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지구지정 고시 지난해까지였지만 감감무소식
민간개발 정비계획안 검토 후 소유주 측에 보완 지시
쪽방주민 “주민은 죽어가고 있어… 공공개발 빨리 추진해야”
권익위에 주민요구서 제출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쪽방주민들이 국토교통부에 지구지정을 고시하라고 촉구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 모임(아래 동자동공공주택주민모임)은 23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는 쪽방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공공주택 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성토했다.
- 공공개발 사업 발표만 하고 계획 안 지키는 국토부, 쪽방주민은 죽어가고 있다
국내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 이곳을 공공주택 사업으로 정비하는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2월 5일, 국토부가 예고도 없이 발표한 공공개발 계획에 쪽방주민은 지지를 보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어리둥절했다.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나 기뻤다. 따뜻한 내 집에서 샤워하고 살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서 잠도 안 왔다”고 말했다.
쪽방주민들이 영하 5도의 날씨에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모인 것은 공공개발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계획대로라면, 개발구역을 정해 공표하는 ‘지구지정 고시’는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이뤄졌어야 했다. 올해에는 ‘보상기본조사 및 보상계획 수립’이, 다음해에는 공공주택 착공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국토부 계획은 2021년 2월에 멈춰져 있다. 지구지정을 위한 필수단계인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도 열리지 않은 상태다. 다른 쪽방촌 공공개발과 비교해도 한참 늦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주민모임 위원장은 “쪽방주민들이 세종시 국토부에 찾아가고 (국토부와) 면담도 했는데 1년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하릴없이 세월만 간다”고 규탄했다.
국토부는 민간개발 추진 소유주 측이 제출한 정비계획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국토부 관계자에 질의한 답변에 따르면, 관계자는 ‘쪽방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 쪽방주민 재정착 지원방안 등을 포함하는 게 민간개발에서 가능할지 판단하느라 검토가 길어지고 있다. (소유주 측에서 정비계획안을) 보완해 주시기로 했다’며 ‘(보완한 계획안을 언제까지 제출하고 언제까지 검토할지에 대해선) 아직 기한이 협의된 게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투기이익을 추구하는 소유주 측이 공공개발에 강력히 반대하고 국토부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이, 쪽방주민은 죽어가고 있다. 김정호 이사장은 “지구지정 고시가 지연된 지난 1년간 적지 않은 쪽방주민이 돌아가셨다. 사흘 전에는 50대 중반밖에 안 되신 분이 차가운 쪽방에서 혼자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주거권이 우리같은 취약계층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소유주와 국토부는 모른다”고 성토했다.
- “공공개발은 다음 세대 주거권까지 보장하는 일… 쪽방주민 모두를 포용하라”
지만형 동자동 쪽방주민은 ‘선(先) 이주 선(善) 순환’의 공공개발 정책 효과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거라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남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고 싶을 뿐이다. 공공개발해서 임대주택 지으면, 가난한 사람의 주거권 보장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세대로 넘어갈 것이다”라며 “(지구지정 고시가 늦어지니) 마음만 급해지고 우울하다.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매일 방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다”고 말했다.
발표된 공공개발 사업지구 밖에는 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동자동 쪽방촌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양동 쪽방촌이 있다. 양동 쪽방촌 민간개발 구역 11, 12지구에는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될 예정이지만 그 외 구역 주민은 강제퇴거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인근 비주택 거주자를 임대주택 공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온당치 않다. 국토부는 주민 모두를 포용하는 공공개발 사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박 부위원장은 또 “대선 정국이지만 쪽방주민의 열악한 주거현실에 대해선 어떤 후보도 얘기하지 않는다. 쪽방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다 죽어 나가 자빠지고 있다. 어제 저녁에도 인사했던 옆방 주민이 다음 날 혼자 돌아가시는 일이 허다하다. 국토부는 제발 공공개발 추진해서 많은 사람이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라”라고 촉구했다.
동자동 쪽방주민은 기자회견 후 국민권익위원회에 주민요구서를 접수했다. 주민요구서에는 △이윤을 위한 민간이 아닌,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 △사업 추진 과정에 쪽방주민 당사자 참여 보장 △주민 모두를 포용하는 임대주택 공급 등의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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