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송파 세 모녀 7주기 추모 기도회 열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지키지 않는 文 정부 규탄
“가난한 사람 ‘발굴’하지 말고 ‘권리’ 보장하라”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 박경석 활동가가  추모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안희제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 박경석 활동가가  추모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안희제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은 목탁과 북을 두드리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을 외면서 송파 세 모녀의 넋을 위로했다. 사진 하민지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은 목탁과 북을 두드리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을 외면서 송파 세 모녀의 넋을 위로했다. 사진 하민지

26일 금요일 오후 2시, 평소와 다르게 겉옷을 입으면 땀이 날 것 같은 날씨에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광장 확장 공사로 흙먼지가 날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크게 인쇄해 붙인 자동차가 스피커로 큰 소리를 송출하며 주변을 빙빙 도는 상황 속에서 ‘송파 세 모녀 추모 기도회’가 시작됐다.

양한웅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은 2014년 2월 이후로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이를 초래한 빈곤은 계속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향을 올리고, 모두의 침묵 속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민중가요를 부르고, 사람들은 함께 제각기 다른 속도와 각도로 팔뚝을 든다.

염불이 시작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미리 준비한 국화를 꺼냈고, 사람들은 그 앞에 줄을 서서 국화를 받았다. 바나나, 배, 사과, 떡이 놓인 상에 국화를 놓은 앞사람이 5초 정도의 묵념을 끝내면, 뒷사람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북소리와 함께 광장을 채우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세상’이라는 뜻이라며 종교가 달라도 함께 ‘나무아미타불’ 해달라는 양 집행위원장의 말. 북소리가 끝난 후에도 이어진 염불은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소서”라는 말로 끝난다. 죽어서야 천당에 가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생전에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마음들이 묵념과 팔뚝, 염불, 국화, 북소리에 모인다.

부양의무자기준과 정상가족, 탈가정과 빈곤은 모두 연결된 현재의 문제고, 송파 세 모녀의 사망 이후 7년 동안 수많은 이가 변화 없는 세상을 등져야 했다는 이야기는 “송파 세 모녀를 향한 추모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라는 말로 이어졌다. 빈곤사회연대,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송파 세 모녀를 잊지 말자는 외침에 빈곤층 생존권 보장으로 답하라”라고 촉구하며 추모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추모 기도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층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시민사회단체는 추모 기도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층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 안 지키는 文, 박근혜 정부와 뭐가 다른가”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이후 복지제도에 대한 무수한 비판이 있었다. ‘송파세모녀법’이라 불리던 국민기초생활법 개정안이 세 모녀 사망 직후 발의될 만큼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다. 개정안에는 세 모녀의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정작 이 법으로는 세 모녀를 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이 부양의무자기준을 약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그쳤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할 당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복지공약 1호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생계급여에서 완화됐을 뿐이고 의료급여는 완화조차 되지 않았다. 방배동 김 씨 사건이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의 대표적 피해 사례 중 하나다. 김 씨는 생계형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였다. 12년간 못 낸 보험료가 500여만 원이다. 김 씨의 부양의무자는 관계가 단절된 딸, 김 씨 아들의 부양의무자는 이혼한 전남편이다. 김 씨는 관계가 단절된 딸과 전남편에게 자신의 가난을 알릴 수 없어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청을 포기했고 작년 12월 숨진 채 발견됐다. 약 7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했다. 박경석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활동가는 “세 모녀는 박근혜 정부 때 참변을 당했다. 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 때와의 차이가 무엇인가. 부양의무자기준 약간 풀어주는 건가? 조금 더 천천히 죽여주면 되는 건가? 가난을 대하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태도 자체가 똑같다”라며 분노했다.

박 활동가는 또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을) 그만하길 바란다. 거짓말도 그만해 달라. 남은 임기 동안 ‘포용국가’의 ‘포’ 자라도 이야기하고 싶으면 부양의무자기준부터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차이점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가 '이윤보다 인간을. 빈민도 사람이다. 주거권, 노동권, 사회보장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라는 피켓과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가 '이윤보다 인간을. 빈민도 사람이다. 주거권, 노동권, 사회보장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라는 피켓과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은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숨진 동료를 기억하며 부양의무자기준을 하루빨리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로즈마리 회장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언니를 기억한다. 그는 집에 자녀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다가 누군가 민원을 넣어 수급 탈락할까 봐 아파도 자녀를 부르지 않았다.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 가 병원에서 외롭게 돌아가셨다. 그 언니처럼 수급비를 받기 위해 가족과의 관계단절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눈치 보고 가슴 졸이다 죽음을 택한다. 이런데도 부양의무자기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현실에 한숨만 는다”고 말했다.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스님 또한 “불교 경전에 가난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쓰여 있다. 그만큼 가난은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다양한 괴로움을 만들어 사람을 죽게 한다. 이틀 전, 청주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던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난의 고통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죽음의 배경에 부양의무자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송파세모녀법은 사회보장제도 확대가 아닌 ‘발굴’에 초점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 차례 발굴된 뒤 다시 수차례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안내를 받는 모욕을 경험해야 했다”고 성토하고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주거권, 노동권, 사회보장의 권리 인정 등을 촉구하며 “가난한 이들의 권리에서 출발하는 사회보장을 요구한다. 빈곤을 발생시키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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