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코와 마법 동화책

 

도무지 환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정신 산만하고 장난기 넘치는 의사. 폭력적이고 불량스러운 간호사. 과거 인기를 누렸던 아역배우였으나 성인이 되어도 귀여운 연기만 하다가 대중에게 잊힌 채로 시도때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나이 든 여장남자.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환자들이 모인 정체불명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분장, 시시껄렁한 농담과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사랑과 치유의 마법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 마법 동화의 중심에는 누구의 기억에도 남겨지고 싶지 않은 괴팍한 영감 오누크와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소녀 파코가 있다.

늙어 기력이 쇠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영감 오누크는 자신이 일생을 바쳐 일으켜 세운 회사의 권력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자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동료 환자들을 괴롭히며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정원에서 '개구리 왕자와 가재 마왕'이라는 동화책을 읽는 시한부 소녀 파코와 마주치게 된다. 

오누크 영감은 사소한 오해 때문에 소녀의 뺨을 때리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소녀가 단 하루만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기에 맑은 파코의 영혼 앞에서 자신의 존재는 그저 한없이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제도 파코 뺨 만졌죠?"

오누쿠 영감은 아무 기억도 간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소녀 파코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록 기억을 잊었지만 오누쿠 영감의 손길을 기억하는 듯한 파코를 보며, 그는 소녀의 기억 속에 무언가 남길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행동하게 된다.

동화책에 남겨진 엄마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면서 매일 아침 자신의 생일이라고 생각하는 파코와, 소녀가 매일 읽고 또 읽는 '개구리 왕자와 가재 마왕'을 대신 읽어주기 시작한 오누크 영감. 소녀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누구보다 이 과정을 통해 오누크 자신이 가장 먼저 변화되어간다. 그리고 비로소 인생에서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가 된 오누크는 소녀에게 전해줄 마지막 동화를 선사하기 위해 병원 환자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한다.

소녀가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의 기억 속에 이 아름다운 동화가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어떤 대상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소녀의 기억에 남겨지지 못했을지라도 이 연극을 함께 만들어냈던 이들의 기억 속에 오누크 영감은 소녀와 영원히 남겨지게 된다.

CF 감독출신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혐오스러운 마츠코 일생'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하고 환상적인 연출력을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영화 전체를 감각적이며 개성 있는 한 편의 그림동화로 완성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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