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목표 인원의 3.25%만 제도 이용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해도 ‘중복수급’ 이유로 방배동 모자는 수급받지 못해
홍보는 요란하지만 실효성 없는 제도, ‘실제 변화’ 위한 노력 해야

14일 발표된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서울시, 방배동모자 비극 없도록 9대 개선대책…최초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쓰여있다.
14일 발표된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서울시, 방배동모자 비극 없도록 9대 개선대책…최초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쓰여있다.

지난 14일, 서울시는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발표했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중앙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빈곤층 복지사각지대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시행됐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이후 부산과 광주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정책을 수립하게 하는 등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2012년 ‘서울시민 복지기준’ 수립 논의를 통해 만들어졌다. 당시 기준에 따르면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2013년 시행 후 6만 명의 수급자로 시작해 2018년 19만 명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2018년 수급자 수는 6,189명에 불과했다. 목표했던 인원의 단 3.25%에 그친 것이다. ‘빈곤 사각지대 없는 서울’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출발했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왜 실패했는가?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실패의 원인

애초에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구호와 실제 계획이 비례하지 않았다. 비수급 빈곤층 전체를 포괄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선정기준을 약간 완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소득과 재산기준을 완화했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을 존치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하는 65세 이하의 비장애인에게는 급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제한해 사실상 진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핵심적인 사각지대 발생 요소를 모두 우회한 것이다.

또한 변화하는 제도 환경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서울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견인하는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지만, 2015년 7월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 등 주변 제도가 변화하는 동안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대응은 지지부진했다. 대표적으로 2018년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자 서울시는 서울형 기초보장 수급자 중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 수급자로 전환된 사람들의 급여를 중지했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 수급을 중복급여로 보기 때문이다.

방배동 모자는 포괄하지 못하는 ‘방배동 모자 대책’

즉, 주거급여 수급자였던 방배동 모자는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들 서울형 기초보장의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둘은 중복 복지로 보아야 할까? 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생계, 의료, 주거급여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서울형 기초보장급여 지원 내용에는 ‘생계급여 및 해산, 장제급여’만 표기되어 있다. 주거급여는 월세보조를 목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생계급여의 절반을 지원하는 서울형 기초보장과 중복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민사회계의 의견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이를 정정하지 않았다. ‘방배동 모자 대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번 대책은 방배동 모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불어 61세였던 방배동 김 씨와 장애등급이 없었던 그의 아들은 대상이 되기 어렵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필요한 조치이나, 현재 이러한 제도 운영 방식을 정정하지 않는다면 방배동 모자처럼 전국 약 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주거급여만 받는 수급 빈곤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환영하지만

복잡한 심정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꼭 필요한 변화이며, 특히 이번 조치는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삭제’를 이끌어냈다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방배동 모자처럼 주거급여는 받지만 생계·의료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에게 이번 조치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선언 이상의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 방증하듯 서울시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로 늘어나는 새로운 서울형 기초보장 수급자는 단 2,300여 명에 불과하다. 소요되는 예산 역시 올해 편성된 122억 원에서 30억 원을 증액하는 것에 그친다. 19만 서울 시민의 소득 보장을 꿈꾸었던 제도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도 약 7천여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첫 번째 목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의 생존권 보장이다. 서울시가 이번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주거급여 수급자 중 생계급여의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에게 서울형 기초보장을 실시하고 둘째, 65세 이하 비장애인 빈곤층에 대한 급여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

방배동 모자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정부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허현덕
방배동 모자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정부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허현덕

복잡한 이유로 신청을 거절하는 복지제도는 이제 그만

올해 서울시와 대통령 신년사, 지난해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의 그린뉴딜과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한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했다는 보도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 모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라는 구호만을 가져가고,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과 이를 적시하는 ‘작은 글씨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빈곤층 복지제도는 너무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저런 복지제도가 있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법이 아니라 시행령, 시행령이 아니라 지침과 사업안내서에 쓰여 있는 작은 글씨에 성패가 갈린다. 이 작은 글씨들은 빈곤 앞에서 생존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밀어내는 중이다. 정부는 생활고에 부딪혀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복지신청을 거절당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반복되는 거절과 실망은 불신과 무력감에 힘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형 복지제도, 한계가 많지만 할 일도 많다. ‘서울시민 복지기준’은 ‘서울시민 모두에게 가구별 최저생계비를 보장할 것’을 선언했지만 현재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생계급여의 절반만을 지급하고 있어 턱없이 부족하고, 여전히 서울 곳곳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거창한 선언을 넘어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서울시가 되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_ 김윤영.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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