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장차연 “문제 방치한 공공운수노조, 신뢰 훼손” 규탄 기자회견 열어
‘동지’라 불렀는데… “탈시설 입장 정리되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다”

과거 사회복지법인 차원의 탈시설을 선언했던 청암재단 노조에서 탈시설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발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대구 장애계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아래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에 조치를 요청했으나 안일한 대처에 그치면서, 급기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가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대구장차연은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문제를 방치하고 해결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 그간 지역사회에서 함께 연대·협력한 신뢰 관계가 심각히 훼손되었다”고 알렸다. 기자회견은 6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진행됐다.

대구장차연은 6일 오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장애인 탈시설 왜곡 폄하 발언에 대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의 안일한 대처를 규탄하며 청암지회 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대구장차연은 6일 오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장애인 탈시설 왜곡 폄하 발언에 대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의 안일한 대처를 규탄하며 청암지회 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 시설폐지로 고용승계 갈등 시작된 청암재단, ‘노조 비대위’ 탈시설 왜곡 발언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와 대구장차연은 지역사회에서 오랜 시간 돈독한 연대의 관계를 맺어왔다.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사회복지법인 청암재단 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비리가 발생했다. 청암재단 산하에는 청구재활원, 천혜요양원 두 개의 거주시설이 있다. 당시 청암지회 노조는 이를 척결하고자 지역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 등과 함께 비리재단을 퇴진시키고, 공익이사제를 도입했다. 대구장차연도 투쟁에 함께헀다.

공익이사와 함께 시설 내 민주노조가 들어선 후, 사람들은 ‘시설민주화’를 이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거주인이 사망하고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 끔찍한 인권침해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2014년에야 확인됐다. 이후 2015년 4월, 법인, 노조, 이용자회 등은 집단수용시설의 근본적 문제에 공감하며 청암재단의 공공화와 법인 차원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선언했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강성봉 청암재단 사무국장은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2015년도 선언 후 현재까지 총 30명이 탈시설했고, 130~140여 명이 여전히 시설에 산다. 내부의 적극성도 떨어지고 외부적으로 나갈 수 있는 주택 부족으로 탈시설 이행이 잘 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반성으로 지난해 말에 ‘2025년까지 시설을 폐지한다’고 법인이 선언했는데 그때부터 내부 갈등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시설이 문을 닫으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터가 사라지기에 불확실한 고용보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본격화된 것이다. 재단 산하 두 개의 시설 직원은 총 88명이며, 이 중 69명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이러한 고용승계 갈등은 올해 청암지회 노조 집행부 총사퇴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후 꾸려진 노조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에서 발생했다.

지난 7월 5~6일에 열린 ‘청암재단 장애인거주시설 변환 시범사업 계획 설명회’에서 비대위원장이 ‘이것(2025년도까지 탈시설 및 시설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청암재단의 계획)이야말로 장애인의 주거권 침해, 자기결정권 침해, 인권침해’라면서 ‘국가든 지방정부든 중앙이든 대구시든 어디든 이용인의 기본권을 침범하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신고해도 되겠냐’고 말한 것이다. 이는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해왔던 장애계의 입장과 충돌한다.

이에 대구장차연은 7월 5일,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며 즉각적인 조치를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7월 14일에는 청암지회 비대위의 공개사과, 2025년까지 재단 산하 탈시설 및 시설폐지에 대한 노조의 입장 표명, 찬성할 경우 노조의 입장을 대구시에 명할 것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는 7월 27일 회신에서 “비대위원장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히면서 탈시설 및 시설폐지 입장표명에 관해서는 “공공운수노조의 탈시설에 대한 입장은 이미 확고하게 표명하였기에 추가 입장표명은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청암지회는 상급노조의 사과 권고를 무시한 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5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에 보낸 공문 
지난 7월 5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에 보낸 공문 

- ‘동지’라 불렀는데… “탈시설 입장 정리되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구장차연은 그간 함께 해왔던 민주노총을 상대로 규탄 기자회견을 열게 된 참담함을 토로하면서도, 사실상 탈시설에 반대를 표한 지회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구장차연은 “우리는 그간 청암재단의 탈시설 및 시설폐지,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모두 이루고자 누구보다 현장에서 앞장서 싸워왔다”면서 “그러나 그 투쟁의 대답이 탈시설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동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어떠한 가치와 기준으로 함께 협력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조민제 대구장차연 집행위원장은 “비대위는 대구장차연과 노조의 17년 투쟁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탈시설과 시설폐지를 왜곡·폄하하는 발언을 뻔뻔스레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사과 권고라는 안일한 대처로 사건을 키워나갔다”면서 “동지라고 불렀던 사람을 규탄해야 하는 사실 자체가 너무 화가 나고 비참하고 억울하고 자괴감이 들고 원망스럽다.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비하가 일어나는 동안 민주노총은 대체 뭘했는가”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박명애 대구장차연 상임대표 또한 “제발 민주노총은 정신 차려라. 장애인은 쓰레기처럼 던져주는 밥이나 먹고 시설에서 살라는 건가. 우리는 자유의 꿈을 못 꾼단 말인가”라면서 “민주노총은 빨리 나와서 해결하라. 다신 서로 창피한 일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분노했다.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청암재단이 지난 2015년 4월 21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화와 탈시설화 추진을 선언하는 모습. 사진 대구장차연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청암재단이 지난 2015년 4월 21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화와 탈시설화 추진을 선언하는 모습. 사진 대구장차연

노금호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노동자의 노동권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노 공동대표는 2014년 인권침해 사건 후 청암재단 이사진에 참여하며 대구시와 정부 상대로 노동자 고용승계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 성과로 지난해 청암재단에는 도전적 행동이 있는 중증장애인이 낮 동안 지역사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기관이 만들졌고, 직원 일부는 이곳으로 고용승계 되었다.

노 공동대표는 “나아가 전체 노동자들이 고용 보장될 수 있도록 정부와 싸워 시설기능전환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노조가 이 상황을 왜곡하며 함께 가기 위해 만들었던 성과들을 하나둘씩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노 공동대표는 “우리의 요구는 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을 학대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공간에서 노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거다”라면서 “대구 희망원 투쟁에서도 ‘종사자 고용보장’은 우리가 외쳤던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왜 민주노총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에 대해선 포기하는가.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현재 청암지회 모습으로는 함께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전근배 대구장차연 정책국장 또한 “지회차원에서 문제해결이 되지 않으면 상급노조에서 정리하고 탈시설을 위한 기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노동권이 단순히 ‘일할 권리’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권리, 나아가 ‘정의로운 일을 만들 수 있는 권리’까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면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은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탈시설과 시설폐지 입장으로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절충지점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민제 집행위원장은 “지금 민주노총의 노동운동과 대구장차연의 장애인운동이 큰 기로에 놓였다. 조속한 답변을 요청한다”면서 민주노총에 △시설폐지 및 탈시설 왜곡·폄하에 대한 사과 △상급노조 사과 권고 무시한 청암지회 즉각 제명 △시설폐지 및 탈시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힐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장영대 공공운수노조 대구본부 사무국장은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청암지회 노조원이 70명가량 되는데 지회 전체 조합원이 탈시설을 반대한다고 단정 짓는 것에 대해선 서운함이 있다”고 전했다. 장애계의 ‘청암지회 제명 요구’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며 “조합원 개개인에 대한 일탈은 노조 내에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편, 오늘 6시 이후로 새로운 노조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비대위는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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