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시설에서 나는 교육을 받기는 받았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 (최동운)1)
“탈시설을 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물론 사람들과 다투고 열 받는 일도 생기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지 않습니다.” (이상근)2)
“인간은 시민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만들어진다.” (스피노자)3)
사람이 아닌 시민은 없다. 하지만 시민이 아닌 사람은 있다. 인간은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시민이 된다. ‘장애인도 시민권 열차에 탑승시켜 주십시오’라는 외침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누구를 낳게 하고 누구를 낳지 않게 할 것인지, 누구를 배우게 하고 누구를 배우지 않게 할 것인지, 누구를 여기에서 살게 하고 누구를 저기에서 살게 할 것인지, 누구에게 죽음을 권하고 누구에게 영생을 권할 것인지에 관한 많은 일들은 공동체가 사람을 시민으로 만드는 일종의 공정(process)이다. 공정에 조화로운 사람들은 인격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으며 시민권 열차에 탑승할 수 있지만, 불화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승강장에 머문다.
공정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공동체를 제작하는 과정을 ‘계약으로서의 사회’라는 아이디어로 처음 설명한 홉스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밑바탕에 언어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에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감각하는 세계와 경험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며, 상호 소통을 통해 개념을 정의하고 그 관계를 연결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더 나은 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감각과 언어라는 자연적‧사회적 호르몬을 통해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정치, 정의, 인간, 세계 그 무엇으로 바꿔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언어가 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언어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되지는 않는다. 언어능력은 이미 사회적인 것이기에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인지, 누구의 말을 말로 인정하고 누구의 말을 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 그 말들을 누가 정의할 것인지와 같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획득되고 결정된다.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의 언어는 소통될 기회와 가능성을 잃고 그 사람은 ‘언어능력이 없는 사람’이 된다. 홉스에 따르면 언어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어리석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 그리하여 ‘인격’으로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계약에 참여할 수 없다.4)
대신 이들은 국가를 만든 이후 그 법에 따라 보호자나 후견인에 의해 ‘인격화’될 따름이며, 법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없기에 법의 적용에서 면제될 뿐이다. 그들의 사회계약이 인간의 가능성을 위한 계약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한 계약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지점에는 바로 ‘인간이 시민으로 되는 과정’이 있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계약의 누락자, 법의 면제자로서 더 이상 인격이 아니게 되며, 분리됨으로써만(즉 시민이 아닌 인간에 머물러 있음으로써만) 사회에 통합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만의 공간, 자신의 감각과 경험이 소통되지 못하고 무시되는 사회, 시설과 시설사회라는 언어의 무덤이 구성된다.
2024년 4월 19일,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촉구대회에 참석한 피플퍼스트성북센터의 박초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설에서는 무조건 ‘씩씩하게 살아라’고 했습니다. […] ‘기쁘다’, ‘슬프다’, ‘우울하다’ 이런 말을 못합니다. […] 어느 누구도 저의 감정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힘들어요?’, ‘괜찮아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는 혼자 숨어서 울고, 혼자 숨어서 머리카락을 뜯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으니까요. 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피플에 와서 어떤 동료가 저에게 처음으로 ‘괜찮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한국판 T4 철폐 농성장’에 적힌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존재란 없으며 단지 듣지 못하는 존재, 듣지 않는 존재가 있을 뿐”5)이라는 글귀의 의미심장함은 여기에 있다. 혹자는 ‘탈시설’이란 용어에 치중하여 실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비평하지만, ‘탈시설’이 언어로 인정되어 그 사회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가장 근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언어’ 혹은 ‘울음’으로 치부되었던 것을 언어로 만들어 언어능력을 부여하는 일, 언어화가 곧 사회화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감각과 경험을 언어로 생산하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의 폐지, 탈시설을 법적 용어로 정의한 조례의 폐지, 심리사회적 장애인에 대한 강제 입소‧입원과 참정권 제한, 자기결정권과 공적 논의에서의 배제6) 등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투쟁이 언제나 장애인의 언어능력을 둘러싼 투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대 국가의 사회계약에 단서조항이 있다면, 그것은 시설사회이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언어능력을 갖춘 인격들이 만든 법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그에 부합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이라도 존중받는다. 가령 본래 언어능력이 없다고 간주되거나 언어능력을 상실했다고 평가받은 사람은 그에 합당하게 자신의 생명을 시설화하는 계약을 받아들이고 이를 이행함으로써(입소함으로써) 근대 국가의 시민으로서 책무를 다한다. 국가는 그 계약에 따라 시설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자유를 일정하게 관리하고 제한함으로써, 즉 ‘어리석은 상태’가 되도록 내몲으로써 그 책무를 다한다.
이 공정(fairness)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화하는 인간들은 ‘말썽꾸러기’가 된다. 자격이 없음에도 몫을 바라는 일, 요구할 수 없음에도 요구하는 일은 ‘말썽’을 부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언어의 무덤을 만들고 있는 국가의 행위를 규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는 승강장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거나 노출된 장소에서 강제 퇴거시킬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시설화된 공간에서 말썽꾸러기가 된다는 것은 때때로 추방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어학자 조항범에 따르면 ‘말썽’은 문젯거리나 시빗거리라는 뜻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말썽’은 ‘말상(-相)’[말의 모양]에서 기원한 것으로 ‘말의 내용’과 ‘말을 하는 태도’를 포괄하고 있어, ‘실마리(사단)를 야기하는 언행’이라는 뜻이 함께 있다.7) 따라서 어떤 사회인가에 따라 말썽은 골칫거리가 되기도, 어떤 일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시설’이 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표적인 언어로 사용되는 반면, ‘탈시설’은 말썽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구성해 온 ‘한 인간을 시민으로 조직하는 공정’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즉 엄격한 시민의 자격을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현실의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감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 감각 상실의 원인은 다름 아닌 말의 모양이 다른 사람들을 시민으로 조직하여 최대한 다양한 언어에 대한 감각을 갖추지 못한 사회의 능력 부재에 있다. 시설 입소가 장래 희망인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의 미래일 수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는 사회, 결국 여기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가 다시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1) 최동운, 「시설에서 교육받았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 『비마이너』, 2022. 4. 5.
2) 이상근, 「마흔 살이 넘도록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비마이너』, 2022. 12. 1.
3) B. 스피노자, 제5장 「국가의 목적」, 『정치론』, 황태원 옮김, 비홍, 2013.
4)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1』, 진석용 옮김, 나남, 2023.
5) 고병권, 「말할 수 없는 존재란 없다」, 『경향신문』, 2017. 10. 22.
6) 정부는 2021년 탈시설 로드맵 마련 당시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를 배제하였으며, 2024년 대구시는 발달장애인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TF팀에 전문가, 가족 이외 당사자의 참여를 수용하지 않았다.
7) 조항범, 「‘복성스럽다’, ‘볼썽’, ‘말썽’의 어원에 대하여」, 『국어학』 76, 국어학회, 2015.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