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2월 장례이야기
- 죽음도 평등하지 않다
고대 로마의 시인 푸블리우스 시루스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에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게 되고, 그 필연적인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다 보면 이 문장 속 ‘평등’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죽음이 평등하게 느껴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12월에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도중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의 지인들이 보내준 사진으로 영정까지 만들어 제단에 올리고 고인예식을 마친 후 운구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위패를 모시고 기다리고 있는데, 의전업체의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뛰어와 이야기했습니다. “운구 출발을 안 했대요. 또 펑크 났어요!”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모셔 오지 않은 것입니다. 장례식장은 담당자가 퇴근하며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연고자가 있는 고인의 장례였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본인들이 저지른 커다란 실수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으니 장례식장의 대답은 뻔뻔했습니다. “칠판에 안 쓰여 있던데요?” 12월 한 달에만 장례식장의 운구 실수는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느 무연고 사망자의 화장이 모두 끝난 후 유골을 가루내어 유골함에 모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화장이 모두 끝난 유골들 사이에서 고인의 소지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핀셋, 손톱깎이, 휴대폰 등 관 안에 들어 있으면 안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활동가는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장례식장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수의를 입히는 과정에서 소지품을 발견하지 못할 수가 없는데 혹시 수의를 입히지 않은 것인지, 혹시 관 안에 폐기물 등을 같이 넣고 결관을 하는 것은 아닌지를 묻자 장례식장의 답변은 너무 당당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있나요?”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는 배터리가 있기에 화로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화장장의 장비들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관 안에 넣는 것은 보통 고인이 평소 즐겨 입던 옷가지 등이지 핀셋이나 손톱깎이 같은 생필품이 아닙니다. 장례식장이 수의를 제대로 입히지 않았거나, 폐기물 봉툿값을 아끼기 위해 소지품을 그대로 넣은 것, 혹은 그 둘 다가 의심되는 상황 속에서 활동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였기에 겪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는 그래도 돼’라는 생각과 편견들이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나누지 않고, ‘무연고 사망자’나 ‘저소득 시민’의 장례가 아닌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공영장례’를 논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야만 낙인 없이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아직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조차 평등할 수 없습니다. 기원전의 시인이 이야기한 격언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 2021년을 떠나보내며
2021년 나눔과나눔은 공영장례를 통해 856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한 해 동안 437회의 장례가 있었고, 4370송이의 국화꽃이 고인의 위패 앞에 놓였습니다. 무연고 사망자라고 해서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 연인 등 다양한 인연들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공영장례 빈소를 찾았습니다. 만약 서울시에 ‘공영장례 조례’가 없었다면 그 900명에 달하는 무연고 사망자의 인연들은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함을 지키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856명의 장례는, 동시에 900여 명의 이별을 도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물두 번의 ’가족대신장례’도 있었습니다. 법이 개정된 것이 아닌 보건복지부의 지침으로 시행된 제도라 한계점이 명확했지만, 적어도 서울시에서는 성공적으로 안착해가고 있습니다. ‘장례는 가족이 해야 한다’는 혈연중심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관계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낯선 제도에 어색함과 우려를 표했던 구청과 동주민센터의 공무원들도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가족대신장례’를 안내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열한 분의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로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한 분의 고인은 뿌려지거나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되지 않고 생전에 원했던 대로, 혹은 고인을 아끼던 사람이 원하는 대로 모셔질 수 있었습니다.
- 12월 장례이야기
‘공영장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1년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공영장례 조례’를 만들었고, 많은 국회의원이 장사법 개정안을 내며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의식을 법안에 추가하고자 했습니다. 그 덕에 지난해 12월 21일에는 ‘무연고 사망자에게 장례의식 등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례비용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안이 확정되었습니다. 보건위생과 국토의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법안에서 ‘존엄의 보장’이 추가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개정안이긴 하지만 나눔과나눔은 이를 토대로 이루어질 변화를 함께하며 2022년의 현장을 지키고자 합니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 12월 무연고 사망자(기초생활수급자 74명 포함)
정순덕, 김재수, 정동성, 최해찬, 김대원, 신진근, 송명성, 김재원, 이민철, 강금수, 김상출, 강성운, 이문규, 조부부, 강청배, 은희연, 김기주, 임원빈, 주부중, 한상미, 이현두, 강귀순, 이동열, 고광재, 무명김진명, 한덕수, 오인근, 경동식, 김신례, 김금암, 김도영, 김춘근, 박광록, 이두호, 정송옥, 이복희, 양웅선, 장명순, 구영만, 신옥연, 이명진, 최성백, 장인실, 임용규, 이길재, 한상준, 박종신, 서춘남, 고창균, 오금용, 조길환, 이종문, 박영숙, 정 훈, 최영철, 주광석, 이부용, 윤환웅, 박성자, 정성준, 백동구, 박타관, 한연희, 김효중, 박건식, 하경숙, 고승천, 권상혁, 허동기, 임성재, 김구환, 이상열, 염영범, 함윤섭, 정성환, 박영석, 박상훈, 노진우, 김창혁, 정길원, 안계병, 문영호, 고주현, 조태식, 정정오, 장영탁, 남부기, 김성식, 김태룡, 정현철, 최영복, 박선동, 손미애, 김평원, 신종만, 전수경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아흔여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필자 소개 _ 그루잠 나눔과나눔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