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주도의 탈시설 추진, ‘종사자 고용문제’ 과제로 남아
정부 예산으로 지급되는 종사자 임금, ‘진짜 사장은 정부다’
민간법인이 책임질 수 없는 영역, 정부와 지자체 역할 촉구

탈시설이 활발해질수록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의 고용승계가 당면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설 폐지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직장 폐쇄, 즉 정리해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8일,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 ‘탈시설 흐름 속 장애인거주시설의 변화, 도전과 과제’에서는 시설 종사자의 고용승계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 법인 주도 탈시설 추진한 프리웰, ‘고용승계’ 문제로 진통 겪어

이 문제를 앞서 겪은 곳이 있다. 법인 주도로 시설 폐지를 결정하고 탈시설을 추진 중인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다. 프리웰은 오는 30일, 법인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을 폐지한다. 프리웰은 지난 2007년 공익제보자에 의해 시설 인권침해가 세상에 드러난 후, 현재는 장애인인권활동가, 인권변호사 등 공익이사진이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향유의집 종사자 29명(촉탁의 제외) 중 고용승계 된 사람은 11명(38%)에 불과하다. 이들은 법인 내 다른 시설(8명)로 가거나, 다른 법인 지원주택 운영사업자(3명)로 가면서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낮은 고용승계율도 문제지만, 고용승계 대상자 대부분이 생활재활교사다. 간호사, 물리치료사, 조리사, 운전원 등은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온전히 법인이 껴안아야 했다.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은 “고용승계되지 않은 나머지 종사자들은 권고사직할 수밖에 없었는데, 직원 두 분은 권고사직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해고 통보를 해야 했다”면서 “현재 그분들이 법인에 대한 고소·고발, 민원, 진정 등을 계속하고 있어서 부지런히 조사받고 있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프리웰은 사전에 종사자들의 고용승계 욕구조사를 한 후, 최대한 맞추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고용승계는 개별 민간법인이 책임질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하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와 정부에 고용승계 대책을 요구했다.

김정하 이사장은 “거주시설 노동자 급여는 정부보조금으로 100% 지원되므로 고용책임을 민간법인에 전가하기보다는 공공적 성격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서울시에 지속해서 사회서비스원으로의 고용승계 후 전환 재배치 방식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지원주택 신규 운영사업자’에게 탈시설 정책으로 폐지되는 법인과 시설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이를 통해 3명의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김 이사장은 “고용승계가 안 되는 이유에는 고령자가 많다는 것도 있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경우, 재취업이 어렵기에 명예퇴직·희망퇴직처럼 남은 기간 월급의 일정 부분을 퇴직위로금으로 지급하자는 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보조금 사업이라는 이유로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탈시설 흐름이 가속화되는 현재, 종사자 고용승계 문제는 더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따라서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강한 연대를 요청했다. 그래야만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처럼 사회 이슈가 될 순 없는지 양대 노총에 많은 부탁을 드렸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원 전환 재배치’를 이야기해봤자 종사자 중 요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면서 “더 큰 판에서 싸워야 정부가 신경 쓴다. 양대 노총의 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장영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장영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 노조 “탈시설 방해 세력 되고 싶지 않아…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노조의 입장은 어떨까. 장영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사무국장은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사무국장은 “해고와 임금 삭감이 발생할 경우, 노조에선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사용자 측이) 정확하게 던져야 하고 노조도 이에 답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고용과 임금에 관한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향후 탈시설 논의 과정에서 적용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 사무국장은 “현재 조합원이 받아들이기엔 모범 사례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면서 “청암재단의 경우, 노조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기반한 대체 서비스를 만들어서 고용 이전 방식을 제안하고, 임금 삭감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하는 게 현 상황에서는 가장 적극적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노조는 탈시설 방해 세력이 되고 싶지 않다. 탈시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협조자가 되고 싶다”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승계 우려를 온전히 노조의 문제로만 남겨놓지 않고 같이 고민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는 민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기에 결국엔 지방정부가 채워야 한다” 면서 지자체가 조례나 복무규정 개정으로 사회서비스원 등을 통한 고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탈시설 추진 중인 대구 청암재단도 최근 ‘고용불안’ 갈등 시작

이는 프리웰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청암재단도 법인 주도의 탈시설이 추진되면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들 모두 시설 인권침해와 비리가 세상에 드러난 후, 공익이사가 파견되어 법인 주도로 시설 폐지가 진행 중이다.

대구 청암재단 산하에는 두 개의 장애인거주시설(청구재활원, 천혜요양원)이 있다. 이곳에는 종사자 81명이 고용되어 있다. 청암재단은 시설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2018년부터 더는 정규직 채용도 하지 않고 있다.

강성봉 청암재단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강성봉 청암재단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송출 화면 캡처. 

강성봉 청암재단 사무국장은 “탈시설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탈시설이 진행될수록 고용불안만 가중되니 최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특히 특수직 노동자(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조리원 등)에 대한 고용 문제는 별도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대구시에서도 고민을 함께해달라”고 요청했다.

강 사무국장은 “서울은 지원주택이라도 있지만 대구에는 이전할 신규사업조차 없다”고 답답함을 표하면서 “탈시설에서 종사자 고용문제는 후순위가 될 수 없다. 탈시설은 노동자에겐 생존권이고 장애인에겐 기본권이기에 둘 다 중요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즉, 이날 토론회를 통해 선명히 드러난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개입이었다. 그러나 박원식 대구시 장애인복지과 탈시설자립지원팀장은 “여기서 확실하게 답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양해 바란다”는 원칙적인 대답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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