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영구적 시민권 박탈이 될 보호수용제
형벌 포퓰리즘에 끌려가는 조두순 대책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 이후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유튜버들이 그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조두순을 다시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중 사실상 출소 당일 난동을 부린 유튜버들은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격리’를 포함한 추가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여론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여론이 조두순의 재범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 여론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성급하게 입법화를 추진했을 때 발생할 부작용은 없을까?
조두순을 향한 대중적인 분노에 압도되어 어느 누구도 공론장에서 이런 질문 자체를 꺼내지 않고 있다. 질문을 던지는 즉시 조두순을 두둔하는 것처럼 비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흉악한 성범죄로부터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자 한다면, 현재 성급하게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을 차분하게 성찰하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의 원인은 ‘음주’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두순은 평소 알콜중독이 있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12년이라는, 그 죄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그리고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법무부는 보호관찰을 통해 24시간 밀착감시를 하여 그를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조두순이 준수해야 할 사항 6가지를 함께 제시했다. 이 중 첫 번째 항목이 ‘음주금지’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등 유명한 전문가들도 방송에 나와 그가 다시 술에 손을 대는지가 재범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과연 ‘술’이 범행의 원인이었는가? 조두순의 판결 기록을 입수해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09년 11월 21일 방송을 보면, 그는 범행 전날 양주 2병과 소주 1병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범행은 다음 날 아침 피해 아동의 등굣길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아침까지 숙취가 남아있을 수는 있어도 만취 상태였을 리는 없다. 또한 조두순의 과거 범죄의 재판 기록을 보면, 최소 두 차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했던 바 있고 이 중 한 차례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형을 감경받았다. 즉, 조두순은 법정에서 술을 마셨다고 주장하면 감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주감경이 성범죄자들에게 면피의 근거가 된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었다. 이에 2010년 성폭력특별법 상 처벌 감경사유에서 음주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지금 여러 언론에서는 다시금 범행의 원인이 ‘술’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는 성폭력의 원인을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아니라 알콜 중독이라는 ‘비정상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사실상 당시 법원 판결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 틀은 12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언론들
또한 여러 언론에서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보도하며 시민의 불안감만 고조시켰다. 동료 수감자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그가 1시간에 팔굽혀펴기를 천 개를 한다거나, 텔레비전이나 CCTV에서 전파가 나오면 성적 욕구를 느낀다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1) 1952년생으로 만 68세의 노인이 그 정도 체력을 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이런 자극적인 내용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법무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여론은 이미 선정적인 보도에 상당히 휩쓸린 뒤였다. 조두순 출소 당일 보호관찰소 주변에 모인 사람 중에서는 “나도 팔굽혀펴기 천 개를 할 수 있다”며 “그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출소 당일 벌어진 난동에 대한 책임 중 상당 부분은 언론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별 보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주목받은 구호 중 하나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서사’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해자 개인에게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모든 시도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가해자는 여성과 아동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으로서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음주를 비롯한 평소 행실을 통제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괴물’로서 비난받는다.
‘괴물’은 일상으로부터 낯선 존재다. 따라서 이런 시각으로만 보게 되면, 다수의 성범죄가 가족·연인을 비롯한 ‘친밀한 관계’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놓치게 된다. 바로 이처럼 현재 조두순을 향해 온갖 추측과 상상이 버무려진 낯선 ‘괴물’로서의 서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서사, 즉 범죄의 상세한 내용과 범죄자의 전과기록, 범죄 동기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발화의 주체는 경찰(프로파일러)이다. 피해자의 경험이 아닌 경찰의 추측이 범죄의 재구성을 프레이밍하며, 피해자는 오직 감정적인 조연으로 등장하여 폭력 앞에 무력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프레임이 언론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피해자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이 투사되는 과녁이 되기도 한다. 이는 결국 여성을 향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한 집에 있을 것’,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행실을 똑바로 할 것’ 등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논리와 만나게 된다.2)
형벌 포퓰리즘에 끌려가는 조두순 대책
이처럼 ‘괴물’로 여겨지는 흉악범죄자가 사회로 다시 돌아왔으니,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를 다시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제시되고 있는 대안이 재범 위험성이 높은 흉악범죄자에 대해서 형기 종료 이후에도 별도 수용, 관리하기 위한 보호수용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적으로 보면 자유형(自由刑)과는 별개의 보안처분의 일종이다. 현재 시행 중인 보안처분으로는 심신장애 상태,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 장애로 인한 재범 위험성이 있는 자에 대한 치료감호제도와 특정 시설에 수용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감시와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보호관찰제도가 있다. 여기에 더해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자발찌, 신상공개, 약물치료 등도 보안처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제도는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보호법이 형기를 마친 출소자에게 이중·과잉처벌을 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2005년에 폐지되자,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사회보호법폐지법률 부칙에는 경과규정을 두어 법 폐지 이전에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은 유지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도 형기를 마쳤음에도 교도소에서 보호감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지난해 11월 천안교도소 내 피보호감호자 17명이 ‘교도소가 아닌 별개시설 수용’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3)
조두순 출소를 계기로 제기되고 있는 보호수용제도 도입 주장은 기존의 여러 보안처분에 더해 아동성폭력, 상습성폭력, 살인 등 흉악범죄자에 대해 형기 종료 후에도 별도 수용을 통해 관리해 가자는 것이다. 이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1년 법무부가 형법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하면서부터다. 법무부는 보호수용제도가 위험성이 높은 흉악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법원 심사를 2회로 두며, 수형자 처우에 있어서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보호법과는 다르다고 주장해왔다.4)
그러나 보호수용제도가 갖는 기본 원리가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이라는 점에서 폐지된 사회보호법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은 그동안 수많은 법학자들이 지적해 왔다. 게다가 흉악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 요구가 높아지면서 2010년에 형법 상 유기징역의 상한이 15년에서 30년(가중 시 50년)으로 상향조정되었다. 이렇게 유기징역의 상한을 높이게 되면 사실상 무기징역과 차이가 없게 되는데, 이는 무기징역형을 폐지한 다른 나라 유기형의 상한선(노르웨이 21년, 스페인 40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45년)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5) 많은 법학자들은 이러한 형기의 상향조정이 사실상 보안형벌의 기능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보호수용제도의 찬성론자들은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행 중인 제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형벌가중이 높지 않다. 반대로 영국·프랑스처럼 형벌가중이 높은 나라들은 보안처분을 하지 않는다.6) 물론 특정한 누범·상습범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가중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조두순 출소를 즈음하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방식은 모든 중벌주의적 조치를 한꺼번에 시행하자는 것으로서, 사실상 영구적 시민권 박탈을 남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형벌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엄밀한 숙의를 거친 합리적인 결정이기보다는, 흉악범죄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형벌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최근 여론의 ‘형벌 포퓰리즘’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 바로 조두순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다. 자신을 ‘40대 가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올린 국민청원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의 아까운 세금을 흉악범죄자를 먹여 살리는 데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국민의 최저생계를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신청자의 소득과 자산만을 심사할 뿐이며, 그의 전과 여부는 심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제도의 기본 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행정 당국이 이런 국민청원에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한 명의 흉악범죄자에 대한 원한 심리로 인해 복지제도의 기본 원칙을 향한 중대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떠한 사회복지제도도 국민 개개인의 ‘도덕’을 심사하지 않는다. ‘도덕’을 심사하는 순간 그것은 자의적인 자선 프로그램 또는 법무부 교정본부가 운영하는 상벌제도 수준으로 격하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언론들은 범죄심리학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며 조두순이 받은 심리치료 등 교정 프로그램이 큰 효과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추가적인 제재 사항을 부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의 교정이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고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것처럼 바로바로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처럼 국가의 교정 행정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건 과연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범죄자 교정이란 궁극적으로 범죄자와 사회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범죄자 자신의 반성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전체 ‘회복’ 과정의 일부이다. 나머지 일부는 사회가 범죄자를 향해 ‘당신이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는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준다면, 다시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신호를 주지 않고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 ‘선량한 시민에게 위험하니까 다시 감옥 가라’는 메시지만 보내는 건 ‘범죄→처벌→복수심→사회에 대한 원한 감정→재범’의 악순환만을 심화시킬 뿐이다.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과거와는 달라진 인권의식, 젠더 감수성에 걸맞는, 신뢰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범죄자로부터 가능한 모든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는 신뢰가 아니라 원한과 복수심만을 양산한다. 범죄자에게는 합당한 처벌을, 처벌 이후에는 포용적인 (교정)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만이 ‘제2의 조두순’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형벌 포퓰리즘’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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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020년 12월 5일 방송.
2) 이와 관련한 더욱 자세한 논의는 다음 논문 참고. 양정혜, 「뉴스 미디어가 재현하는 범죄현실 :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의 프레이밍」, 언론과학연구 10(2), 한국지역언론학회, 2010
3) 노컷뉴스, “[단독]형기 끝낸 전과자 17명 교도소서 6일째 단식투쟁”, 2020.11.14
4) 법무부, 「국민안전을 위한“보호수용제 도입”공청회 개최」 보도자료, 2014.07.30.
5) 강지현,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보안형벌과 보호수용제도 비판」, 비교형사법연구 제17권 제4호, 2015, 31쪽.
6) 박상민, 「보호수용법안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입법론적 대안」, 비교형사법연구 18권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16, 147쪽. 한편, 독일의 보호수용제도는 나치 시대인 1933년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해당 형법 규정은 2009년과 2011년에 유럽인권법원 및 연방헌법재판소로부터 인권 침해 요소를 지적받은 바 있다. 강지현, 앞의 논문, 35~37쪽.
* 필자 소개 _ 하금철. 독립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