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를 이유로 화성시 공무원시험에 불합격한 ㄱ 씨, 1심 패소
화성시 1차 면접에서 장애관련 질문 집중 후 최종 불합격 처리
법원 “2차 면접에서 장애 관한 질문 안 해 차별 아니다” 판단
법원이 정신장애를 이유로 공무원 시험에서 불합격시킨 화성시가 잘못이 없다고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재판에도 여실히 드러났다는 탄식이 나왔다.
21일 수원지방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엄상문)는 정신장애를 이유로 공무원 시험에서 탈락한 ㄱ 씨가 화성시 인사위원장을 상대로한 임용차별 행정소송 1심을 기각했다. ㄱ 씨와 소송대리인은 즉각 항소를 예고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21일 오후 2시 30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애인 전형인데, ‘정신장애’에 집중 질문 뒤 불합격 통보한 화성시
ㄱ 씨는 10년 전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II형 양극성 정동장애’를 진단받았다. 이후 2012년 정신장애인(당시 3급) 등록을 했다. 정신장애 등록 후 ㄱ 씨는, 정기적인 전문의의 진료와 약물을 통해 관리했다. 학원 강사, 편집 작업 등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일을 했고, 원만한 직장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던 지난 2020년 4월, ‘2020년도 제1회 경기도 화성시 지방공무원 공개경쟁 임용시험 행정 9급(일반 행정)(장애인)’ 구분모집에 지원했다.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필기시험에서 ㄱ 씨는 동일구분의 선발 예정인원 9명 중 유일한 합격자였다. 그만큼 우수한 성적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문제는 면접시험에서 벌어졌다. 9월에 시행한 1차 면접에서 ㄱ 씨는 면접위원으로부터 장애 관련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면접위원은 ‘장애 유형과 정도’, ‘장애등록이 되는 장애인지’, ‘약을 먹거나 정신질환 때문에 잠이 많은 것은 아닌지’ 등을 여러 차례 물었다. ㄱ 씨는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며칠 뒤 2차 면접에서 면접위원은 장애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ㄱ 씨는 9월 16일 최종 불합격했다.
이에 ㄱ 씨와 장추련,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재단법인 동천 등은 지난 2020년 12월 공무원 시험에 대한 임용시험 불합격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 법원 “2차 면접에서는 장애에 관해 질문 안 했다”며 기각 판결
ㄱ 씨의 소송대리인단이 주장한 것은 두 가지다. 면접시험에서 장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것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직접차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장애인 전형 면접을 보는 면접위원들이 사전에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이나 장애 관련 금지 등의 차별에 대해 전혀 숙지하지 못한 것은 ‘간접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1차 면접에서 장애에 관한 질문을 한 것은 차별행위라면서도, 2차 면접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며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또한 면접위원이 장애에 관한 사전교육을 받지 않은 것도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송대리인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재판부는 장애와 관련한 질문은 차별이라고 인정했지만, 면접위원이 사전교육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으로 인해서 불합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화성시가 1차 면접 때는 잘못이 있지만 2차 면접에서는 장애와 관련한 질문이 없었기에 ‘하자가 치유됐다’라며, 원고의 불합격 처리는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자의 치유 원칙’은 행정처가 한 번 잘못했더라도 다시 잘못하지 않았다면, 하자가 치유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김재왕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는 1차 면접자 중 18명만 2차 면접을 봤는데, 이는 면접 실시기관의 재량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18명의 추가면접자 중 1차 면접 때 위법이 발생했던 것은 원고뿐이다. 다른 추가면접자 17명은 두 번의 기회를 얻었고, 원고는 결과적으로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것과 다름없으므로 하자의 치유가 인정되어서는 안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정신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재판에서도 여실히 나타나
ㄱ 씨는 현재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동료지원가 양성과정의 교재를 집필·강의하고 있다. 동료지원가 연대 단체의 대표직도 맡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려는 마음으로 소송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ㄱ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입장문을 통해 심경을 밝혔다. 입장문은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가 대독했다.
“소송에 나섰던 이유는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밝히기 꺼립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낙인과 차별, 불이익이 엄존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이유로 취업이 거부되거나 회사에서 쫓겨나는 일이 실재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의 채용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무원의 채용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영역으로 평가받아 왔고, 공직은 정부가 지금까지 힘주어 말해왔듯이 스스로가 가장 모범적인 고용주임을 증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면접장에서 제가 왜 저의 장애 유형을 밝혀야 했나요? 공직에 적합한 장애와 부적합한 장애는 따로 존재했었던 걸까요? 어떤 유형의 장애가 공직에 적합한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겨우 10여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면접관들에게 존재하는 걸까요?”
ㄱ 씨가 지적한 대로 정신장애인은 취업을 위한 면접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김남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도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면접 자체를 두려워하게 됐다.
“법 조항에는 아직도 28가지 취업자격 제한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왜 정신장애인이 그 직업 자격을 갖는데 법이 금지하고 있고, 또 전문가의 소견에 따라 고용 당락이 결정되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수의사를 하면 동물에 해로운 일을 하는지, 아동보육원에서 일하면 아이들을 위험하게 하는지 미용사를 하면 머리카락을 잘못 자르고 신체에 해를 가하나요? 정확한 정신장애의 위험행동 없이 자격을 제한하는 데 의구심이 듭니다. 전문가가 판단하면 그 위험이 안 나타나는 건지, 황당할 뿐입니다.”
장추련 등 소송대리인 측은 즉각 항소를 예고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너무 뿌리 깊은데, 이번 소송에서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오늘 재판부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라며 “이번 사건은 단순 정신장애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다시는 이런 식의 시험을 치르지 못하도록 계속 싸우겠다”라고 강조했다.

