는 것이지 그 고충을 이해하기는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남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행이라 말할 수 있겠고, 넉넉하니 여유가 있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봄날 좋은 여행이라며 어려운 시절에 꽃놀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부자(夫子)는 '놀이'가 아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 짐씩 짊어지고 다리고 부르트도록 서울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기고 있다. 걸음걸음이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길이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비는 아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금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포부를 안고 3월의 칼바람 속에 걷기 시작했다. 벌써 20여 일을 앞만 보고 걷는다.
![]() ▲부산에서 서울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균도와 그의 아버지 이진섭 님. |
아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자폐성장애가 있으며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사회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복지현실이 그렇다. 학령기에 맞춰진 복지지원은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어떤 것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특히 발달장애를 가진 장애성인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임에도 이 나라는 그것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며, 그 모든 책임은 가족에게 전가한다. 가족들은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고 있지만, 내일에 대한 불안감은 덜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걷기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 성인기에도 시설을 알아보는 아픈 현실이 아닌,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마음이다. 그것이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있고, 지금 자신이 아이에게 해 줄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고, 발톱이 빠질 듯 고통이 밀려와도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마음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법을 제정해 장애 아이와 가족 모두가 고통과 불안을 덜어내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이다.
‘장애인도 동네에서 살자’는 외침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다. 장애인의 삶이 늘 그늘 속에서 사람들의 외면과 손가락질을 감내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무리하고 어려운 주문은 아니지 않은가.
장애인들이 복지의 영역을 넓히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단지 ‘뭔가 하나 더 얻어내려는 술수’ 정도로 여기는 정부 관료들의 생각이 그들을 내몰았으며, 모든 장애인의 삶을 짓밟고 있다.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장애인들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 뻔하다.
부자(夫子)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장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인식을 바꿔 장애인들도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하고,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고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것이다. 자식보다 하루 더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차별과 천대받지 않고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장애라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나가고,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장애가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풀어가야 할 하나의 과제이며,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마음껏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찾아주자는 것이다.
균도 부자(夫子)가 건강한 모습으로 서울에 입성하기를 기원하며, 그들의 소망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기원한다. 한 사람의 한 걸음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 걸음이 열 사람, 백 사람의 걸음으로 번져갈 것이고 그 걸음들은 장애인이 살아가기 편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런 날을 목 빼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 하나, 둘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들의 손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자신에 찬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아이들도 자신있는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것이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다. 우리 아이들 모두가 동네에서 환한 웃음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그날을 위해 우직스럽게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