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수용자 1529명, 실태조사조차 없었다
수용자들 생활환경·의료지원 등 불편함 느껴
치료감호된 지적장애인 88명… “치료 없는 감금 가능성”
영국 교도소에는 신경다양성 전담직원 배치
2020년 7월 기준으로 치료감호소를 제외한 54개 구치소·교도소 등 구금시설에 수감된 장애인은 1529명.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제54조에는 장애인수용자는 장애를 고려해 적절한 배려를 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서도 구금시설에서는 편의시설을 의무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됐던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인간다운 처우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휠체어 접근이 안 되는 곳이 허다했고, 통로가 좁아 이동도 힘들다. 충분한 생활지원은 꿈도 못 꾼다. 지난 2018년 한 척수마비장애인이 장애인전담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손톱만 한 욕창이 엉덩이를 뒤덮을 만큼 크게 번져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장애인수용자는 ‘자유박탈 이상의 인권침해와 차별을 감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한편, 치료감호제도도 문제다. 한 지적장애인은 징역 1년 6개월과 치료감호를 선고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치료감호소에서 11년 이상 수용돼 있었다. 정비되지 않은 제도로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5일 오후 4시,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의 인권실태와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해 인권위가 수행한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 인권 실태조사’ 발표와 치료감호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아울러 영국의 장애인수용자를 위한 정책도 소개됐다.
토론회는 인권위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고, 사라 코치아(Sarah Coccia) 영국왕립교정국 남부 교도소장도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 1529명, 실태조사조차 없었다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는 총 1,529명(2020년 7월 기준)이다. ‘2019년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나온 2018년 기준 전체 교정시설의 평균 수용인원이 5만 4,744명이니, 장애인수용자가 전체 수용자의 2.8%가량 차지하는 셈이다.
이 중 지체장애인이 771명으로 절반인 50.4%를 차지한다. 이어 지적장애인(12.2%), 시각장애인(9.9%), 정신장애인(8.4%), 청각장애인(7.8%)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등록 장애인의 장애유형별 분포와 유사하지만,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유형별 분포보다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인권위 실태조사 연구에 참여한 김동기 목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구금시설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자유를 박탈하는 처사인데, 장애인수용자는 수용실, 운동장, 목욕실 접근도 안 되고, 의료서비스 제한으로 구금시설 내 일상생활에서 또 한 번 높은 장벽을 느낀다”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이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수용자들 생활환경·의료지원 등 불편함 느껴
지난해 인권위의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 인권 실태조사’는 우편설문으로 진행됐다. 설문에는 전체 장애인수용자 1,529명 중 931명이 응답했다.
장애인수용자 중 독방을 쓰는 경우는 8.5%에 불과했다. 대부분 다른 수용자와 공동으로 공간을 이용했고, 그 수가 7명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28.4%에 달했다. 장애인수용자의 42.9%가 불만족 또는 매우 불만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동기 교수는 “장애인수용자의 경우 비장애인수용자에 비해 필요한 보조기기가 차지하는 공간이 있고 또한 의료적 처치와 관련된 장비들도 있기에 비장애인수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리적 공간이 더 넓어야 하지만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장애인수용자는 독방 또는 두세 명이 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금시설 입소 시 장애와 관련해 필요한 의료조치나 물품을 요구해 25% 정도만 충족됐다고 응답한 사람은 46.2%였다. 입소 시 수용생활에 필요한 정보제공을 받은 비율도 18.3%에 불과했다.
시설 이용과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 중 40%를 차지했다. 경사로, 점자블록, 미끄럼방지 타일 등이 없고 통로·복도가 좁기 때문이다.
김동기 교수는 “장애인수용자는 의료서비스를 받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외부진료는 약 66%, 의료거실(구금시설 내 의료처치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약 37%가 1주일 이상 대기해야 했고, 1개월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외부진료 36.8%, 의료거실 17.1%에 달했다”고 말했다.
또한 “인권침해를 당하였을 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소장면담, 청원, 인권위 진정, 소송 방법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장애인수용자는 30% 정도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 관련 전문가 특별채용, 장애 이해교육 확대 △장애인 전담/치료 전담 교도소 운영 △구금시설 수용자 전담병원 운영 등을 제시했다.
- 치료감호된 지적장애인 88명… “치료 없는 감금 가능성”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11년 이상을 치료감호소에 구금됐던 지적장애인의 사례를 들며 치료감호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짚었다. 현재 치료감호소에는 88명의 지적장애인이 있고, 자폐성장애인과 중복장애인을 합해 100여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감호법에서 치료감호는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이나 그 밖의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가 있는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자로서 재범(再犯)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적절한 보호와 치료를 함으로써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다. 즉 치료목적과 재범의 위험성이 있을 경우 치료감호를 한다.
치료감호는 집행 시작 후 6개월마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해 치료감호의 종료와 계속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하루에 200여 건을 한꺼번에 심사한다.
최정규 변호사는 “지난 2015년 하루 253건을 처리했고, 약 7.5%만 치료감호가 종료되었다. 2020년에도 하루 182건이 심사되었고 약 8.4%만 치료감호가 종료됐다”라며 “하루에 심사하는 양이 굉장히 많다. 과연 충실한 심사가 이뤄지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치료감호는 선고만 될 뿐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 1호·3호 처분은 최장 15년, 2호 처분은 최장 2년이라는 기준만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결국 6개월마다 행정기관에 의한 행정심사만 이뤄지는 셈이다. 행정구금은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집행되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치료필요성과 재범 가능성을 구별해 집행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치료감호에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사회에서 학습을 통한 개선의 여지가 있음에도 강제력을 수반한 감호상태에서 치료받아야 할 명백한 사정이 있는지 의문이고, 막연한 기준으로 구금치료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범 위험성과 별개로 치료필요성 심사 기준을 마련하고,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도 발달장애 관련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 영국 교도소에는 신경다양성 전담직원 배치
영국도 한국처럼 장애인수용자에 대한 일관된 데이터는 없다. 영국 36개 교도소를 총괄하고 있는 사라 코치아(Sarah Coccia) 영국왕립교정국 남부 교도소장은 2012년 기준으로 수용자의 30%가 장애인수용자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현재 더 높아졌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라 코치아 교도소장은 “장애인수용자의 60~50%는 언어, 구술, 의사소통 등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일반 대중의 10%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라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수용자의 65%가 언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고, 그중 20%는 굉장히 심한 어려움이 있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데이터 자체가 일관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은 장애인수용자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수용자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방법을 검토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꾸렸다. 사라 코치아 교도소장은 “장애인수용자의 손상 여부를 더 잘 지원할 수 있도록 수용자 기록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지난해 12월부터 신경다양성(뇌신경의 차이로 발생하는 다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달장애인 등이 포함된다) 전문가 매니저를 5개 교도소에 배치했다. 신경다양성 매니저를 통해 신경다양성 관련 전략을 개발해 영국 교도소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휠체어 접근이 쉽도록 교도소를 개조하고, 교도소 내부 직원이 장애인수용자를 잘 지원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외부 의료시스템과 연계한 작업치료를 제공하고, 주기적인 건강체크도 하고 있다”라며 “정신장애인의 경우 동료지원그룹을 형성하고, 장애인과 노령장애인 미팅을 열어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과 문제해결을 위해 교도소 고위 관리자팀이 장애인수용자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진단을 통해 학습장애인을 가려 알맞은 지원을 하고 있다. 수용자 10명 중 4명은 정신건강문제 또는 난독증으로 인한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 코치아 교도소장은 “장애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도 수용자, 교도관 등 교도소 안의 정책이 포용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영국은 수용인을 무리하게 잡아두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지역사회 복귀 시스템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