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은 들어라!” 서울 장애인들 내년도 장애인권리 예산 촉구
“탈시설 찬성·반대의 문제 아닌 권리, 서울시 정책 퇴행 우려”
예산 없는 장애인 정책은 사기, 예산으로 증명해라
정부보다 앞선 탈시설 정책을 펼쳤다고 평가받는 서울시.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탈시설 정책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장애계가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와의 면담에서 사실상 탈시설 정책 축소 선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내년도 서울시 장애인권리 예산이 반토막 위기에 놓였다.
이에 서울장차연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장애인권리 예산 책정과 오세훈 시장의 면담을 촉구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발언을 마치고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신곡 ‘들어라 오세훈’에 맞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서울시청을 한 바퀴 행진했다. 결의대회는 전장연 유튜브 채널과 줌(ZOOM)에서 생중계됐다.
- ‘탈시설 선도 도시’ 서울시? 오세훈 취임 후 탈시설 축소 선언
서울시는 마로니에 8인의 농성을 계기로 2009년 자립생활가정(현 자립생활주택)을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2013년에는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 1차 계획(2013~2017)’을 발표했고, 2019년에는 주거지원과 거주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주택’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10여 년간 서울시가 펼쳤던 탈시설 정책은 다른 시·도뿐 아니라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서울장차연 등 장애인운동단체와의 면담에서 서울시 탈시설 2차 계획(2018~2022)에 명시된 내용을 수정해 △5년 내 800명 탈시설 추진 △탈시설 정착금 인상 △지원주택 등 탈시설 장애인 주거서비스 확대 △‘장애인 탈시설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이런 장애계와의 약속을 매번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서울시 홍보와는 다르다. 탈시설 2차 계획 만료를 1년 남긴 시점에 탈시설 목표인원은 800명 중 324명(2021년 6월 기준)으로, 40.5%의 낮은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이 중 공동생활가정(그룹홈)으로 전원한 사례를 빼면 탈시설 이행실적은 더욱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번 면담에서는 ‘1년에 100명씩이면 적당하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전해진다. 현재 서울시 거주시설 장애인은 2500여 명. 이들이 모두 시설에서 나오려면 25년이 걸린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서울시는 지난 2018년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2500여 명이 10년 안에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그 약속을 안 지키고 1년에 100명씩만 탈시설하자고 한다. 더 이상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이 후퇴하지 않도록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에도 지난 3월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장차연과의 면담에서 서울시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 측 입장을 거론하며, 실질적으로 연내 조례 제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면담에 참여한 공무원들은 ‘탈시설’이라는 용어에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장애인탈시설을 위해 세워진 서울시 탈시설지원팀장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다고, 탈시설이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체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게 서울시의 일이다”라며 “탈시설은 권리다. 서울시가 탈시설 권리를 있다 없다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주시설에 있는 발달·지적장애인이 24시간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 권리의 기준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규 지원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기현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서울시는 면담에서 장애인들이 탈시설해서 살기 벅찬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그 환경을 만들고자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예산을 깎으면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라고 지적했다.
- “탈시설 찬성·반대의 문제 아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
서울시의 이와 같은 입장은 정부가 지난 8월 2일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한 후에 나온 터라 장애계는 더욱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거주시설에서의 집단감염 문제로 탈시설의 중요성의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 역행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서울시 관할 대형거주시설 ‘여주 라파엘의집’과 ‘송파 신아재활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서울시는 거주인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탈시설 욕구를 조사해야 한다며 후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신아재활원에서 스스로 퇴소한 강 아무개 씨에 대한 개별지원도 약속했지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우정규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서울시는 그동안의 정책 기조를 저버리고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 탈시설 정책을 축소하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태도는 시대를 역행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권리로 명시하고, 그에 따른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다. 헌법 6조 1항에 보면, 국제규범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 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자유권협약, 사회권협약이 모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는 의미다”라며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민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장애인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시민은 대변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여기 모인 장애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따르라”고 강조했다.
시설 밖도 재난이었다. 지난해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은 언론에 알려진 것만 14명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복지서비스가 중단되고 돌봄이 전적으로 가족에 떠맡겨지면서, 부모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4명 중 서울지역에서만 9명이 사망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서울시는 25개 전 자치구에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집에만 갇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너무 많다”라며 “그런 와중에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이 센터장으로 있는 ‘피플퍼스트센터’를 왜 만들어야겠는지 모른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시장이 바뀌고 오히려 발달장애인 정책이 퇴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예산 없는 장애인 정책은 사기, 예산으로 증명해라
이들은 서울시가 장애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으로 명확하게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주현 서울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장애인의 권리에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 정책을 말해도,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냥 없느니만 못한 사기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장차연은 △재난시대 장애인지원정책 마련 △장애인 탈시설권리 정책강화 △장애인 노동권_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보장 △장애인 평생교육권리보장 △의사소통·보조기기 권리보장 및 베리어프리 강화 △장애인 문화예술권리보장 △발달장애인권리보장 △장애여성인권 △장애인 건강권 등 11개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서울장차연 등은 서울시 기획조정실장과는 17일까지 면담 여부를 결정해 답변을 받기로 하고, 28일에는 복지정책실장 면담을 하기로 약속받은 후 해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