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영화 '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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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삼차원은 지겨워. 그러니까 깊이가 있다는 거 말야. 나를 잘 펴서 어딘가 책갈피에 꽂아줘. 조용한 평면, 훗날 너는 나를 기준으로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펴고. 또 아무런 깊이가 없는 해변을 거니는 거야. -이장욱 詩 '중독' 中
'룸바'는 끝없이 잃어가면서도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는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일어나는 현상에 그저 몸을 맡긴 채 흘러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인 피오나와 돔은 자신의 전부인 춤과 사랑의 상대를 잃어도 좀처럼 비탄에 빠지는 법이 없다. 잃어버린 것에 중심을 두지 않고 남아 있는 것에서 아무렇지 않게 삶을 꾸려 살아간다.
잃음을 불행으로 느끼지 않기에 잃고 또 잃어도 남아 있는 것들로 다시 행복을 만드는 이들 부부의 '깊이 없음'은 오히려 복잡한 삶을 그저 모든 것에 몸을 맡겨 춤을 추듯 풀어낸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룸바를 추는 것을 행복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피오나와 돔은 룸바 경연대회에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채우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기 시작한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피오나는 이들 부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던 춤을 더는 출 수 없게 되고, 기억을 잃은 돔은 지난 시절 행복을 함께 만들어 가던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남겨진 것을 받아들이며 예전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직장을 잃고, 집도 불타고, 돔은 길을 잃어 피오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피오나는 바다에 던져진 돔의 옷을 발견하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 남겨진 사람이 있기에.
도무지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시종일관 이어지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들 부부의 '아무렇지 않음'은 잃어버린 것보다는 더 많이 남겨진 가치들을 역으로 생각하게 한다. 나를 채우고 있는 것. 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물지 않는 것들이 이별을 고하고 사라지지만, 이들은 되찾을 수 없는 것을 되찾기 위해 울지 않는다. 그리고 남겨진 것으로도 충분히 삶을 꾸려낸다.
복잡하게 풀려 할수록 뒤엉키는 듯한 삶 앞에서 돔과 피오나는 아무런 깊이 없는 해변을 거닐듯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잃었음에도 여전히 무언가가 남겨 있으므로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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