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기간 단 일주일, 안내 안 했지만 “부산시 의무 아니다”
장애인운동단체 “권리는 재계약해야 부여되는 개념 아냐”
피해당사자,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
조상래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원래 받던 부산시 활동지원서비스 80시간을 올해부터 못 받게 됐다. 작년 12월 12일부터 시작돼 18일에 끝난 신청기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조 활동가는 12월 20일경, 부산시청 사회복지과 담당자에게 신청기간을 안내받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구제방법이 없는지 문의했다. 담당자는 구제방법이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조 활동가는 정부가 제공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월 391시간만 이용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이는 약 16일 치다. 중앙정부의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각 지자체는 추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끊긴 것이다. 그 바람에 조 활동가는 한 달의 절반가량을 활동지원서비스 없이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다음 신청은 올해 12월이다. 1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조 활동가는 당장 1월부터 고충을 겪었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은 혼자 힘들게 보내거나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항의하기로 마음먹고 2월 3일 오전, 부산에서 서울로 왔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하기 위해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등 장애인운동단체와 조 활동가는 3일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활동지원서비스 신청기간을 넘겼다고 1년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부산시를 규탄했다.
- 올해는 ‘재계약’ 못했으니 당신의 권리는 없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부산시청은 예산문제 때문에 활동지원서비스 신청기간을 따로 둔 것이라 답변했다고 한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매년 신규 이용자는 늘어나고 있어 기존 이용자를 그대로 지원하다 보면 신규 이용자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매년 신청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산시청은 시청 측에서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안내를 해야 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에 장애계는 “부산시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 진정인의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분노했다.
조상래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신청하라는 안내도 없었는데 너무 황당하다. 부산시는 책임이 없다고만 한다.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애계에 따르면, 신청기간을 놓칠 경우 활동지원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는 지자체는 부산시뿐이다. 일부 지자체도 부산시처럼 ‘신청 후 제공’의 방식을 운영하긴 하지만 신청기간이 따로 없다. 어느 때든 신청해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서울시와 수도권 지역의 경우 기존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던 사람은 한 해가 지나도 별도의 신청 없이 자연스럽게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부산시의 이 같은 조치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누락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신청을 받아야지 누락을 시키려고 신청을 받으면 어떡하나.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권리다. 이 권리를 빼앗으면 장애인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언제든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선희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예산이 문제라면 예산을 늘리라고 부산시에 촉구했다. 박 사무국장은 “기존 이용자로부터 서비스를 빼앗아서 신규 이용자에게 주겠다는 건가? 어처구니없다. 신규 이용자가 증가할 걸 예상하고 계획해서 예산에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산의 형평성보다 장애인의 자립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박현 한자협 대외협력실장은 권리는 계약을 통해 부여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대외협력실장은 “부산시는 권리를 재계약한다는 듯이 ‘올해는 계약 못 했으니 당신의 권리는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부산시가 장애인에게 특별하게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러면 이게 권리인가? 인간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국가로부터 제공받는 게 권리다”라고 말했다.
또한 “활동지원서비스는 여러 권리 중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권리다. 생존의 권리에 신청기간을 두고 제시간 안에 신청하지 않으면 권리를 박탈하는 편의주의 행정은 철폐돼야 한다. 대학에 입시원서 넣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조상래 활동가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서를 제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