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지나도 송파 세 모녀는 끝내 살지 못했다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고립을 넘어 연대로”
지난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의 반지하방에 살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글이 써진 봉투였다.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빙판길에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당뇨병을 앓던 딸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할 수 없었다. 서로의 부양의무자였던 세 모녀는 어머니가 벌어왔던 120만 원이었던 생계비가 끊기자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이들 모녀의 죽음을 계기로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어 개별급여로 전환됐지만, 제도만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바뀐 법에서조차 세 모녀는 복지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빈곤가구를 발굴해 맞춤 지원하겠다던 정부 계획은 이후 발생한 ‘또 다른 송파 세 모녀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세 모녀를 옥죄었던 부양의무자기준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약속했지만, 소득과 재산 기준을 두어 사실상 ‘완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마저도 생계급여에만 해당될 뿐이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해서는 계획조차 없다.
송파 세 모녀가 남긴 과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올해 8주기를 맞이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25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송파 세 모녀 8주기 기도회와 추모제’를 열었다.
송파 세 모녀를 추모하기 위해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에서 기도회를 열었고, 이혜규 민중가수가 추모곡을 불렀다. 추모제 현수막에는 지난여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날 모인 이들은 “한 번의 실패가 낙오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병치레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사회, 가난하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라고 염원했다.
은희주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온전히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는 정부를 비판했다.
“5년 전 모야모야병에 걸려서 뇌혈관이 막혔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받고 수술했는데 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아버지가 대출을 받아서 병원비를 내주셨지만, 너무 죄송했습니다. 수술 이후 몸이 계속 안 좋아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지만 아버지의 소득이 기준보다 500원 초과한다는 이유로 수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수급자가 되었지만, 수급자가 아니라면 수술을 또 해야 할 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늘 걱정합니다. 아픈 사람에게 의료급여는 매우 중요합니다. 병원비 때문에 사람들이 가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가 꼭 필요합니다.”
강지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기초법이 시작됐던 의미를 되짚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와 기준중위소득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8년 전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송파 세 모녀에게 ‘손잡아줄 국가와 사회가 있으니 같이 힘내보자’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국가가 어머니 박 씨의 소득 120만 원을 생계의 충분조건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국가가 만성 당뇨질환인 딸의 질병을 인정해 노동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주거급여, 긴급 복지지원 등 적절한 지원이 있었더라면 아마 세 모녀는 집주인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실의에 빠져 번개탄을 피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송파 세 모녀의 가계부에는 라면, 프랑크소시지, 오뎅, 프리마, 식빵, 소주 등 대체로 1~2천 원짜리 저렴한 품목들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고 누구와 만나고 어떠한 일을 하는지는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누군가 이들처럼 먹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면 위기에 빠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중위소득을 정상화하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올해는 최옥란 열사의 20주기이기도 하다. 최옥란 열사는 턱없이 낮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에 대해 최초로 문제제기한 장애여성 활동가다. 그는 기초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2001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으나 변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여 끝내 음독자살했다. 한명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장애인, 여성, 노점상 등 수많은 최옥란 열사‘들’이 함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또한 “가난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어느 순간 올지 모르는 가난 때문에 죽어야 하는 사람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가난해도, 질병과 장애가 있어도 고통받지 않고 평범하게 일상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해 계속 싸우겠다”라고 결의했다.
한편, 공동행동은 같은 날 오후 3시 조계사 템플스테이기념관 3층 문수실에서 ‘문재인정부 빈곤복지공약 이행평가 및 대선후보공약평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추모의 마음을 넘어, 행동으로 한걸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