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의 서재] 『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 기획

- 질병 서사를 찾아 헤매다

몇 해 전 2차 장애로 만성신부전을 진단받았다. 담당 의사는 나에게 향후 몇 년 안에 반드시 투석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한 달여간의 입원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계획해왔던 미래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삶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질병 서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몇 해 전까지 한국의 작가가 쓴 질병 서사는 만나기 어려웠다. 수잔 웬델의 『거부당한 몸』이나 아서 플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읽으며 장애와 만성질환의 경험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를 발화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이 주는 메시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저자들의 경험과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원과 지위와 언어를 가진 학자들이므로 질병과 기껍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좀 더 가까이에 있는 질병 서사를 만나고 싶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 표지 이미지. 이미지 출처 푸른숲
『질병과 함께 춤을』 표지 이미지. 이미지 출처 푸른숲

- 아픈 몸으로 노동하기, 혹은 노동하지 않기

온라인 환우회 활동을 시작했고, 블로그에 투병기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탐독했다. 처음에는 면역글로불린A나 다낭신과 같은 신장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투병기를 검색했지만 젊은 만성질환자의 이야기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온라인상에 투병기를 기록하는 젊은 환자들은 대부분 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는 이들이었으므로, 평생 들어본 적 없던 그 이야기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얻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답은 ‘불안정한 건강상태를 가지고도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책 『질병과 함께 춤을』(다른몸들 기획, 조한진희 엮음, 다리아·모르·박목우·이혜정 지음, 푸른숲) 저자인 박목우와 모르가 언급하는 것처럼 나 역시 노동을 통해서 중증장애를 가진 내 삶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구성된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그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질병으로 인해 그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예측가능성이 낮아진 상태에서도 나는 노동하며 내 삶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직장에 복귀하기 위해 열심히 치료받는 젊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여럿 만났다. 몇 번이나 재발된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한 블로거는 항암치료가 끝날 때마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재발 후에도 직장에 복귀하겠다는 목표로 치료를 견딘다고 했다. 그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그가 삶의 다른 영역들을 희생해가며 일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직장에서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해 증명해나가야 했으며, ‘아픈 사람이 쉬어야지, 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편견에도 싸워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질병을 가지고도 개인이 노력한다면 노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의 노동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맥락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저자인 이혜정은 직장에서 질병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던 경험, 불가능한 회복을 종용하는 동료들과의 부딪힘을 통해 질병을 가진 사람들도 노동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사회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아픈 몸으로 노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거나 불가능한 것들을 강요받으면서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의 노동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노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혜정, 232~233쪽) 질병과 함께 하는 삶과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참아내며 노동하는 삶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저자들은 동시에 임금노동에서 벗어날 권리, 임금노동이 아닌 일을 통해서 서로의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무게 있게 다룬다. 중증장애여성인 모르는 ‘방 한 칸의 존재’에서 벗어나 노동하는 삶을 견뎌왔지만 오히려 노동이 삶에 족쇄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노동에서 벗어났다. 박목우는 조한진희(엮은이)와의 첫 만남에서 맞닥뜨렸던 환대의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노동을 새롭게 정의한다. “누군가를 살려내고 그가 사람 역할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 당장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지 않는다 해도 땀 흘려 번 돈으로 나와 타인을 먹여 살리듯, 이 일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살게 해준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삶 노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박목우, 111쪽) 임금노동이 불가능한 몸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나와 타인을 살게 하는 ‘삶 노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 ‘삶 노동’에서 또 다른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두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춤을 추고 있다. 한 손은 서로를 맞잡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서로의 등을 감싸듯 안고 있다. 사진 언스플래쉬
두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춤을 추고 있다. 한 손은 서로를 맞잡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서로의 등을 감싸듯 안고 있다. 사진 언스플래쉬

- ‘낮고 단단한 어깨’가 되어주는 사람들

나는 질병 서사를 통하여 질병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질병을 관리할 수 있는 지식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삶에 더 선명한 흔적을 남긴 것은 확신과 지식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었다. 나는 삼십여 년간 장애인으로 살아왔으며 단단한 장애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에 깊게 공감했고 그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할 때는 무언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성질환을 진단받은 후 나의 연대감은 조금 다른 결을 갖게 되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장애가 없고, 계층이 다르며,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깊게 공감했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만 투병 소식을 나누던 암환우가 내게 힘을 내라며 편지와 마스크 한 박스를 보내주었을 때 느꼈던 연대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내 삶을 가로지르는 일련의 새로운 연결을 경험한 후, 아픈 몸에 대한 감각은 장애정체성처럼 두텁고 견고한 정체성의 감각이 아닐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놀라운 감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과의 교류로 나는 아픈 몸으로도 노동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온라인 공간의 인연으로도 이렇게 큰 지지를 얻었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손잡아 주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얼마나 근사하고 지지가 되는 공간이었을까. 질병공동체가 가지는 더 큰 힘은 그 힘이 공동체의 경계 너머로 향한다는 데에 있다. 박목우는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을 통해 “질문할 수 있는 힘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낮고 단단한 어깨를 나누어 가졌다고”(박목우, 151쪽) 말한다.

질병 서사는 질병과 장애가 없는 몸을 표준으로 간주하는 사회에 정상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약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더 단단해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건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질병 서사는 아픈 사람들과 질병공동체를 단단하게 하고, 사회가 약한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열쇠가 된다. 더 많은 질병공동체, 질병 서사들이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에게, 그리고 내게 닿았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닿아 질병과 발을 맞추고, 리듬을 타고, 춤을 추는 삶이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기를, 그리하여 더 많은 질병 서사들이 이야기되고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언젠가 떠나보낼 수 없는 질병이 당신에게 도착했을 때, 좌절감과 자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질병과 스텝을 맞추려 애쓰며 세상을 두리번거릴 때 우리의 활동과 이 글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조한진희, 265쪽)

*필자 소개 _ 문영민.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건강불평등, 고용불평등, 장애인 공연예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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