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꾼의 오래된 욕망, 쪽방촌 민간개발 ②
민간개발이 강제퇴거 폭력을 일으키는 과정

▶ (이전 글) ① ‘쪽방이 돈 된다’ 몰려든 투기 세력

지난해 2월,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이 쪽방 건물에 배포한 유인물.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의 집과 토지를 다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땅 주인 동의 없이 강제로 토지 뺏어가서 공공임대주택 짓고, 쪽방촌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합니다. 내 땅에 아파트가 생기는데 거기에 나는 못 들어간다 합니다. 화가 나서 잠도 못 자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길래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1. 2월 5일 국토부장관이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정비사업’은 ‘공공재개발’이 아니라 ‘공공주택지구사업’입니다. 소유주들의 동의가 필요 없고, 소유주들은 선택권 없이 강제로 땅과 건물을 팔고 나가야 합니다. 2. 정부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땅들을 강제수용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도 곧 닥칠 일입니다. 이렇게 강제로 토지건물을 팔고 나가게 되는 것을 현금청산이라 하는데, 억울하게 현금청산 당하고 나면 소유주들은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합니다. 3. 현금청산을 당하고 나면 새 아파트는 못 받게 되며 (이하 생략)’ 사진 동자동사랑방

- 욕망의 본질 (1): 아파트 분양권과 강제퇴거, 폭력의 먹이사슬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이 애걸복걸 매달리고 있는 건 ‘분양권’이다. ‘땅과 건물을 현금청산 하고 나면 새 아파트는 못 받는다’는 유인물 내용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정부는 공공개발을 발표하면서 소유주 보상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현금 혹은 대토(토지를 수용당한 사람이 인근 허가구역 안에서 같은 종류의 토지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두 번째는 아파트 분양권이다.

분양권은 무주택자만 받을 수 있다. 개발구역에 살지 않더라도, 개발구역에 소유하고 있는 주택 외에 다른 데 주택을 또 가진 게 아니라면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발구역에도 집이 있고 다른 지역에도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 분양권을 받을 수 없다. 현금이나 대토로 받아야 한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다주택자가 집을 더 많이 갖게 하는 건 공공개발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생긴 원칙”이라고 말했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이 분양권 못 받는다고 성토하는 모습으로 미뤄 보건대, 소유주 중 다수가 다주택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민간개발은 공공개발과 달리 분양권을 받는 데 제한이 없다. 소유주가 집을 10채 갖고 있든, 100채 갖고 있든 상관없이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유주가 분양권을 애타게 원하는 이유는 집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집값이 올랐을 때 팔아서 시세차익을 챙기는 데 있다. 여기서 투기로 인한 시세차익의 먹이사슬이 시작된다.

“민간개발 쪽 사람들 목표가 오로지 분양권이에요. 현금은 적은 것 같고, 대토는 건물 지어서 수익 내야 하니까 머리 아픈데, 분양권은 받으면 편하거든요. 아파트를 손에 쥐고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소유주 ㄱ 씨)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 모습. 409호라고 푯말이 붙은 문 옆에 ‘410호가 커튼 안에 있습니다’라고 입구 위치를 알리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 모습. 409호라고 푯말이 붙은 문 옆에 ‘410호가 커튼 안에 있습니다’라고 입구 위치를 알리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분양받은 아파트로 빨리 시세차익을 거두려면 빠르게 철거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보통 민간개발에서는 개발구역 전체를 동시에 전면 철거한다. 한 번에 싹 밀어버려야 아파트를 더 빠르게 세울 수 있고, 그래야 이익을 거두는 시점이 앞당겨진다. 이는 공공개발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정부는 쪽방주민에게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고 공공주택이 다 지어지면 입주시키겠다는 ‘선(先) 이주 선(善) 순환’ 개발을 발표했다. 이 경우 개발구역을 순차적으로 철거하는 순환개발이 이뤄진다. 쪽방주민은 현재 생활권을 유지하며 거주하다가 공공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전면 철거를 하려면 개발구역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한다. 강제퇴거의 폭력이 여기서 시작된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길 하나 건너면 민간개발이 진행 중인 양동 쪽방촌이 있다. 이곳은 2019년부터 본격적인 민간개발이 진행된 이후 쪽방주민 절반 이상이 강제퇴거당했다. 소유주는 재개발 사실을 숨기고 ‘리모델링을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용도 변경한다’고 거짓말한 후 주민을 쫓아냈다. 이러면 주거이전비를 안 줘도 된다. 동자동 쪽방주민은 민간개발 강제퇴거의 공포를 눈앞에서 목격하며 살아왔다.

쫓아내는 게 목적인 개발이 되다 보니 이주 대책도 잘 세워지지 않는다. 양동의 경우 이주 대책으로 ‘쪽방 이사’가 계획된 적 있다. 쪽방에서 살았으니 이사도 쪽방으로 가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9년에 동자동, 후암동, 갈월동 등 인근 쪽방과 고시원으로 양동 쪽방주민을 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웠다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반발로 철회했다.

이렇게 다 쫓아내고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도 민간개발은 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파트값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부동산 경기가 떨어지면 시공사도 시공 증액을 요청해요. 그러면 조합원은 더 많은 시세차익을 바랄 수밖에 없어요. 들인 돈을 회수해야 하니까요. 민간개발은 경기변동에 따라 개발속도가 달라지는 구조예요. 반면 공공개발은 손해가 나더라도 손해를 안고 개발을 진행합니다”라고 말했다.

동자동쪽방촌 소유주 측이 붙인 현수막. 노란색 배경 위에 벚꽃 그림이 있다. ‘쪽방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겠습니다. ㅇㅇㅇ 外 주민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쪽방촌 소유주 측이 붙인 현수막. 노란색 배경 위에 벚꽃 그림이 있다. ‘쪽방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겠습니다. ㅇㅇㅇ 外 주민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욕망의 본질 (2): 쪽방주민 몰아내고 ‘부자 동네’ 만들기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은 지난 4월부터 현수막 분위기를 바꿨다. 쪽방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을 정부보다 더 넓게 지어주겠다고 주장했다. ‘착한’ 민간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진혁 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공공주택 많이 지으면 그만큼 인센티브(개발부지 일정 부분을 공공시설물 형태로 조성하면 건폐율·용적률 등의 제한을 완화해 주는 기부채납 제도)가 늘어나잖아요. 기자님 같으면 공공주택 안 지으시겠어요? 저희는 확실히, 빠르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소유주 ㄴ 씨는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이 앞 다르고 뒤 다르다고 했다. “그 사람들, 앞에선 쪽방주민과 함께하겠다고 얘기하잖아요. 국토부 가서는 ‘쪽방민 ‘처리’하는 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해라. 공공의 책임을 왜 민간에 떠넘기냐’고 말해요. 공공주택 많이 지어주겠단 말도 허구일 수밖에 없어요. 똑같은 땅에 똑같은 용적률로 짓는데 어떻게 더 크게 키우죠?”

지난해 4월, 국민의힘이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과 함께 연 ‘부동산 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 현장 간담회’ 현장. 스크린에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다. 공공개발과 민간개발을 비교한 표가 보인다. 민간개발 시, 쪽방주민이 입주할 공공주택에 관해서는 ‘근방에 공공임대 공간 별도 조성도 검토 필요(기부채납)’이라 설명해 놨다. 사진 이가연
지난해 4월, 국민의힘이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과 함께 연 ‘부동산 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 현장 간담회’ 현장. 스크린에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다. 공공개발과 민간개발을 비교한 표가 보인다. 민간개발 시, 쪽방주민이 입주할 공공주택에 관해서는 ‘근방에 공공임대 공간 별도 조성도 검토 필요(기부채납)’이라 설명해 놨다. 사진 이가연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은 쪽방주민이 입주할 주택을 다른 지역에 별도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국민의힘 주최로 열린 ‘부동산 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 현장 간담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소유주 측은 ‘따뜻한 고밀민간개발’을 하겠다며 ‘근방에 공공임대 공간 별도 조성 검토 필요(기부채납)’라고 적힌 화면을 띄우고 ‘외곽에 공공주택 지어서 쪽방주민을 거기에 모여 살게 하려고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쪽방주민이 원래 살던 곳에 재정착하는 걸 목표로 하는 공공개발 목표와 달리, 공공주택을 지어 인센티브를 챙기되 다른 곳에 짓겠단 거다. 사회적 혼합(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소유주 측은 동자동을 낙후시키는 원인으로 쪽방주민을 꼽는다. 이진혁 씨가 지난해 8월, 국토부 규탄 집회에서 낭독한 투쟁사에는 “정부는 쪽방촌에 의해 주거환경이 열악해져 고통을 받고 타 지역으로 밀려난 토착민(소유주)의 재산권마저 박탈한다”는 내용이 있다.

공공주택을 짓더라도 축소해서 지을 가능성이 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소유주의 ‘말 바꾸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간개발에서 공공주택 많이 짓겠다는 계획이 100% 실현될 수 있느냐, 믿기 어렵습니다. 소유주들은 쪽방주민 숫자 줄이기 작업에 들어갈 거예요. 부동산 경기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쪽방주민 수가 많이 줄었다’면서 계획안을 축소해서 낼 수 있어요.”

다른 소유주 ㄷ 씨는 비슷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민간개발 쪽 건물주들이 쪽방에 사는 사람들 쫓아낸단 소릴 자꾸 해요. 주거이전비 주기 싫으니까 미리 쫓아내는 거예요. 이런저런 꼬투리 잡아서. 그런 말이 요새 돌고 있어요.”

국토부가 쪽방 주민에게 배포한 자료집.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와 국토부 장관의 주택지구 지정이 지난해 하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국토부가 쪽방 주민에게 배포한 자료집.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와 국토부 장관의 주택지구 지정이 지난해 하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 폭력적 욕망을 끊고 주거권 보장으로

‘공공개발이냐, 민간개발이냐’를 두고 시끄러웠던 2021년이 지났다. 2022년 1월, 동자동 쪽방촌은 조용하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지구지정 고시(개발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할 건지 정해 공표하는 일. 지구지정이 고시돼야 공공개발이 확정된다.)를 해야 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도 정비계획안을 국토부에 제출한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쪽방주민은 국토부의 지구지정 고시를 기다리며, 0.5평 방에서 한파를 견디고 있다.

지구지정 고시 없이 해를 넘겨 1월이 되니 쪽방주민의 불안은 더욱 크다. 동자동 쪽방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공공개발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라가 (공공개발) 하는 거랑 (민간개발은) 다르죠. 우리(쪽방주민)는 국민으로서 나라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습니다. (공공주택) 면적이 너무 좁으니까 더 넓게 하라, 휠체어 같은 거 잘 다니게 길을 닦아라, 이런 요구를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민간한테는 못 해요. 여지껏 한국사회가 어떤 바탕이었는지를 보세요. 돈 있는 놈들은 즈그들 맘대로 합니다. 주민들 요구 같은 건 절대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몇 십 년간 쪽방건물 빗자루질 한 번 안 하고 월세 받아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동자동 쪽방주민은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11시,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주간을 맞아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요구했다. 쪽방주민들이 국토부 앞에서 알록달록한 우산에 적힌 ‘공공개발 환영한다’ 구호를 모아 보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
동자동 쪽방주민은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11시,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주간을 맞아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요구했다. 쪽방주민들이 국토부 앞에서 알록달록한 우산에 적힌 ‘공공개발 환영한다’ 구호를 모아 보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

그는 가난한 사람의 주거권을 공공이 책임지는 선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민간개발 주장하는 소유주들은 공공주택 지어준다 하면서 ‘베푼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기분 상하는 말입니다. 나라가 하는 일은 우리한테 ‘베푸는’ 게 아닙니다. 정당하게, 법에서 정해진 대로, 약하고 가난한 사람도 내 집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겁니다.”

온라인에는 동자동 쪽방주민을 비난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정부에 공짜 집 달라고 떼쓰지 말고 집이 필요하면 돈 벌어서 사라’는 목소리에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 모임’ 위원장인 김영국 씨는 분노한다.

“소유주들 재산은 쪽방주민이 불려준 거예요. 우리는 따박따박 월세 내고 살았습니다. 하루라도 늦어지면 바로 쫓겨나기 때문에 성실히 냈습니다. 우리가 불려준 재산으로 우리 다 쫓아내고 비싼 아파트 짓는다 합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 집다운 집에 살게 하는 거지, 잘사는 사람들 주머니 더 불려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김영국 위원장 같은 ‘성실한’ 쪽방주민의 고통이 집값을 떠받쳐 왔다. 강제퇴거와 전면 철거를 동반한 민간개발이 진행될 경우, 쪽방주민이 쫓겨난 자리에 생겨난 아파트값은 역세권 프리미엄의 날개를 달고 치솟을 것이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의 주장은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빼앗지 않고선 성립할 수 없다. 공공개발은 그런 폭력을 끊겠다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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