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농인·청각장애인 당사자가 인권위에 차별 진정
KBS “수어통역 화면 넣으면 비장애인 시청자가 불편하다”
인권위 “비장애인 불편함을 농인·청각장애인 참정권 침해에 견줄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 21일,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가 선거개표방송 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청각장애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방송 3사 사장에게 농인·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개표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원심회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농인·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은 지난 3월 8일,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피진정인은 방송 3사였다. 장애계는 이들이 지난해 21대 국회의원선거 때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아 청각장애인과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의 참정권을 침해했다고 규탄했다.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MBC와 SBS는 지난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개표방송에서 일부이지만 수어통역을 제공했다. 따라서 인권위는 2개 방송사에 대한 진정은 기각했다.
반면 KBS는 별도의 수어통역 제공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폐쇄자막을 송출하고 있고 이외에도 하단 자막에 상세한 정보를 담아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수어통역을 배치할 경우 그래픽 구성에 제약이 생겨 비장애인 시청자가 불편함을 겪는다며 수어통역 제공을 거절했다.
인권위 장애차별시정위원회는 “비장애인도 제한된 시간 내에 폐쇄자막만으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 청각장애인도 그렇다. 더불어 수어통역 화면 때문에 시청화면의 일부가 가려져 비장애인 시청자가 겪는 불편은 개표방송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에 견줄 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유권자가 선거개표방송을 통해 참정권 행사 결과를 알고자 하는 건 참정권 연속 선상의 권리다. 선거결과는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거개표방송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 중대하고 우선적인 방송프로그램이다. 이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KBS가 “해외국가도 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인권위는 공영방송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해외 사례를 우리가 뒤따를 이유가 없다. 사회적 소수자의 방송접근권 보장에 모범을 보일 수도 있기에 해외 사례를 근거로 수어통역 미제공을 합리화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KBS가 공영방송사라는 점에서 책임이 더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권위는 KBS가 선거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1조 1항 및 3항에 위배되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벽허물기는 21일 성명을 내고 인권위 권고를 환영하며 “인권위 권고에는 청각장애인이 갖는 특수성과 수어가 갖는 언어로서의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참정권은 비장애인 시청자의 불편함에 견줄 수 없다는 인식도 바탕에 깔려 있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한 “다만 수어통역 화면 크기가 작고 후보자 여러 명이 출연할 경우 수어통역사 혼자서 통역을 하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가 이런 문제도 전향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