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곳 용산 ②
- 개발 폭력의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2007년 10월 31일, 호람, 현암건설은 용산4구역 개발조합과 철거 계약을 맺는다. 이들의 계약기간은 2008년 6월 30일로, 기한 내 철거를 완료하지 못하면 지체보상금으로 하루 510만 원을 조합에 배상하도록 계약했다.9) 용산참사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 10억 3,500여만 원의 지체보상금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용산4구역의 철거폭력은 여느 재개발 현장과 같이 참담했으나 더욱 가혹했다.
하지만 단지 지체보상금에서 무리한 진압과 폭력의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빠른 준공을 위한 빠른 퇴거, 이를 위한 압도적인 폭력은 개발에 따른 이윤을 나눠 갖는 이들 모두가 환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 자체가 분양을 통해 이익이 실현되기 전까지 사업계획서를 통한 대출로 운영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하루하루 몸집을 불리는 대출 이자는 조합과 시공사 전체에 부담이다. 폭력을 직접 행사하는 철거업체는 이에 가장 앞에 나서는 ‘보이는 손’일 뿐이다.
2002년 시범뉴타운을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기존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묶어 만든 거대한 광역단위 개발 정책으로 공공의 기반시설투자를 전제로 한다. 이는 비강남지역의 ‘집값 정서’를 타고 곳곳에서 인기를 끌며 2008년까지 26개 지구 316구역의 뉴타운사업 지정을 끌어낸다. 이는 1973년부터 2008년까지 36년간 재개발사업이 완료된 전체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양10)이었다고 하니 서울 곳곳을 파헤칠 예정이거나 파헤치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거대한 공사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서울시민 약 8%인 85만 명과 관련11)되어 있었지만 재개발 사업은 살고있는 사람에게 개발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동의여부에 대한 조사는 오로지 소유주의 몫이었고, 뉴타운 지구를 채우고 있던 69%의 세입자12) 대부분은 뉴타운 건설이 완료된 이후 다시 동네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지만 뉴타운 사업의 이익은 집과 땅의 소유주, 더불어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누어졌다. 뉴타운은 강남에 비해 낙후한 비강남 지역을 고급화하자는 욕망이 반영된 사업이었다. 지방선거에서는 뉴타운 건설계획을 서울시와 약속했다는 선전이 나부꼈다.
거대한 사업으로 거대하게 쫓겨났다. 이 집단적인 밀려남에 세상은 무심했다. 개발 광풍과 이에 전력으로 협조하는 이명박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의 기조는 용산 참사의 폭력을 부추겼다. 개발 호재와 시세차익을 부르짖는 이들은 이 ‘차익’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지 않는다. 개발 이익을 공유하는 소유의 세계가 용산참사를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 단단하게 엮인 개발의 톱니바퀴
세입자의 입장에 귀 기울여야 했던 공공 역시 개발 카르텔의 일원이 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용산참사 당시 용산의 국회의원이었던 진영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4구역의 분양권을 구입해 16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13). 용산참사 당시 구청장이었던 박장규는 2012년 용산구 내 다른 개발 구역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기소14) 됐다. 성장현 현 용산구청장은 2015년 본인이 재개발 인가를 낸 한남뉴타운 지역 주택을 매입해 수사를 받고 있다.15) 성장현 구청장은 용산 캠프킴 부지에 공공임대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그 막대한 돈을 들여서 3,100세대, 그것도 임대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하지하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16)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오른 망루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고(故) 이상림의 품 안에서는 용산구청의 공문 한 장이 있었다. 세입자 보상대책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으니 관리처분인가를 철회해달라는 철거민들의 요청에 구청은 ‘사인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짧은 거절을 남겼다. 그의 유품이 된 구청의 답변은 세입자 사정에 관심이 없던 공공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조합의 요청에는 귀가 활짝 열려있었고, 자신의 이해에는 눈이 밝았다. 소유한 이들만 이익을 가져가는 개발 공식을 이미 여러 번 학습한 그들은 습관과 관례에 따라 항의하는 이들의 처지에 단호히 눈 감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전세 5천만 원 하는 집에 살던 세입자를 밀어낸 자리에는 전세가 16억, 매매가 24억에서 62억 하는 아파트 ‘용산 센트럴파크 헤링턴 스퀘어’가 들어섰다. 그렇게 도시는 ‘자연스럽게’ 바뀌어간다.
- 나를 구하는 내가 우리가 되어
조합이나 시행사, 시공사, 언론과 토호세력과 같은 개발의 톱니바퀴는 때로는 서로 반목하거나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르는 집값에 아무런 지분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의 피땀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한 몸이다. 이런 이해관계는 철거민 세입자의 죽음과 투쟁 없이 단 한 차례도 스스로를 혁신한 바 없다. 반대의 혁신은 있었다. 개발 비용의 외주화, 퇴거 폭력의 진화,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과 손실은 사회화하려는 조치를 ‘혁신’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혁신은 치밀한 대차대조표 아래 진화했다.
용산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의아함을 샀던 것은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이 왜 남의 지역을 갔는가 하는 점들이다. 본인의 싸움이 아닌 것에 참견하는 외부 철거민들은 미심쩍고 ‘직업적으로 데모를 하는’ 불순한 종자들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철거민에게 서로는 버림받은 세계에서 만난 유일한 구원이었다. 살면서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던’ 일을 겪고, 개벽하듯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리지만 ‘떼잡이’, ‘이기주의자’로 매도되는 이들이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이를테면 이런 도움들이다. 평생 욕 한마디 모르고 살아온 할머니, 아줌마를 모아다가 상스러운 욕설부터 천막 치는 법을 서로 가르친다. 철거 용역보다 더 그악스럽지 않고는 수치와 분노를 참을 수 없으니 여자들 틈에 들어와 웃통을 훌렁 들고 바지를 벗어 재끼는 용역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너 잘났다, 팬티도 벗어봐라’ 쏘아붙이는 법을 가르친다.
그래도 당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세상엔 너무 많아서, 용산의 유가족과 철거민 그리고 쫓겨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오해와 상처를 받았다. 연예인 건물에서 쫓겨나는 세입자에게는 ‘연예인 코인 타 먹으려는 세거지17)다’라는 댓글이 달리고, 세입자 사정 다 봐주면 다른 사람은 언제 돈을 버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해도 남들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어쨌든 불법’이니 포기하라고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2017년 1월 21일,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 광화문광장 한 켠에서는 용산 참사 8주기를 맞아 ‘우리를 쫓아낸 이들에게 고함’이라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여전히 곳곳에서 쫓겨나는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와 상인들이 강제퇴거의 문제점을 토로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시간에는 용산참사 주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기 당시 서울 경찰청장의 등신대를 감옥 모형에 넣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김석기 당시 서울 경찰청장은 경주 지역 국회의원으로 2선째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시 용산구 국회의원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던 진영은 촛불 이후 당적을 옮겨 더불어민주당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오세훈은 다시 돌아와 국민의 힘 서울시장이 되어 용산의 두 번째 르네상스를 열겠다고 선포했다. 격렬하게 대립하는 듯한 이들이 돌고 돌아 손을 잡는다. 개발 아래 하나가 된다.
쫓겨난 이들도 돌고 돌아 용산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다. 용산참사 같은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줄 몰랐어요, 여기도 용산 같은 일이 일어나는 중이에요, 용산 때는 왜 그러나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죠…. 쫓겨나는 이들은 모두 용산이라는 푯대를 바라보며 새로운 화살표를 그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쓴다. 어색한 붉은 머리띠와 검은 조끼, 낯선 이들의 오가는 다리를 바닥에 앉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귀를 때리는 스피커 속 투쟁가와 등 뒤에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느리게 익숙해진다.
과연 세상은 변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변화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장례식장을 채웠던 의원들의 정당이 집부자 세금 완화에 찬성하고, 지역 내 공공임대주택 설립에 반대하는 오늘은 더욱 그렇다.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서만 이야기의 실체를 알 수 있듯, 용산을 잊지 않겠다던 이들의 입이 얼마나 가볍고 무망한 것이었는지 보고 있다. 그래서 용산참사는 여전히 묻고 있다. 이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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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용산 참사 부른 무리한 철거시한’, 서울신문, 장형우·임주형, 2009.2.7.
10) 「도시재정비사업의 평가와 제도개선 방안」, 장영희, 한국도시연구 제10권, 2009.3.
11) 「서울시 뉴타운사업의 추진실태와 개선과제」, 장남종 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8.
12) 위의 책
13) “진영, 지역구 용산서 딱지로 시세차익 16억” 질타 쏟아져, 손효숙, 한국일보, 2019.3.27.
14) ‘떼잡이들’ 박장규 前 구청장 재개발 비리로 구속 기소, 박수진, 해럴드경제, 2012.2.19.
15)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한남뉴타운 투기 의혹 수사, 유희곤·강현석, 경향신문, 2021.4.14.
16) “캠프킴에 아파트 안돼”...“신업무거점 육성해야”, 지혁배, 딜라이브뉴스, 2021.1.8.
17) 세입자와 거지를 합한 말. 권리를 주장하는 세입자에 대한 멸칭으로 쓰였다.
○ 참고문헌
『2017용산참사백서 -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재인용, 60쪽, 서울특별시, 2017.
『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삶이 보이는 창, 2009.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추진실태와 개선과제」, 장남종 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8.
「도시재정비사업의 평가와 제도개선 방안」, 장영희, 한국도시연구 제10권(2009.3)
[인권오름] 놓치지 말아야 할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과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2015.02.27.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